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무모한 전쟁 벌였나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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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7   |  발행일 2019-08-17 제16면   |  수정 2019-08-17
생생히 읽히는 태평양전 通史
일본제국 패망사
일본은 왜 무모한 전쟁 벌였나
임무 전날의 가미카제 조종사들. 가미카제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를 일컫는다. <글항아리 제공>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자 대한민국에서는 ‘NO JAPAN’을 외치며 불매운동과 일본여행금지가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일본’이라는 단어가 적대적이 됐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일본’이라는 단어로, 거기에다 ‘제국’의 지위까지 붙여준 책이 출간됐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는지 궁금해졌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일본에 대해 ‘제국’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실수라는 지적을 하고 싶다. 일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제국’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출판된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에 나타난 제국의 기준을 적용해 보자.

전쟁사 거장 존 톨런드의 퓰리처 수상작
진주만기습 앞 수뇌부 갈등부터 패전까지
방대한 자료 재구성 전쟁속내까지 드러내
참전자들 인터뷰로 사실성·충실성 더해

제국이 되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경쟁국들이 장악한 권력을 분명히 능가해야 하는 권력에다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같은 권력과 군사력, 경제력이 특정한 지구상의 방대한 구역과 방대한 인구에 대해 행사되어야 한다. 그리고 ‘관용’이 있어야 한다. 에이미 추아의 관용은 인종·종교·민족·언어 등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개인이나 집단이 특정 사회에 참여하고 공존하면서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자유를 말한다. 그래서 에이미 추아는 단호한 어조로 독일과 일본처럼 관용이 없는 나라도 ‘번영’은 이룰 수 있지만 ‘제국’이 될 수는 없었다고 못 박았다.

일본은 왜 무모한 전쟁 벌였나
존 톨런드 지음/ 박병화·이두영 옮김/ 글항아리/ 1400쪽/5만8천원

‘THE RISING SUN’이 원제인 이 책은 1936년에서부터 1945년까지 10년간 진행된 일본과 미국 간의 태평양전쟁을 다루었다. 전쟁사의 거장으로 불리는 존 톨런드는 이 책으로 1972년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이 책에서 하와이 진주만 기습공격을 앞둔 일본 수뇌부의 대립과 갈등부터 진주만 기습, 미드웨이 반격, 솔로몬 해전, 필리핀 전투, 원폭 투하 등에 이르는 태평양전쟁을 수많은 자료와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되살려내고, 글을 읽는 사람들이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이런 객관적 사실로는 일본이 미국과의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나선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다. 군부 핵심들도 일본의 석유비축량이 2년밖에 안되고 1년 정도면 전쟁에서 성공할 수 있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자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것은 사고가 마비됐기 때문이다. 사실 가미카제가 미국 함대에 뛰어드는 것이나 불나방이 등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똑같다.

병법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도 하지 않는 일을 일본 수뇌부가 간과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공격을 하는 쪽이 방어를 하는 쪽을 이기기 위해서는 몇 배나 많은 병력의 우위가 있어야 한다. 일본과 미국 본토까지 수천㎞에 이르는 전장에서의 보급은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이렇다보니 일본은 미국 본토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태평양에서 싸웠을 뿐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일본과 미국이 싸웠지만 ‘미·일 전쟁’이 아니라 ‘태평양전쟁’인 이유다.

1281년 몽골이 일본을 침공했을 때 우연히 들이닥쳐 몽골함대를 침몰시킨 태풍인 ‘신의 바람(神風·가미카제)’이라는 미신까지 빌려 전쟁을 치러야 할 정도로 허약한 일본 수뇌부의 판단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기회주의’나 ‘판단착오’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라기보다는 ‘광기’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전체주의가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면 한 나라가 얼마나 미쳐버리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이 저지른 전쟁의 속내다. 일본 수뇌부가 미국과의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1년여를 고심했다고 하지만, 결과는 무모한 전쟁과 패망이다.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과 일본사회가 패전 이후에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자신들끼리의 이야기일 뿐이다. 피해자인 우리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일본은 발빠르게 서구의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번영’을 이루었고, 그 번영을 발판으로 한반도와 중국, 동남아까지를 점령하면서 더 큰 야욕을 품게 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관용’은 없었다. ‘내선일체’라며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한 것은 물론 징용이나 성노예로 육체까지 망가뜨렸다. 군인만이 아니라 광기는 민간인도 마찬가지였다.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이후 혼란의 책임을 돌리기위해 만들어낸 조선인 약탈과 방화라는 거짓말과 조선인 집단 학살은 군인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자경대라고 이름 붙인 평범한 시민들이 벌인 살육이었다.

현대 일본인들은 알아야 한다. 현재 일본 우익집단의 우두머리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가 꿈꾸는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전국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을 황폐하게 만든 가해자라는 것을. 이 책이 일본에서도 발간됐는지 궁금하다. 발간되지 않았다면 빨리 발간되고, 발간됐다면 많은 일본인이 읽어보길 권한다. 아베의 ‘광기’에 또다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전영기자 younger@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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