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중간고사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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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3 07:59  |  수정 2019-05-13 07:59  |  발행일 2019-05-13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중간고사를 마치고

#엄마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 시험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좋은데 말없이 지켜보고 계시면 안 되나요? 간식을 가져와서도 그냥 두고 가면 되는데 꼭 이런 말을 합니다. “중학교 때처럼 대충 건성으로 보지 않나? 거듭 확인해라. 어떤 경우에도 실수해서는 안 된다. 두고 볼 것이다. 네 말대로 정말 점수가 잘 나오는지. 너는 말만 앞세우지 야무지게 마무리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이 문제다.” 안 그래도 첫 시험이라 잘 치고 싶어 걱정이 많은데 엄마까지 옆에서 잔소리를 하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는 하기 싫고, 반항심만 생겼습니다. 첫날 한 과목을 망치고 나니 엄마는 “내 말 제대로 새겨들었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점수는 안 나온다”라며 나무라셨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나니 공부는 더욱 안 되고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시험을 못 치고 나니 학교 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얘는 자기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는 게 문젭니다. 나는 정말로 저 잘되라고 모든 것 다 접고 오직 뒷바라지에만 신경 썼는데 말하는 것 좀 보세요. 내가 내 아이를 잘 압니다. 중학교 때까지 대충 보고 넘어가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어요. 그래서 철저하게 공부하라고 했는데 그게 잘못인가요? 얘는 수학도 눈으로 풀고, 영어도 눈으로만 읽습니다. 볼펜은 왜 들고 있는지 한 번 물어보세요. 얘한테는 필기도구가 아니고 장난감입니다. 볼펜을 입에 물었다가 손가락에 끼워 돌리는 반복 동작을 10분만 지켜보면 내가 왜 이러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요즘 대학 나와서 놀고 있는 청년들 한 번 보세요. 미리 정신 차려야 할 것 아닙니까?

중간고사를 마치고 고1 학생이 엄마와 함께 상담 을 와서 한 말이다. 부모자식 사이에 잘잘못을 따져 봐야 소용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서로 한 걸음씩 물러나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부모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심각한 청년 취업난을 바라보며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고 간섭하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시험 기간 내내 지근거리에서 공부하는 방법까지 간섭하는 엄마 때문에 오히려 공부가 안 되고 불안하다는 아이의 말도 일리가 있다.

모든 일은 자율적으로 수행할 때 즐겁고 행복하다. 시험 결과를 두고 질책하고 나무라기만 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남과의 상대적인 비교도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은 시험공부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 되었고, 무엇을 제대로 하지 않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는가를 차근차근 짚어보고 다음 시험에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어제보다 오늘 내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으며, 오늘처럼 노력하면 내일 얼마나 더 좋아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우리 모두는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한다. 시험이 끝났으니 휴식을 취하며 심기일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부모자녀가 오월의 들길이나 산길을 함께 걸으면서 보다 나은 내일을 이야기하며 다시 힘을 내자.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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