부르고 싶은 그 이름…세월은 흘러도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 서정혁,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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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4 07:21  |  수정 2017-02-14 09:23  |  발행일 2017-02-14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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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대구지하철 참사 14주기를 닷새 앞둔 13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기억의 공간에 설치된 ‘추모의 벽’을 지나던 아이들이 희생자를 위로하는 글을 적은 메모지를 벽에 붙이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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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 당시상황 보존
그을린 공중전화, 타다 만 신문…
유가족들은 추모장에서 눈물만
아이와 함께 찾은 시민들도 많아
저마다의 메시지로 희생자 추모


“지금은 아무런 말도 못하겠어요.”

13일 오후 2시,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열린 ‘대구지하철참사 14주기 추모주간 행사’에서 만난 희생자 유가족들은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유가족들은 192명의 희생자 이름이 적힌 벽 아래의 단상에 국화꽃을 놓아 뒀다. 단상엔 이미 누군가가 두고 간 국화 20여 송이가 놓여 있었다. 유가족 황명애씨(여·60)는 “14년 전 세상을 떠난 상임이는 당시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며 “최근 상임이 여동생이 결혼 날짜를 받았는데, 그날 딸과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황씨는 ‘꽃님아, 동생 시집간다. 축하해줘’란 쪽지를 추모벽에 남겼다.

중앙로역에서 동성로 상가로 이어지는 개찰구 바닥엔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기억 공간’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글귀 왼쪽엔 주황색으로 제작된 시민 추모의 벽이 50m가량 이어져 있었다. 벽엔 당시 ‘불귀(不歸)의 객’이 된 승객의 이름과 시민들이 적은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주황색 벽에는 격자 무늬로 ‘2·18 그날을 기억합니다’란 글자가 적혀있었다. 이 무늬는 ‘빙렬 문양’(얼음이 깨진 무늬)으로 ‘방화를 잠재운다’는 뜻이 담겨있다. 예로부터 관청 담장을 만들 때 사용된 무늬라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주황색 벽 너머엔 참사 당시 상황이 그대로 보존돼있다. 추모공간과 화재현장 보존구역으로 나뉜 이곳에는 화재로 검게 그을린 현금지급기와 공중전화, 2003년 2월17일이라고 적힌 타다 만 스포츠신문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현장을 둘러본 우혜영양(13)은 “이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당시 현장을 보니 참 끔찍하고 가슴이 아프다”며 “다신 이런 사고가 대구에서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동하양(13)은 “이런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와본 건 처음”이라며 “아직 하늘에서 억울한 희생자들이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2003. 02. 18’ ‘1079’ ‘1080’ ‘13시38분’ ‘192’ ‘151’. 추모벽 건너편에 위치한 5개의 기둥엔 6개의 숫자가 적혀있었다. 각각 지하철 화재 발생 날짜와 화재가 발생한 열차번호, 화재가 완진된 시각, 희생자와 부상자 수를 의미한다. 기둥과 기둥 사이엔 지하철 참사 당시 열에 녹은 지하철 손잡이 등도 전시돼 있었다.

이날 현장에는 아이와 함께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부모와 함께 찾은 아이들은 현장을 둘러본 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저마다 메시지를 적어 벽에 붙였다. 이날 아이와 함께 현장을 찾은 최수미씨(여·44)는 “지나가는 길에 아이에게 대구에서 발생한 참사를 알려주기 위해 잠시 들렀다”고 말했다. 양다연양(11)은 “지하철은 나도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인데 이런 일이 내게도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고 말했다.

이날 3명의 자녀와 추모현장을 찾은 이미정씨(여·36)는 “아이들에게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찾았다”며 “화재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이 많이 놀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의 아이들은 설명을 듣고 난 뒤 ‘천국에서 행복하세요’란 메모를 추모의 벽에 남겼다. 이날 추모의 벽엔 아이들이 적어 놓은 메모 외에도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되겠습니다’ ‘별이 된 그대, 영원히 빛나소서’ 등의 글귀가 적혀있었다.

대구 시민들의 뇌리에서 ‘지하철참사’는 서서히 잊히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날 지하철은 제 시각마다 중앙로역 플랫폼에 도착했고, 승객들은 끊임없이 승하차를 반복했다. 하지만 개찰구 앞에 마련된 추모의 벽을 찾는 시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승객들로 붐비는 플랫폼과 달리 지하철 참사 ‘추억의 공간’은 한산하기까지 했다. 단상에 국화가 놓이기 시작한 지 1시간가량이 지났지만, 국화꽃은 더 이상 쌓이지 않았다. 때마침 지하철이 다시 도착했다. 그리고 하차한 승객들은 종종걸음으로 추모의 벽을 지나쳐갔다.

서정혁기자 seo1900@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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