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편(一師一便)] 마지막 백성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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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3 07:53  |  수정 2019-05-13 07:53  |  발행일 2019-05-13 제16면

“너희는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마.”

새 학급 발표 후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을 때 너희 모습이 아직 생생하네. 황당한 표정들이었지.

나는 너희들과 특별한 관계이고 싶고 그것을 호칭에도 담고 싶었지. 학교에는 너희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대상이 많잖아.

“나를 ‘폐하’라고 불러라. 한 번 백성은 영원한 백성, 나는 내 백성을 끝까지 책임질 거야.” 어떤 어머님께서는 내가 했던 말을 들으시고 이상한 사람이 담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시더라.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폐하’라고 부르셔서 내가 오히려 당황했었지.

고등학교 3학년, 입시를 앞두고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일 년 동안 폐하와 백성이 만나서 많은 추억을 함께 쌓았네. 한 달에 한 가지 우리 반 미션을 정하고 성공을 축하하며 열었던 간식 시간, 광복절 기념으로 창문에 조그마한 태극기들을 걸면서 함께 만들어 걸었던 우리 왕국의 깃발, 졸업식에 참여할 수 없었던 실장 대신 사진을 크게 출력해서 함께했던 것…. 너희 이후로 담임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 친한 선생님들이 ‘백성’이 없어져서 서운하겠다 하시더라. 응, 진짜 그랬어.

마지막 백성, 너희가 졸업한 이듬해 옮겨온 학교에서 3년째를 맞이하니까 너희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겠구나. 그동안 5월이면 스승의 날 덕분에 너희 메시지를 한 번 더 받고 너희 얼굴을 한 번 더 보게 되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 ‘스승’이라는 이름에 실린 무게처럼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여길 만한 것을 한 가닥이라도 전했는지, 내가 너희 삶에 선한 영향력을 한 자락이라도 끼쳤는지 돌아보게 되니까 말이야. 적어도 내가 너희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져서 학생들을 대할 힘이 나는 것처럼, 너희가 나를 떠올렸을 때 많은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도 함께 떠오르는 그런 존재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구나. 5월 햇살처럼 빛나는 너희를 한결같이 응원한다.

이지나 (대구 경원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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