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이계벽 감독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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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9 08:15  |  수정 2019-09-09 08:16  |  발행일 2019-09-09 제23면
“대구 지하철 화재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 위로의 손 내민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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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요, 미스터 리’ 포스터

“우리 주변에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을 포함해 여러 상처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영화가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작 ‘럭키’로 7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계벽 감독의 신작 ‘힘을 내요, 미스터 리’에는 그런 그의 진심이 담겼다. 철수(차승원)와 샛별(엄채영)의 예기치 않은 동행을 다룬 영화는 부녀의 숨겨진 과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소환해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코미디는 바탕이 될 뿐, 이계벽 감독 특유의 선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로 승화돼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휴먼 드라마로 완성됐다. 이계벽 감독은 그 과정에서 “대구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와 배려가 현장에 힘을 불어넣는 데 크게 한몫했다”며 “특히 대구역에서부터 동성로까지 한 번에 이동하면서 찍는 장면은 제작진을 쫓아 이동하며 소음부터 차량까지 함께 통제해주는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배우들이 자칫 몰입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도 감정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한 그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18 안전문화재단분들 만나 이야기
대구사람 알만한 랜드마크 돌며 촬영
시민들의 불평 한마디 없는 협조 감사
소방서 덕에 실감나는 출동장면 완성
현장에 안전선 필요 등 디테일도 도움
딸 역할 맡은 엄채영 만장일치로 뽑아


▶오래 전 연출을 고사한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연출을 맡게 됐나.

“‘올드보이’ 조감독인 한장혁 감독이 오래 전에 쓴 시나리오다. 원래는 엄마와 아들 얘기였는데 전혀 다른 시나리오가 돼서 나에게 왔다. 그 안에 대구 지하철 참사가 스치듯 그려져 있었다. 고민이 되더라. 일단 자료 조사차 대구로 내려갔고, 먼저 2·18 안전문화재단을 찾아가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현장에 계셨던 소방관들까지 수소문해 인터뷰도 진행했다. 그분들은 아직도 고통을 안고 산다. 그런 고통을 알게 되니 영화를 안 만들 수가 없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사건은 절대 잠깐 스쳐지날 게 아니라는 생각에 영화의 방향을 아예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바뀌었고 내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각색했다.”

▶가장 중점을 둔 건 뭔가.

“안전문화재단분에서는 16년 전 사건이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그 분들의 마음을 알기에 스태프에게도 대구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대구 시민들이 느끼지 못한다면 이 영화는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을 대구에서 촬영했다. 대구 사람이라면 영화의 이야기가 대구의 랜드마크를 오가며 진행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야구경기장 앞 도로에서 시작해 동성로로, 또 대구역에서 중앙로역까지 가는 길 등 영화에 등장하는 동선이 모두 실제 장소다. 대구 시민들에게 너무 감사한 게 그 오랜시간 동안 불평 한마디 없이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대구 시민들이 이렇게 협조를 해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같다. 촬영하는 내내 존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촬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아무런 불평없이 돌아서 가고, 혼잡한 중앙로를 서너 시간 통제해도 기꺼이 불편을 감수해줬다. 우리가 손님이라고 생각했는지 너무 잘 대해줬다. 관할 소방서에선 공간은 물론이고 소방차까지 협조해줘 낮에 출동하는 장면들을 실감나게 담아낼 수 있었다. 특히 화재 현장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안전선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는 등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세세히 알려주셨다. 영화로나마 그분들께 힘을 보태고 싶었는데, 오히려 우리가 많은 힘을 얻었다.”

▶과거의 아픔을 코미디에 접목시켰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코미디의 수위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코미디 수위가 높아지면 장애인을 비하하거나, 희화화하는 느낌을 줄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아닌게 아니라 예고편이 나간 후 장애인을 희화화하고 당시의 아픈 상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철수는 선천적 장애가 아닌 사고 후유증을 지닌 인물이다. 때문에 기존 영화들과 다른 연기 톤이 필요했다. 코미디적인 요소로 시작했지만 철수의 과거가 밝혀지는 이후부터 차츰 미스터리가 풀리는 구조인데 아마도 영화를 보고 나면 충분히 오해가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당시 상처를 받은 분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어떤 생각과 고민들을 하고 있을지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예능 ‘삼시세끼’의 파트너인 유해진과 차승원이 당신의 영화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부성애 연기는 개인적으로 차승원 배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옛날부터 형님의 코미디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왜 코미디 연기를 안 할까 궁금했다. 형님이 캐스팅된 후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지켜보면서 느낀 건, 내가 아무리 철수 역할을 위해 그 (잘생기고 멋진) 모습을 바꾼다 하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 차승원 본연의 특징이나 이미지를 완전히 배제하고 갈 수는 없겠다는 점이다. 철수를 운동을 좋아하는 건장한 인물로 바꾼 건 그런 이유다. 또 (유)해진 형님과 승원 형님이 만들어내는 개그 포인트가 묘하게 닮아 있다. 즉, 대중이 바라보는 배우의 어떤 고정적인 이미지를 비틀거나 혹은 과장해서 표현하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그런 점들을 이야기에 녹여내려고 했다.”

▶철수의 딸 샛별 역의 엄채영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많은 아역배우들이 오디션을 봤는데 다들 너무 잘하더라. 채영이는 최종 오디션까지 올라왔고 이미 잘 알려지고 경험이 있는 아역배우들 7~8명과 경합을 벌였다. 그런데 채영이가 코미디 연기를 하더라. 샛별이가 아픈 아이니까 모두 굉장히 아픈 아이처럼 연기를 했는데 채영이만 굉장히 씩씩하고 밝은 모습으로 연기를 했다. 영리하다고 느꼈다. 그 자리에 있던 배우들과 투자사, 제작사 관계자 모두 만장일치로 채영이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촬영하는 동안에도 감탄의 연속이었다.”

▶어떤 메시지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나.

“이 영화는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따뜻한 위로라고 생각한다. 안전문화재단에서는 그 날의 사건이 잊히는 게 두렵다고 했는데, 이 영화가 그 때의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도 있지만, 사실 피해자분들을 위로해 주고 싶어도 그동안 방법을 몰랐고, 어떻게 손을 내밀어야 할지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런데 (영화가) 너무 외면을 받으면 또다시 그분들이 외면을 받는다고 생각할까봐 그게 제일 두렵다. 관객들이 그분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면 좋겠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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