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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산물 육수와 육전이 특징인 진주냉면. 5년전 문을 연 장대시장 내 ‘수냉면’의 육전은 지단처럼 잘게 썰어 고명으로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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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유림의 묵향이 묻어 있는 진주헛제삿밥. 현재 금산면 갈전리 ‘진주헛제삿밥’은 진주 유일의 헛제삿밥집이다. 자르지 않은 나물류, 방아 잎이 들어간 장떡, 죽순찜 등이 눈길을 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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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은 ‘수복빵집’의 팥물 올린 찐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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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맛을 최소화한 소가 인상적인 중앙시장 내 ‘송아꿀빵’. |
진주 지역의 비빔밥은 두 종류가 있다. 육회를 축으로 한 진주비빔밥과 진주헛제삿밥(虛祭飯)이다.
현재 경상도권에서 헛제삿밥 전문점이 있는 곳은 안동·진주·대구 정도다. 그 본거지는 역시 한국 유림의 사령부격인 안동. 1925년 최영년이 쓴 ‘해동죽지’를 보면 “대구부 내 음식점에서 허제반을 판매하는데 맛이 있어 유명했고 일명 헛제삿밥이라 불렸다”고 기록돼 있다. 대구 시내에도 얼마전까지 제비원 등 헛제삿밥을 취급하는 식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진주의 헛제삿밥은 60년대까지 ‘밤참’으로 유명했다. 그 이후 서서히 사라지고 그 맥이 끊겼다가 80년대 부활된다.
헛제삿밥은 60년대까지 ‘밤참’명성
안동과 달리 조기·민어 등 메인 생선
7가지 나물과 13가지 재료 탕국 기본
냉면도‘北 평양, 南 진주’할 만큼 유명
평양과 달리 양반 전유물인 고급음식
해산물 육수·돼지등심 육전 고명 특징
신도심 곁에 있는 금산면 갈전리 ‘진주헛제삿밥’을 방문했다. 식당 주변에는 특이하게 보리수나무가 많이 심겨 있다. 갓 수확한 보리수열매가 식당 곳곳에 수북하게 담겨 있다. 이걸로 효소를 만들어 요리와 음청료로 활용한다.
일흔을 맞은 여사장 이명덕씨. 식당외길, 평생 헛제삿밥하고만 동고동락했다. 진주의 유일한 헛제삿밥집에 대한 열정과 안목 등이 인정돼 <사>대한명인협회로부터 ‘진주헛제삿밥 명인’으로 선정됐다. 합천 출신인 친정어머니(이달순)는 봉래동에서 처음 이 음식을 팔았다. 이후 82년 진주시청 근처로 옮겨 ‘강나루 헛제삿밥’을 꾸려갔다. 자기 건물이 없어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13년 전 지금 자리로 이전해왔다. 현재 아들 내외(김창우·양은영)와 함께 일한다.
“이 밥은 원래 기제사 때 음복하는 스타일이잖아요. 그래서 초창기에는 주방에서 요리할 때 향불을 켜기도 했는데 이젠 세상이 달라져 향 냄새를 꺼리는 손님도 있고 해서 향은 치웠습니다.”
안동헛제삿밥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일단 비늘이 없는 돔배기와 간고등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여긴 조기, 민어, 돔 등이 메인 생선이다. 안동에서 즐겨 보이는 배추전과 동태전도 여기선 보이지 않는다. 안동권에서는 나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내지만 진주헛제삿밥에선 나물에 칼질하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보통 비빔밥은 젓가락을 사용해 비비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진주헛제삿밥은 숟가락으로 비빌 것을 주문한다.
한상을 주문했다. 정말 제삿상을 받은 것 같다. 방아 잎·된장을 이용한 장떡, 돼지고기 등심을 사용한 육전, 새송이버섯전, 명태전, 애호박전, 우엉·파·맛살이 어우러진 산적, 죽순찜, 고추부각, 미역튀김, 쑥인절미, 곶감·당근·연정과가 저마다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헛제삿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나물과 탕국. 첫째는 탕국이다. 잘 된 탕국은 일반 국처럼 텁텁하지 않고 동치미 국물처럼 깔끔하다. 그러면서도 묵향(墨香)이 감돌아야 된다. 이건 진주비빔밥에 딸려 나오는 보탕·선짓국과 맛의 차원이 다르다. 좋은 탕국을 위해 여러 식재료가 어우러져야 된다. 두부, 소고기, 닭육수, 마른 명태, 마른 피문어, 마른 홍합, 마른 새우, 무, 죽순, 박, 바지락 살 등 13가지를 세 말들이 큰 솥에 넣고 2~3일마다 한 번씩 장만한다. 나물은 숙주·콩나물·도라지·고사리·무·미역·풋나물, 이렇게 꼭 일곱 가지만 쓴다. 진주비빔밥처럼 여기도 해초류가 들어갔다. 진주헛제삿밥은 진주비빔밥과 진주교방한정식을 잇는 가교라 할 수 있다.
일어서려고 할 때 이 집만의 별미가 있다고 했다. 별미 포차로 유명한 중안동의 ‘평양빈대떡’에서 ‘거지탕’(일명 잡탕찌개)으로 알려진 ‘후렴전탕’을 선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 전탕은 명절음식을 전골식으로 재활용한 스타일로 여기선 ‘전찌개’ 등으로 불린다. 일단 농어·돔·민어·조기·서대의 대가리를 냄비에 얹고 그 위에 헛제삿밥 상에 올렸던 6가지 전을 올리고 육수도 탕국 육수를 활용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육수가 줄어들 때마다 전과 국물 맛도 자꾸 달라져 주당 속풀이용 안주로 딱일 것 같았다.
◆진주냉면
북한에서 펴낸 ‘조선의 민족전통식생활풍습’에 따르면 “예로부터 냉면은 북 평양, 남 진주”라 했다. 그만큼 ‘진주냉면’이 유명했다. 진주냉면은 평양과 달리 상층부 양반의 전유물이었다고 한다. 진주냉면에는 오방색의 원칙이 준수된다. 배, 오이, 달걀 황백 지단, 김치와 육전 등이 냉면을 더욱 고혹하게 만든다.
진주냉면의 명맥은 한동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전통요리연구가인 김영복씨가 재현에 나선다. 현재 진주시 봉곡동 서부시장 내 장운서·하연옥 부부가 하거홍·황덕이 노부부로부터 냉면 노하우를 전수해 진주 하대동, 강남동, 신안동, 사천, 부산 등 모두 6개점에서 친인척이 운영하고 있다. 이 진주냉면은 제1회 세계한식요리경연대회에서 ‘대령숙수(待令熟手·조선시대 궁중의 남자 조리사를 일컫는 말) 전통음식상’을 받았다. 원래 중앙시장에선 ‘부산식육식당’으로 있다가 이어 부산냉면을 거쳐 진주냉면으로 명칭을 바꿨다. 하지만 현재 이 집은 워낙 방송에 많이 노출돼 관광객으로 들끓는다. 토박이들이 더 많이 찾는다는, 5년 전에 문을 연 장대시장 수냉면을 찾았다. 오전 10시부터 주인은 초절임용 무를 깎는 데 여념이 없다. 슬러시 형태의 육수였는데도 사골육수와 해물육수의 맛의 층계가 혀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길쭉한 절임무는 식초향도 최대한 배제했다. 육전은 소고기 대신 돼지 등심을 사용한다. 그래야만 식어도 잡내가 나지 않는다.
보통 진주냉면의 육수는 다른 냉면과 달리 멸치, 새우, 홍합, 바지락, 표고버섯, 다시마, 문어, 황태 등 남해안 해산물로 뽑는다. 사골육수 베이스의 일반 냉면과 맛이 좀 다르다. 멸치가 가장 많이 들어간다. 흥미로운 건 육수의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달궈진 무쇠를 집어넣고 15일간의 숙성절차를 거친다. 이때 곰탕 육수처럼 노란 막이 생기는데 엄청 비려서 걷어내야 제맛이 난다. 고명은 다른 냉면보다 훨씬 풍부하다. 석이버섯, 실고추, 오이, 배, 계란, 김치, 황백지단, 그리고 마지막에 진주냉면 고명 중 가장 이색적인 소고기 육전이 오른다.
진주냉면을 먹고 중앙시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 안에 별미가 숨어 있었다. ‘송아꿀빵’의 꿀빵은 달지 않으면서도 달다. 설탕만으로 팥소를 빚지 않은 탓이다. 영주가 고향인 권경숙 사장은 40여년째 장터를 지킨다. 채소 햄버거가 특미다. 근처에 울산에서 올라온 송복자씨, 그녀는 경남권의 대표 국 세 가지(선짓국, 장어국, 소머리국 등)를 가마솥에 일찍 끓여놓고 판다.
마지막 코스는 ‘수복빵집’의 추억의 찐빵. 포항 구룡포초등학교 앞 철규분식의 그 찐빵과 너무 닮았다. 차이는 수복은 설탕 대신 팥물을 빵 위에 끼얹는다는 것. 빵의 크기는 경주황남빵만 하다. 이스트를 첨가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낮 12시쯤 문을 여는데 통영의 오미사꿀빵 가게처럼 오후 3~4시에 가면 다 팔리고 없다.
한 잔 생각이 나면 신안동 ‘진주실비골목’을 찾으면 좋다. 마산의 통술, 통영의 다찌와 함께 경남을 대표하는, 저렴하면서도 안주가 푸짐한 선술집이다. 진주실비는 술값만 있고 안주는 무료라는 게 특징. 70년대 중앙로터리 기업은행 뒤편 골목에서 옥이·남이집이 주도했고 이어 대안동의 신라·화랑집 등이 진주실비시대를 열어갔다. 현재는 10년 전에 조성된 신안동 주택가로 이전했다. 일송정, 어게인 등 9개 업소가 있는데 초피 가루가 들어간 어게인의 열무김치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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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짜유기그릇에 담긴 구절판, 조선잡채, 전복초 등이 인상적인 진주교방한정식 전문 ‘아리랑’의 한상차림. |
진주교방한정식을 찾아서
한정식 모태가 된 교방문화와 요릿집
1999년 문 연 진주한정식 전문점‘수라’
황혜성 궁중요리 토대로 특산물 응용
‘아리랑’의 당면 없는 조선잡채 특이
진주한정식이 진주교방한정식으로 터닝하는 순간이 있었다. 2002년이다. 진주시가 진주음식을 전국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푸드마케팅을 벌이는 과정이었다. 이에 앞서 1999년에 진주에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진주한정식 전문점이 생긴다. 바로 ‘수라’다. 수라는 70년대 거의 명맥을 잃은 진주 요정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조선조 궁중과 지방 관리들은 각종 연회를 전략적으로 열어야만 했다. 수령이 머무는 각급 성 안에는 여흥을 즐길 수 있는 ‘객사(客舍)’가 있었고, 거기엔 어김없이 예기에 능한 기생들이 포진해 있었다. 기생들을 관리하는 기관은 ‘교방(敎坊)’이다. 조선초에는 관습도감이 교방 구실을 했다. 당시 교방에서 일하던 궁녀들이 나이가 들어 퇴기가 되면 진주로 많이 내려왔다. 그 정도로 진주기생은 평양기생과 함께 한국 기생문화를 주도했다.
1905년 교방문화가 철폐된다. 대신 생겨난 게 기생조합이고 그게 나중에 ‘권번(券番)’으로 변한다. 진주권번은 현재 하나은행 진주지점 자리에 있었지만 6·25전쟁 때 사라진다. 교방문화는 일제강점기 갑종 요릿집(요정)으로 흘러들어갔고 현재 대한민국 한정식의 모태가 된다.
수라한정식은 황혜성의 궁중요리를 토대로 진주의 특산물을 많이 응용해 요리를 했다. 궁중연회식의 양대산맥인 구절판과 신선로를 비롯해 속데기무침, 된장과 방아 잎을 올린 가오리찜, 전복김치, 진주유과, 디저트로는 다식과 차가 나왔다. 또한 남강 장어로 만든 장어탕도 별미다. 도라지, 고구마, 미역, 무 등 정과도 다양했다.
이 흐름을 이어받은 게 신안동 진주교방한정식 전문 ‘아리랑’이다. 여주인 이소산씨는 진주발 교방한정식의 파수꾼이다. 한식 레스토랑 기분을 내기 위해 호남과 달리 코스식으로 변주한다. 차가운 음식에서 뜨거운 음식으로 진행된다. 흑임자죽, 구절판, 대하찜, 감홍시소스 가래떡, 수수부꾸미, 가오리찜, 유자샐러드, 가자미식해, 전복초, 신선로 등으로 이어지다 마지막에 전복탕수에서 멈춘다. 전주한정식과 달리 조기, 장아찌 등은 보이지 않았다. 가장 흥미로운 음식은 조선잡채였다. 여기에 당면은 없다. 이 음식은 교방에서 먹던 것이 시중으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겨자를 베이스로 국물을 만들고 거기에 해삼, 전복, 낙지, 소고기, 은행, 잣, 대추, 버섯, 배, 배추, 우엉 등 20여가지 식재료가 들어간다. 여느 신선로보다 작은 아리랑 신선로의 국물은 맑고 시원했다. 경상도 제사 때 나오는 탕국물 같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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