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문의 가치는 현재진행형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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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1   |  발행일 2019-08-01 제25면   |  수정 2020-09-08
[기고] 신문의 가치는 현재진행형

나는 신문을 읽는다. 별스러울 것 없지만 10여년째 독자로의 역할을 한다. 신문 개별로의 사풍(社風)이 있어 최대한 다채로운 매체를 접하려 한다. 사실 언론과 무방한 위치에 있는 내가 이 글을 시작하는 것이 어불성설로 비칠 수 있다. 그저 신문의 아날로그 짙은 감성을 향유하고픈 여느 독자의 소소한 바람 정도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사양(斜陽)’은 여러 함의를 내포한다. 성장의 반대이기도 한 서글픈 편린(片鱗)만을 간직할 터. 열거하기에 송구하지만 신문 역시 사양 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가구별 신문 구독률은 1990년대 초 70%에 육박하던 것이 지난해 기준 10%대로 곤두박질쳤다. 특히 청소년의 신문 구독률은 현재 3%대를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양이라는 믿기 싫은 현실을 수치로 공고히 한 셈이다. 역설적으로 인터넷의 비약적 발전이자 이를 통한 온라인 미디어의 홍수 속, 정확도에 앞서 신속·편의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니즈에 신문은 고리타분하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신문의 잠재적 가치는 현재진행형이다. 쇠락했다고 하지만 언론의 저널리즘적 기능은 공신(公信)의 서슬 푸름을 여전히 간직한다. 워런 버핏은 워싱턴 포스트에 투자해 1조원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버핏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자국 내 70여개의 일·주간지를 인수했다.

국내 굴지의 경제연구소 역시 한 보고서를 통해 ‘포털의 방대한 데이터 추출로 신문의 쇠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아직까지 신문은 미디어계의 주축으로 건재하다’고 분석했다. 연구소 측은 그 사례로 뉴욕타임스를 들었다. 뉴욕타임스 평일 판에 비해 4배 이상 비싼 주말 판이 아이러니하게 평일 판 대비 2배 가까운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다.

신문은 국민과의 소통창구로 정의된다. 종이신문의 차별적 메리트란 분명 산재해있다는 이유에서다. 포털서 미처 담아내지 못한 분석이 종이신문에는 있다. 이를 통해 심도 있고 전방위적 정보를 국민에게 오롯이 제공하는 일련의 작업, 종이신문의 자존이자 퇴색하지 않은 명분임을 방증한다. 니즈에 맞는 신속한 취사선택이 인터넷의 강점이라면, 신문은 전 분야를 망라, 정독할 수 있는 특유의 아날로그적 기능이 묻어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공공재다. 사회를 지탱하는 구심점이라는 것이다. 다변화된 사회현상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것이 신문이다. 그에 대한 해법제시를 위해 공론화 과정을 유도하는 것 또한 신문 고유의 역할이다. 시쳇말로 지라시 등의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작금의 현실에서 종이신문은 수많은 심의와 교정·교열을 거친 정제된 정보를 제공하는 유일의 매체다.

칼럼과 만평 등에서 펼쳐지는 무릎을 탁 치게 할 풍자는 필요한 어젠다를 적극적으로 설정, 국가발전을 위한 여론형성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교육적 측면으로의 역할 또한 만만찮다. 일선 학교에서 수행 중인 신문활용교육(NIE)은 학생들의 가치관 성립과 지적능력 제고에 단단한 몫을 하고 있다.

나는 작은 기업의 기업가다. 그래서 미력으로나마 ‘신문보기’를 주창한다.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구분 없이 신문열독운동을 펼치려 한다. 오지랖이 아니다. 쇼맨십은 더욱 아니다. 다양한 신문의 병독을 통해 무지한 자신이 복안(複眼)적 시각을 체득했음을 더불어 공감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나는 신문을 권장한다.

100W에 육박하는 매끈한 블루투스 스피커보다 아날로그 향을 담뿍 품은 턴테이블의 긁는 소리가 더욱 정겹다. 그저 신문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까칠거리는 촉감, 뭔지 모를 오묘한 냄새가 좋다. 포털에 없는 공감각적 영역을 신문은 일깨운다. 이동군 (군월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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