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오비이락 파사두야

  • 이은경
  • |
  • 입력 2019-10-05   |  발행일 2019-10-05 제23면   |  수정 2020-09-08
[토요단상] 오비이락 파사두야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오비이락(烏飛梨落)’은 한자를 그대로 풀어보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로 흔히 좋지 않은 일이 공교롭게도 연속적으로 일어날 때 쓴다. 사전적 의미는 아무 관계없이 한 일이 공교롭게도 때가 같아 억울하게 의심을 받거나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됨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오비이락은 우연히 공교롭게도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일 뿐이다.

실은 이 ‘오비이락’ 말의 전후에는 엄청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불교설화에 “오비이락 파사두야(烏飛梨落 破巳頭也)”라는 구절이 있다. 까마귀가 배나무에 앉아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날갯짓을 하다가 그만 배를 건드려 떨어졌는데, 마침 배나무 밑에서 똬리를 틀고 쉬고 있던 뱀의 머리에 떨어져 뱀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까마귀는 죽어서 꿩으로 태어나고 뱀은 죽어서 두더지로 태어났다. 노상 땅 속을 헤집고 다니던 두더지가 어느 날 바위를 건드려 그 바위가 밑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마침 양지바른 곳에 낳아 놓은 꿩 알 위로 떨어져 알이 모두 깨지고 말았다. 결국 뱀은 까마귀에게 원수를 갚은 셈이다. 그 이후, 꿩은 죽어서 사냥꾼으로 태어났고, 두더지는 죽어서 멧돼지로 태어났다. 그리고 이 사냥꾼은 다른 것은 잡지 않고 오로지 멧돼지만을 잡으려고 했다.

어느 날 산에서 멧돼지를 발견한 사냥꾼은 멧돼지를 잡으려 쫓고 있는데 멧돼지는 도망가다 한 암자에 숨어들었다. 마침 그 암자에는 전생을 훤히 내다보는 고승이 살고 있었다. 멧돼지를 보지 못했냐는 사냥꾼의 말에 고승은 사냥꾼과 멧돼지 사이에 얽혀져 내려온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사냥꾼은 더 이상 멧돼지를 잡지 않고 출가하여 불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오비이락’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곰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곰이 어린 새끼 네 마리를 데리고 개울에서 먹이를 잡아 어린 곰에게 먹이려고 했다. 어미 곰이 물속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들고 있으면 그 속에 숨어 있던 가재들을 새끼 곰들이 잡아먹는 식이다. 그날도 어미 곰은 낭떠러지 밑에 있는 개울에서 바위를 들고 새끼 곰들에게 먹이를 먹게 하고 있는데, 마침 낭떠러지 위를 지나던 나그네가 무심코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어미 곰이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바위를 놓쳐 그만 그 밑에 있던 새끼 곰 네 마리가 모두 죽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곰은 죽어서 까마귀로 환생했고, 나그네는 죽어서 뱀으로 태어나 ‘오비이락’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과(因果)의 이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나의 신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그 원인과 결과를 놓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고 집요하리만치 파고들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자신의 기억과 경험이 깊게 관여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것만 같기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비이락’의 경우 한 생을 뛰어 넘어서 그 인과에 대한 응보의 결과가 나타나는데, 최근에는 인생의 시계가 인터넷 속도만큼 빨리 흘러가버리는 탓인지 현생에서 그 결과를 자신이 직접 받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30년 전에 일어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밝혀지게 된 것도 그렇고,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가 저지른 각종 비리와 비윤리적인 일 역시 당사자가 살아있는 생전에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면 딱 맞아 떨어지는 일이다. 이제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반드시 그 결과를 받는다는 마음으로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