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세월호 참사 다룬 ‘악질경찰’ ‘생일’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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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2   |  발행일 2019-04-12 제43면   |  수정 2019-04-12
세월호 참사 5주기 즈음에 응답한 상업영화 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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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오랫동안 나는 2014년 4월16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날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맹골수도)에서 청해진해운이 운영하는 인천항~제주항 정기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해 전체 승객 476명 가운데 304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죽거나 실종된 304명 가운데 단원고 학생들이 유독 많았던 건 수학여행을 가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해난사고들 가운데 둘째로 많은 사상자를 냈고 역대 수학여행 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전대미문의 대형 참사였다.

이 참사는 당시 안전 불감증에 빠져 있던 대한민국의 안전 관리의 현실과 한국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보여준,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다. 이 참사로 출범 2년차였던 박근혜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는 모두 엄청난 후폭풍과 침체, 그리고 공황에 시달렸다. 특히 탑승객의 대부분이 다녔던 단원고가 있던 경기 안산과 시흥시, 세월호가 침몰한 지역인 진도군은 아직까지도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

뉴스 속보로 보도되어 많은 국민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던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가 오보임이 드러난 이후(서울MBC가 단독 보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들이 속수무책으로 수장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면서 나는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영화인 1123인 선언 명단’ 한편에 이름을 올린 것도, 그로 인해 크고 작은 불이익을 받았던 것도 사실은 그런 나를 치유하는 일들에 다름없었다.

더 훗날의 일이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까지 이른 것도 결국 세월호 참사와 연관이 있었다. 국민들의 대통령 탄핵 여론 형성의 시발점은 명백히 세월호 참사였다. 세월호 참사의 무한책임을 정부와 대통령에게 물은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탄핵 소추안에 세월호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던 것도 그런 이유였고, 세월호 참사 직후 석연찮은 7시간30분의 행보와 미용시술 논란,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가한 부당하고 불합리한 탄압은 탄핵 정국에서 박근혜정부가 지지세를 회복하지 못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박근혜정부를 몰락하게 할 만큼 이 참사는 크고 깊었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문화예술계의 응답 가운데 독립영화계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이상호 기자가 연출한 ‘다이빙벨’, 배우 정우성이 내레이션을 맡은 ‘그날, 바다’, 오멸 감독이 만든 ‘눈꺼풀’을 비롯한 많은 세월호 영화들이 그런 응답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독립영화의 태생적 한계로 많은 관객에게 가닿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 5주기 즈음해 나온, 세월호 참사를 다룬 두 편의 상업영화가 더 반가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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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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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경찰’ 이정범 감독 촬영 장면.

영화 ‘악질경찰’(3월30일 개봉)은 ‘경찰이 무서워서 경찰이 된’ 조필호라는 지독하게 나쁜 경찰이 온갖 비리를 저지르다 결국 경찰 압수창고에까지 손을 뻗는다. 이 압수창고에서 알 수 없는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그는 곧 용의자로 몰린다. 조필호는 폭발사고 용의자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 결정적 증거를 갖고 있는 미나(세월호 참사로 친구를 잃은 후 방황하는 여고생)를 쫓지만 두 사람을 동시에 옥죄어 오는 거대기업 태성그룹의 정체를 깨닫는다. 단순한 악행이 아닌 거대한 음모를 숨기기 위해 온갖 비열하고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거대한 악은 나쁜 놈이라 손가락질 받았던 악질경찰마저 바꾸어놓는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범죄에 휘말리고 궁지에 몰리며 거대하게 짜여진 판 속에서 발버둥 치는 조필호와 계속되는 반전과 사건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그는 점점 더 폭주한다. 악질 같은 경찰이 자신보다 더 나쁜 악의 존재에 맞서면서 변모해가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조필호를 통해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배우 이선균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경찰 압수창고 폭발사고 후 용의자 몰린 비리경찰
자신보다 더 비열하고 끔찍한 거대 조직의 음모
참사로 친구 잃은 후 방황하는 미나의 결정적 증거
두 사람 향해 옥죄어 오는 악의존재에 맞서 변모



세월호 참사 이후 2015년 어느 날 무작정 단원고 교실을 그냥 가게 된 이정범 감독은 아이들이 사라진 교실을 직접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실제로 비슷한 또래의 딸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이 감독은 홀린 듯 그 공간 안에 한참을 서 있었는데 학부모로 보이는 어느 분이 들어와 교실을 청소하다 빈 교실에 대고 흡사 아이들이 그 곳에 있는 것처럼 “○○야, 또 올게”하면서 나가는 모습을 보고 그 길로 2년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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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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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이종언 감독 촬영 장면.

영화 ‘생일’(4월3일 개봉)은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들과 참사 당시 해외 출장 중에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나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도 바로 귀국하지 못한 아버지와 남편 없이 홀로 아들의 죽음을 감당해야 했던 어머니로 구성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아들의 생일이 다가오자 안산의 활동가들은 이 가족에게 아들에 대한 기억을 나누는 생일 모임을 제안한다. 영화 속에서 무려 30분 가까이 이어지는 생일 모임 장면(카메라 3대를 놓고 컷을 나누지 않고 롱테이크로 찍었다)은 실제 상황의 재연처럼 주연인 배우 설경구와 전도연뿐 아니라 함께 연기하는 모든 이의 진심이 담겨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무한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울음 앞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견뎌내 온 유가족뿐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울분을 터뜨렸던 모든 이들을 어떤 강요나 기교 없이 다독거린다.


홀로 아들의 죽음 감당한 어머니와 가족 이야기
30분간 롱테이크로 아들 기억 나누는 생일 모임
설경구·전도연 등 출연 배우 모두 진심 담은 연기
각자 방식으로 견뎌낸 슬픔, 기교없이 다독 거려



최근 세월호 CCTV 영상의 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을 설치하라는 목소리가 뜨거운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행사의 주제는 ‘기억식’이라고 한다. 서울과 안산, 진도 팽목항 등 국내 107곳과 국외 6개국 도시 23곳에서 일제히 열린다는데 대구에서도 13일부터 16일까지 시민분향소가 운영되고 13일 저녁 대구백화점 앞에서 ‘세월호 참사 5주기 대구시민대회’도 열린다고 한다. 세월호가 지겹다거나 그만 이야기하자고 말해온 우리는 그동안 세월호 참사에 충분히 슬퍼하고 제대로 고통을 나누었는가. 그러지 못했다면 조금씩 마음을 내어 함께 울고 함께 나누자.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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