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성악하다 공구로 악기 만드는 김효선씨

  • 최보규,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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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7 07:57  |  수정 2017-04-07 07:58  |  발행일 2017-04-07 제21면
“북성로 匠人 도움받아 만든 악기…개성 넘치죠”
20170407
5일 대구시 중구 북성로공구박물관에서 김효선씨가 PVC파이프와 신발 밑창, 알루미늄관 등 공구골목에서 구한 재료로 만든 악기를 연주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대구 중구 북성로 공구골목에서 구입한 PVC파이프와 향촌동 수제화골목에서 구한 신발 밑창. 공구상에 널브러져 있던 쇳가루.

이 모든 재료는 김효선씨(33)의 손을 거쳐 재미있는 소리를 내는 악기로 바뀌었다. PVC파이프는 음계를 내는 피아노로, 밑창은 연주용 채로 변했다. 플라스틱 통에 들어간 쇳가루는 손악기가 됐다.

김씨는 북성로에 있는 재료와 장인들의 기술을 활용해 악기를 만들고 있다. 악기마다 독특한 모습을 갖고 있는 건 물론이고 소리도 가지각색이다.

성악과 오케스트라를 해 오던 김씨는 지난해 열린 북성로기술생태계 주민협업 공모전 ‘메이드 인 북성로’에 참여하면서 악기 제작을 시작하게 됐다. 이 공모전은 북성로 공업기술 장인들과 협업을 통해 ‘기술 업사이클링’을 하는 게 목적이다.

당시 김씨는 ‘아나케스트라 인 북성로’라는 콘셉트로 PVC파이프 피아노와 볼트 실로폰 등을 제작해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악기를 추가로 제작해 현재는 알루미늄관 실로폰, 동파이프 실로폰, 볼트·너트와 톱밥을 넣은 손악기까지 만든 상태다. 최근엔 또 다른 PVC파이프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파이프·볼트·쇳가루 활용해 제작
‘메이드인 북성로’ 최우수상 받아
제작·연주법 가르치고 밴드 결성
북성로 배경 뮤직비디오도 찍어
“다음엔 고물상과 콜라보 할 것”



생소한 재료로 악기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평소 접해보지 못한 재료들이기에 어떻게 해야 소리가 나는지도 몰랐고, 이 재료들을 자르고 다듬기 위한 기초 기술도 없었다.

결국 김씨가 택한 최선의 방법은 공구골목 상인들과 친해지는 것. 공구골목에 찾아와 어리둥절해 하는 김씨의 모습에 상인들은 쉽게 마음을 열었다.

“아가씨, 절단기 쓸 줄은 알아요?”라며 시작한 상인들의 관심은 어느새 남은 재료를 챙겨줄 만큼 친근한 사이로 발전했다.

“공모전을 시작하면서 PVC 파이프는 톱으로 쉽게 잘릴 거라 생각하고 골랐는데 그렇지 않아서 처음엔 좌절했죠. 음계 하나 맞추려면 파이프당 적어도 수십번은 잘라야되는데…. 친딸같이 하나하나 가르쳐주셨어요. 공구골목 상인들이 없었으면 어떻게 해 낼 수 있었나 싶어요.”

김씨는 북성로 상인들로부터 느낀 고마움을 되돌려주기 위해 북성로 활성화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대구 중구청과 <사>시간과공간연구소가 시민대상으로 여는 ‘매뉴퓨처 인 북성로’사업에서 북성로 재료로 악기를 만들고 합주하는 수업을 지난해부터 맡았다.

“북성로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특성있는 공간이에요. 그런데 시민들이 북성로에는 잘 안 오더라고요. 저의 활동을 보고 경험하면서 많은 분들이 북성로가 재미있는 공간이라는 걸 느끼면 좋겠어요.”

김씨는 얼마전 북성로에 있는 청년들과 ‘훌라’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훌라는 김씨가 만든 PVC파이프 피아노, 알루미늄관 실로폰과 리코더, 아코디언 등의 악기로 연주한다. 멤버는 김씨를 비롯해 안진나·문찬미씨(시간과공간연구소 소속), 박지혜·이영민씨(영상서랍 대표)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최근 북성로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어 온라인상에 올리기도 했다. 뮤직비디오엔 북성로 골목 곳곳의 모습이 담겨있다.

앞으로는 ‘업사이클링 밴드’라는 콘셉트로 북성로에 있는 고물상들과 협업해 고물로 악기를 제작할 계획이다. 매립지, 도시 폐허 등 의미있는 장소도 발굴해 그곳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촬영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친한 친구들과 추억삼아 연주 영상을 찍었는데 다들 북성로에 대한 애정이 있다보니 대충할 수가 없었어요. 훌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만큼 주기적으로 연습해서 공연이나 영상촬영 계획을 구체화하려고 해요. 북성로를 포함해서 대구의 숨은 공간을 발굴해 내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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