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한국 문화재 고국 찾기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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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4   |  발행일 2019-10-14 제31면   |  수정 2019-10-14
[월요칼럼] 한국 문화재 고국 찾기
김수영 논설위원

최근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영국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에게 눈길 끄는 공개 제안을 했다. “‘엘긴 마블’을 장기대여 방식으로 돌려달라. 그러면 그리스 밖으로 한번도 나간 적이 없는 값진 예술품을 대영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제안의 요지다.

그리스와 영국 간에 엘긴 마블 분쟁은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엘긴 마블이 도대체 뭐길래 이런 분쟁거리가 됐을까. 엘긴 마블은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상단 외벽을 장식하던 조각들이다. 19세기 초 그리스를 지배하던 오스만투르크(터키) 주재 영국대사였던 엘긴 백작가문의 토마스 브루스가 자신의 저택을 꾸미기 위해 파르테논 신전의 일부를 떼어내 영국으로 가져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국정부는 엘긴 마블을 구매해 대영박물관에 소장하도록 했다. 이후 엘긴 마블은 대영박물관의 인기스타가 됐다. 엘긴 마블 덕분에 그리스 고전미술의 정수를 보려는 관람객의 발길은 그리스가 아닌 대영박물관으로 이어졌다. 1829년 터키에서 독립한 그리스는 엘긴 마블이 도난당한 것이라며 영국에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영국은 오스만투르크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반출했다며 돌려주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문화재 약탈행위인 ‘엘기니즘’, 문화유산 등을 파괴하는 ‘반달리즘’도 엘긴 마블 분쟁에서 비롯됐다. 그리스 총리의 제안에 영국 총리가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세계가 주목하는 것도 문화재 약탈과 환수에 대한 상징성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 또한 그리스와 처지가 비슷하다. 일본, 프랑스 등 과거의 열강을 상대로 문화재 반환요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문화재들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18만여점에 달한다. 문화재환수전문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인해 환수한 문화재는 수백점에 그친다. 문화재를 환수하는 방법은 구입, 기증, 국가 간 협정 등이다. 기증이나 국가간 협정은 쉽지 않으니 구입에 의존한다. 그런데 문화재 대부분이 아주 고가여서 구입에 한계가 있다.

국가 간 협정을 통해 반환을 받는 것이 좋지만 쉽지 않다. 빼앗긴 것이니까 돌려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열강의 지배를 받았던 세계 여러나라가 독립한 뒤 문화재 반환을 요청하고 있으나 대부분 반환 불가라는 통지만 받고 있다. 1970년 유네스코가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에 관한 협약’이라는 국제법상의 협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국가 간의 합의가 필요하고 비준국들 사이의 문제라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엔 강제할 수 없다. 또 협약은 소급되지 않아 1970년 이전의 문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한일경제 마찰이 심해지면서 일제강점기때 일본으로 반출된 한국문화재의 환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국립도쿄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박물관, 도서관, 사찰 등에 우리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다. 전문가들은 고려말 왜구의 침략,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7만여점의 문화재가 반출된 것으로 분석한다. 이중 불법 반출된 것도 상당수이지만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정부의 청구권이 종료됐다고 주장한다. 최근 일본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문화재 환수까지 끝나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문화재 환수와 관련해 반가운 소식이 들려와 그나마 다행이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개발사 라이엇 게임즈가 반출된 우리 문화재 찾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뉴욕 경매에 출품된 조선왕실 유물 2점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견해 라이엇 게임즈에서 후원하는 ‘국외소재 문화재 환수 기금’을 활용해 매입했다. 라이엇 게임즈는 그동안 총 5건의 문화재 환수를 지원했다. 의식있는 기업이 고향을 떠나 정처없이 떠돌고 있는 우리 문화재에 안식처를 찾아주고 있다.

문화재는 단순한 학문적 연구대상이 아니라 민족의 정신과 정체성을 담고 있다. 한 집단의 구심체가 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측면에서 고국을 떠난 문화재 환수는 우리 정신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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