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핀 일곱 빛깔 꽃밥…눈맛부터 사로잡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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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7-06-30  |  발행일 2017-06-30 제면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경남 진주
진주비빔밥의 별칭 ‘칠보화반(七寶花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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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잣이 꽃수술처럼 아름다운 진주비빔밥. 전주와 달리 콩나물 대신 숙주나물이 들어간다. 현재 천황·제일·천수·천년의비빔밥 등 4개 업소가 대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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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황혜성이 재현해낸 진주비빔밥. <정계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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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짓국과 함께 짝을 이뤘던 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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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에게 인기인 ‘천황식당’의 비빔밥. 선지가 들어간 보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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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들이 즐겨찾는 ‘제일식당’의 비빔밥. 심플한 보탕을 곁들이는 게 특징이다.

논개. 진주 사람이 아니다. 전북 장수군 출신이다. 포스를 볼 때 기생 같지 않은데 우린 조건반사적으로 ‘기생’이라고 확신한다. 1621년 유몽인이 저술한 ‘어우야담’에 ‘진주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는 간단한 기록만 전해진다. 그 때문인지 논개 뒤에는 항상 기생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진주비빔밥이 논개와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생애를 조금 뒤적거려봤다. 원래 양반가의 딸이었으나 아버지 주달문이 사망하고 집안에 어려움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자 장수현감이었던 최경희의 후처가 된다. 전라 우도의 장수였던 남편 최경희는 진주성 2차전투에서 패배해 남강에 투신해버린다. 그 소식을 들은 논개는 작정한 듯 열 손가락에 쌍가락지를 낀다. 기생으로 가장해 승전 기념파티를 벌인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를 끌어안고 남편처럼 강물로 뛰어든다. 논개의 순국장소인 의암 품은 촉석루 앞 절벽은 아직도 아찔한 높이다.

‘임란 진주성 싸움 때 만든 음식’說
이후 관기와 요정 거치며 골격 형성
‘관찰사가 가장 즐기는 음식’ 기록도

1929년 문 연 중앙시장내 천황식당
6·25전쟁 때도 군인에 비빔밥 팔아
제일식당 등 특색있는 맛으로 소문

정계임 진주비빔밥 名人 연구 눈길
진주교방한정식과 상관관계 고찰
50여 가지 퓨전 비빔밥 등 개발 열심


◆의암별제와 진주비빔밥

아무튼 논개 덕분인지는 몰라도 진주는 ‘기생의 고장’이 된다. 하지만 상당수 진주기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의기(義妓)’였다. 기생 산홍, 그녀는 한말 을사보호조약 때 일제 앞잡이였던 내부대신 이지용이 1만원의 거금을 내밀었지만 매국노란 이유로 배척했다. ‘진주대관’을 집필한 가쓰다 이스케라는 출사해서 정삼품의 처우를 받은 진주의 노기(老妓)를 부러운 듯 소개할 정도였다.

하지만 진주민과 논개 사이를 묶어줄 만한 대동제가 없었다. 1868년 보다 못해 진주목사 정현석이 나선다. 논개를 위한 매머드 추모제를 기획한다. 바로 ‘의암별제(義巖別祭)’다. 당시 진주기생 신분으로 이 별제에 참석했던 최순이에 따르면 “제사 때 백리 이내의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구경왔다. 진주기생들이 쌍검무와 가악을 연주했고 마지막엔 제단에 올렸던 갖은 제사음식을 함께 음복하며 사흘을 춤과 노래로 보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일제 때 이 별제는 너무 저항스러운 것으로 규정해 금지된다. 1992년 운창 성계옥에 의해 복원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진주 교방청 예인이었던 최순이의 진주검무 제자인 성계옥에게 의암별제를 구전했다. 이후 성계옥은 의암별제의 내력이 적힌 교방가요를 입수한다.

◆관광파와 토박이파 비빔밥집

한반도에는 별별 비빔밥이 산재해 있다. 진주·전주비빔밥, 익산의 황등육회비빔밥, 안동헛제삿밥, 거제의 멍게비빔밥, 문경의 산채비빔밥, 달성군의 사찰비빔밥, 콩잎 대신 팥잎을 사용했던 청도의 횟집나물비빔밥, 그리고 북한의 경우 특이하게 밥을 볶아서 만드는 해주비빔밥 등도 있다. 김치볶음밥도 이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고종 3년(1896) 진주가 경남도청 소재지가 됐을 때 관찰사가 가장 즐기는 음식 중 하나가 진주비빔밥이란 기록도 있다. 1929년 ‘별건곤’이란 잡지에도 진주비빔밥이 소개된다. 육당 최남선은 1936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조선상식문답’을 통해 진주비빔밥을 거론한다. 그는 “전주는 콩나물, 진주는 비빔밥으로 유명하다”고 강조했다.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전주는 비빔밥의 고장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현재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빔밥 전문점은 어딜까.

전주가 아니다. 현재 전주의 최고 비빔밥 전문점은 ‘한국집’. 68년 영업을 시작했다. 한국관, 성미당, 가족회관, 갑기회관, 고궁 등이 뒤를 잇는다. 전주비빔밥 명인은 가족회관 여사장인 김연임.

진주 대안동 중앙시장 내 ‘천황(天凰)식당’과 울산시 남구 신정동의 ‘함양집’은 전주비빔밥보다 더 역사가 오래됐다. 일제강점기에 장사를 시작했고 다들 3~4대를 이은 해묵은 집이다. 오래 전 진주시청 옆에 있던 ‘설야’는 진주를 찾은 명사가 많이 왔다. 천황·제일식당 이상의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천황식당은 1929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영업신고증엔 65년부터 영업 시작. 예전 이름은 ‘대방네’였다. ‘대방네’는 주인 김정희씨의 시할머니인 고(故) 강문숙 할머니의 별명. 근처 전통시장에서 땔감 팔던 인부들이 시장이 파할 무렵이면 강씨 할머니 집으로 찾아왔다. 그렇게 인부들의 밥을 차려주다 결국 가게를 차리고 백반정식을 팔기 시작했고 나중에 비빔밥을 특화시켰다. 6·25전쟁 때도 군인들을 상대로 비빔밥을 팔았다.

시할아버지는 책을 뒤져 식당이름을 ‘천황식당’이라고 했다. 그 후 며느리 오봉순 할머니가 가게를 물려받았고, 3대 며느리인 김정희씨가 다시 물려받아 30여년 운영하고 있다.

천황식당 근처에 있는 제일식당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은 현재 대구FC 대표이사인 조광래의 어머니다. 그 어머니는 초창기 시래기해장국과 함께 비빔밥도 팔았다. 조 대표의 이모에게 가업이 이어진다. 특히 이 집 해장국을 좋아한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진주비빔밥도 나름 파벌이 있다. 방송에 너무 많이 노출된 천황식당과 천수식당은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 천황식당은 반세기 전 한옥 스타일, 퇴락미가 있어 포토존으로 유명해진다. 하지만 토박이들은 제일식당과 현재 진주칠보화반비빔밥 협동조합 이사장인 윤우근이 경영하는 경남문화예술회관 옆 ‘천년의비빔밥’을 주로 찾는다.

그럼 차이는 뭘까. 천황·제일·천수식당은 놋그릇 대신 스테인리스스틸 그릇, 다들 고명 위에 고추장을 넉넉하게 올려놓는다. 천년의비빔밥만 놋그릇을 사용하고 고추장 소스를 자제한다. 진주발 교방한정식의 전통을 제대로 이어받은 건 천년의비빔밥 같다. 모르긴 해도 전주비빔밥이 주군으로 섬기는 고추장소스, 진주비빔밥에는 넣지 않는 게 경쟁력을 확보하는 지름길인 것 같다. 하지만 업소 주인들은 개념없이 고추장을 몇 숟가락씩 푹 집어넣는다. 나물류도 가지런하게 놓이지 않고 뒤섞여 있다. 집집마다 특색이라지만 소문보다 덜 한 맛이다.

나물 가짓수도 중요하다. 현재 정해진 수는 없는 것 같다. 7~9가지가 섞인다. 내 생각은 이렇다. 고사리, 도라지, 박나물, 죽순, 부추, 애호박, 무나물, 숙주나물 등 계절에 따라 6가지를 메인 나물로 얹었으면 좋겠다. 비빔밥 나물이 너무 많아도 맛을 망친다. 칠보화반 의미를 계승하려면 육회까지 합쳐 모두 7가지 식재료만 엄선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윤 이사장 등이 적극 나서 표준 레시피를 만들자고 독려했지만 아직 업소간 조율이 되지 않는다. 안타깝다.

아무튼 2013년 진주비빔밥명인이 된 정계임씨(61). 국립경상대학원 생물소재 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녀는 진주비빔밥과 진주교방한정식의 상관관계를 문헌학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50여 가지의 퓨전비빔밥도 개발했다. 이를 위해 진주문화연구소 남성진 소장과 협업시스템을 마련했다. 그녀는 89년 경남 첫 요리학원인 ‘일신요리학원’을 차리고 99년부터 2003년까지 진주음식을 한상차림으로 선보이는 한정식 ‘수라’까지 운영했다. 수라는 진주관아의 연회식이었던 진주교방한정식을 조심스럽게 공개했다. 논란도 많았지만 현재 이 음식은 그의 제자가 운영하는 ‘아리랑한정식’으로 전해진다. 현재도 진주교방한정식의 기본적인 틀은 계속 리모델링 중이다. ☞ W3면에 계속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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