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타짜:원 아이드 잭’ 박정민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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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6   |  발행일 2019-09-06 제43면   |  수정 2019-09-06
요즘 트렌드 맞는 인생 한방 제대로 터트려야죠
20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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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이지만 칠판보다 포커판이 더 익숙한 도일출에게 접근한 타짜 애꾸(류승범)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누구든 이길 수 있는 무적의 카드가 바로 나”라며 50억원을 놓고 벌이는 대사기극에 합류할 것을 제안한다. 애꾸가 도박 빚에 목숨을 잃을 뻔 했던 그를 살려준 건 전설의 타짜 짝귀의 아들답게 타고난 배짱과 센스가 있음을 미리 간파했기 때문이다. 포커판을 무대로 인생 한방을 준비하는 이들의 화려한 팀플레이가 압권인 ‘타짜: 원 아이드 잭’은 ‘타짜’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이자, 원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는 3부를 기초로 했다.

케이퍼 무비를 보듯 한 팀을 이뤄 사기극을 펼칠 개성넘치는 멤버(이광수·임지연·권해효)의 조합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조승우, 최승현의 뒤를 이어 ‘타짜’ 시리즈의 바통을 이은 배우 박정민이다.

“워낙에 아성이 어마어마한 전작들이라서 내가 이걸 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부담감이 있었지만 평소 나를 눈여겨봐 온 권오광 감독을 믿고 선택했다”며 “시작은 두려웠지만 편하고 즐거웠던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요령을 피우기보단 힘들고 고되더라도 매번 정석의 길을 택해왔던 그다. 그만큼 치열한 준비 과정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캐릭터를 완성해왔던 박정민에겐 분명 가슴 뛰는 도전이었을 듯. “소년의 얼굴로 시작해 남자의 얼굴로 거듭나는 박정민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권오광 감독의 말마따나 박정민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정한 타짜로 변모해나가는 과정을 섬세한 연기력으로 담아냈다.

포커판 무대, 화려한 팀플레이 세번째 이야기
내 단편작품 본 감독님 진심 느껴져 출연 결정
풍파 이겨내고 멋있게 변화된 남자의 모습 관건
밑장 빼기 등 7개월간 기본적인 포커 스킬 훈련
동경하던 류승범 형과 연기, 작년 최고의 행운
안전하게 서사 이끌고 전달하는 과정 중점 둬
상업영화 출연, 가치 인정해 주는 분 많아 행복
황정민·이정재 선배와 나오는 차기작도 놀랄 것

▶타짜 시리즈의 주인공이 됐다. 전작들이 워낙 흥행작이다보니 부담감이 상당할 듯 한데.

“굳이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전작에 나왔던 선배님들 모두 한국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는 분들이다. 그런 작품을 이어받는 것이니 부담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타짜가 영화로 나온 지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관객도, 시대도, 성향도 변했다. 나와 감독님, 스태프 대부분 타짜를 보고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던 세대다. 전작의 무게감에 짖눌리기 보다는 요즘 트렌드에 맞게 우리식의 타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고 돌파구를 찾았다.”

▶청년의 느낌이 강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엔 성인 남자의 분위기가 풍겼다.

“이미지 변신을 염두에 둔 건 아니고 타짜에 어울리는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습과는 다른 연기를 보여줘야 했다. 다른 연기란, 주로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선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평소 내 모습을 캐릭터에 투영시켰다면, 이번엔 나를 내려 놓고 가급적 멀리 떨어트렸다. 즉 상업영화에 어울리는 장르적인 캐릭터가 돼야 했다. 관객들이 봤을 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영화에서 보고 싶어하는 인물로 그려지기 위해 노력했다.”

▶타짜에는 어떤 모습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내가 연기적으로 어떤 변화를 주든 박정민이 평소 보여줬던 모습은 묻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엔 나와 철저히 거리를 뒀다. 내가 익숙하고 잘하는 걸 보여주면 편하겠지만 타짜에는 안 어울릴테니 일부러 기존의 모습을 배제했다. ‘파수꾼’(2011)에서 보여준 모습은 ‘파수꾼’에 어울리는 연기이고, 타짜는 어쨌든 오락영화이고 관객이 봤을 때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 부분에 있어서 도일출은 멋이라기 보다는 갖은 풍파를 겪고 이를 오롯이 이겨낸 한 남자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다움은 물론 그냥 봐도 멋있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캐릭터에 접근했다. 이를 위해 체중도 20㎏ 정도 감량했다.”

▶고스톱과 화투를 다룬 전작들과 달리 이번엔 포커를 소재로 삼았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타짜2’에서 도움을 준 마술사 선생님이 이번에도 기본적인 스킬을 가르쳐 주셨다. 셔플과 밑장 빼기 등 기본적인 스킬을 7개월 정도 배웠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좀더 난도가 있는 스킬을 연습했고 스피드를 높여나갔다. 직접 포커를 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싶어 유튜브로 포커대회 동영상도 찾아봤다. 하지만 사실 나보다 광수형이 고생을 더 많이 했다. 실제 타짜들도 어느 정도 세팅이 돼야 완벽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데 형이 극중에서 보여준 건 정말 많은 조건들이 수반되는 고난도 스킬이었다. 감독님도 애초 이 부분을 CG로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나중에 형이 그 기술을 완벽히 구사해서 모두가 놀랐다.”

▶류승범을 만난 건 작년 한 해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말했는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을 때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보면서 동경했다. 승범 형이 외국에 계셔서 언제 같이 (연기를)해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갑자기 인연이 됐다. 캐스팅되고 한국에 오셨다길래 찾아갔는데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나를 보자마자 ‘정민아, 네가 정민이구나’하면서 안아주더라. ‘어떻게 이 텐션을 맞춰야 되지’하면서도 너무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니까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해졌다. 일기장에도 적어놨는데 내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이 시기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승범 형이 멘토 역할을 잘 해줬고 힘든 시기에 상담도 많이 해줘서 너무 감사했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형이다.”

▶권오광 감독이 캐스팅에 앞서 당신에게 장문의 e메일을 써서 보냈다고 했는데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었나.

“처음에는 배우에 대한 잘못된 소문과 오해를 풀어주는 내용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정작 내 마음을 움직였던 건 나에 대한 감독님의 진심이 느껴져서다. 감독님이 나와 같은 학교(한예종) 출신인데 당시 단편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분이셨다. 그 분이 학교에 다니면서 나를 쭉 지켜봐왔다는 거다. 아무도 모르는 내 단편 출연작들을 보고 느낀 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내왔다. 그리고 당위성이라고 할까. 감독님이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도일출이란 인물과 내가 어떤 점이 맞닿아 있는지 구체적인 설명까지 곁들였다. 모든 걸 떠나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지켜봐 온 감독님이 있었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 메일을 읽자마자 어떤 작품이든 감사히 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타짜:원 아이드 잭’은 원작과 달리 케이퍼 무비의 느낌이 난다. 캐릭터와 기본 골격을 제외하면 모든 게 새롭게 각색됐다. 혹시 원작을 읽어봤나.

“타짜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다. 원 아이드 잭도 당연히 재밌게 봤다. 워낙 인기를 끌었던 만화였던 만큼 원작 팬들이 기대하는 나름의 킬링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도일출이 궤짝에 갇혔다가 나오면서 살이 빠지는 장면이 있는데 꼭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런 장면들을 볼 수 없다. 영화 출연을 확정하고 나서 다시 만화를 봤는데 지금 시대에 반영하기엔 안 맞는 부분이 많았다. 원작의 3부는 이전의 1, 2부와 달리 치정극도 있고 관계가 너무 복잡해서 영화로 압축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놓고 감독님이 많은 고심을 했다. 시대도 바뀌었고 2019년 개봉에 맞춰야 하니 아예 판을 새롭게 짜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나 역시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타짜’의 문법을 가져오되 그대로 답습하기보단 새롭게 판을 짜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요즘 트렌드에도 맞고 흥미로울 것 같았다. 말씀하신 것처럼 케이퍼 무비의 느낌이 난 점도 개인적으로 좋았다.”

▶도일출 캐릭터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건 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친구의 스토리로 가는 영화이다보니 전체적인 맥락을 꿰고 있는 게 중요했다. 자칫 실수를 범하면 드라마 전체가 삐끗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감독님과 자주 만나 한 신 한 신 꼼꼼하게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개인적으로는 나만의 스토리 보드를 만들어서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썼다. 그리고 간혹 놓치는 게 있거나 미흡하다고 생각되면 감독님에게 재촬영을 부탁드렸다. 아직 내가 경험이 미천하다보니 전체를 꿰뚫는 능력이 부족하다. 때문에 캐릭터나 연기의 디테일은 차후의 문제이고 서사를 안전하게 이끌고 전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당신의 필모에서 영화 ‘동주’(2015)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가르는 기점이 됐는데, 현장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분명 달라졌을 것 같다.

“많이 달라졌다. 상업영화에 첫 출연했을 때는 많이 갈등하고 자책했다. 내가 독립영화계 쪽에선 잘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었는데 상업영화를 하면서 내 그릇의 크기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 내 그릇이 여기(상업영화)까지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한 거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술한잔 하고 이준익 감독님에게 넋두리 문자를 보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차츰 해결이 되더라. 어쨌든 ‘동주’와 ‘변산’ 때문에 이준익 감독님을 만났고, ‘사바하’로 장재현 감독님과 이정재 선배님을 만났고, 이번에 타짜로 권오광 감독님을 비롯해 많은 분을 만나면서 관계를 넓혀갈 수 있었다. 한편으론 영화를 잘 만들고 싶은 내 마음과 생각들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감독님들이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상업영화가 재밌고 편해졌다. 내 그릇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나를 좋아해주는 동료들이 있고, 내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은 마냥 행복하다. 현장에 나가는 게 요즘은 너무 즐겁다.”

▶평소 글쓰는 것을 즐겨하는 편인데 지난 7월엔 홍대에 책방까지 오픈했다.

“쉬쉬했던 건데. 기사가 나가면서 요즘 손님이 엄청 많아졌다. 글을 쓰는 건 예전부터 꾸준히 해 온 일인데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시작한 건 아니다. 아무생각없이 그날 그날의 생각을 일기나 시나리오, 혹은 산문이나 시의 형식으로 자유롭게 끄적거린다.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 보여줄 생각은 없다. 공개 안한다는 걸 전제로 쓰다보니 욕과 네거티브가 난무한다.(웃음) 책방은 아는 지인과 함께 오픈한 건데 촬영이나 스케줄이 없으면 책방을 지키는 편이다. 손님과 책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즐겁다.”

▶또 다른 관심사는 뭔가.

“다음 영화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영화인데 황정민, 이정재 선배와 함께 출연한다. 이번에도 좀 배울 게 있는 역할인데 아마 영화를 보게 되면 깜짝 놀라실 거다.(웃음) 그래서 어떤 영화인지 알려 줄 수 없다. 나에게도 너무 어려운 역할이고, ‘얘가 여기까지 가는구나’라고 생각하실 것 같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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