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재능기부하는 싱어송라이터 김강주씨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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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31 08:25  |  수정 2017-07-31 08:25  |  발행일 2017-07-31 제29면
“인기 갈망은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사람답게 사는 일”
[이 사람] 재능기부하는 싱어송라이터 김강주씨
지난 20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의 한 카페에서 싱어송라이터 김강주씨가 자작곡 ‘친구야’를 부르고 있다. 이 노래는 최근 방송에 복귀한 배우 오승은씨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불러 화제가 된 바 있다.

“저는 왜관에서 자랐어요. 왜관(외간) 남자, 어른들이 조심하라는 그 남자 있잖아요.”

최근 만난 싱어송라이터 김강주씨(41)는 고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재개그(재미없는 말장난이나 유행에 뒤처진 언어유희)를 툭 던졌다. 헛웃음에 잠시 숨을 돌릴 틈, 그는 사뭇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김씨는 “저는 아직도 철이 안 들었다. 애가 넷이나 딸린 가장인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활동을 전업으로 하고 있는 인디·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다.

대구지역 인디계에서 김씨는 ‘재능기부하는 뮤지션’으로 유명하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적은 돈을 받아가며 공연하거나, 재능기부 차원에서 대구를 배경으로 한 노래를 만들어 뮤지션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대구 촛불집회 무대에 서거나, 국악밴드 ‘나릿’에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작곡한 ‘봄의 염원’을 만들어줬다. 최근에는 바보주막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영화 ‘담장 밖의 수선화에게’ 제작비 마련을 위한 후원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이런 활동은 김씨에게 최소한의 사회활동이다. 그는 “다른 이를 돕는다는 게 경제적으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유가 있는 편도 아니고. 공연이나 작곡, 후원콘서트는 내 깜냥의 지원”이라면서 “뮤지션으로서 대중적 인기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개인의 영달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답게 사는 일”이라고 말했다.


日 위안부 소재 영화 제작후원
창작자에 절반 이상 수익 주는
음원플랫폼 ‘카프 스토리’ 설립
최근 정규앨범 등 준비에 분주


김씨는 한때 불공정한 음악저작권료 분배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나서기도 했다. 2015년 대구테크노파크에서 추진한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참여해 자체 음원 유통 플랫폼 ‘카프 스토리’를 제작한 것.

그는 “음악 1곡이 다운로드되면 창작자가 가져가는 수익은 극히 일부에 그친다. 카프 스토리는 창작자에게 절반 이상의 수익을 주는 구조”라며 “창작자의 몫을 정당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들여 쏟은 시간과 열정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가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내 김희경씨(42)의 이해 덕분이다. 그는 “수입이 일정치도 않고 많지도 않다. 늘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아내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응원해준다”고 말했다.

김씨는 학창시절 법조인을 꿈꿨다. 딸만 셋인 집안에서 귀한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자랐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공부에만 몰두했다.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던 끼를 잘 알지 못했다.

일탈은 고1 2학기에 시작됐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에 성격은 삐뚤어졌고, 공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20세, 농어촌특별전형으로 경북대 법대에 합격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 하나쯤은 들어주자는 생각으로 단 한 곳의 대학에 지원했는데 운이 좋았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학년이 되던 무렵이다. 1996년 가을 경북대 법대 가요제에서 1등을 차지하고 이듬해 봄 경북대 노래마당에서도 우승했다. 경북대 그룹 사운드 ‘그랜드 챕스’에서 보컬로 활동하고 독학으로 익힌 작곡도 시작했다. 악보를 그리지 않고 흥얼거리는 가사와 멜로디를 녹음하는 방식이다.

그는 “악보를 그릴 줄 아는데 그것보다 휴대폰 녹음 기능을 통해 작곡을 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작곡한 노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저작권 등록을 마친 노래는 20여곡이다.

한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뮤지션의 꿈을 접은 적도 있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4년 정도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32세에 결혼한 뒤로 5년가량 보험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둘째 아이가 다쳤는데 돈이 없어 치료를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당시 버스킹(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일당벌이를 해 병원비를 마련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나서일까. 김씨는 한창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28~30일 열린 대구포크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고 지난해 계약한 KM엔터테인먼트와 정규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여수시 세계버스킹대회를 통해 뮤직비디오를 제작 중이기도 하다.

글·사진=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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