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교사가 이끄는 스쿨밴드 “음악으로 더 큰 소통 배워”

  • 최미애,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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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1 07:45  |  수정 2019-10-21 07:45  |  발행일 2019-10-21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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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대구동촌중학교에서 밴드 부원들과 허경호 교사가 ‘여행을 떠나요’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지난 15일 오후 4시 대구동촌중학교 영어 전용 교실. 교실에 들어서자 음악 교실에서도 보기 힘든 드럼, 기타, 키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매주 4일 정도 이 시간대면 이곳은 밴드부 연습실이 된다.

교실에서 동촌중 밴드 지도교사인 허경호 영어 교사(39)와 학생들을 보자 떠오른 건 영화 ‘스쿨 오브 락’. 이 뮤지컬에서 대체교사 듀이 핀은 아이들이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우연하게 듣고 아이들과 함께 록밴드를 만들게 된다.

시각 장애 영어교사 동촌중 허경호씨
지난달 교내 학생 7명 모아 밴드 결성
소리로만 의사 전달해야 해 힘들지만
서로 신호 만들어가며 문제 풀어나가
“유대감 생기고 장애인식 개선에 도움”


허 교사도 학생들과 함께 밴드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 다섯 살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은 그는 중학생 때부터 드럼, 기타를 연주하는 법을 배웠다. ‘시각장애가 있으면 무기가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계기가 됐다. 청각 관련 능력이 뛰어나면 자신에게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악기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다른 학교의 밴드부를 지도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재직 중인 학교의 학생들과 밴드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지난달 초 밴드부원 모집 공고를 내고 학교에서 버스킹을 하기로 했다. 총 7명의 학생이 모여 밴드가 만들어졌다. 밴드는 허 교사를 포함한 기타 2명, 베이스 1명, 키보드 2명, 드러머 1명, 탬버린 1명, 보컬 2명으로 구성됐다. 처음 모집할 때는 악기 갖추는 데 돈도 들고 악기 연주에 재능있는 아이들도 모여야 한다고 생각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막상 모집해보니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카더라 통신’의 도움도 얻었죠. ‘누가 기타를 잘친다’는 얘기를 듣고 데려오기도 했고요. 음악을 전공하고 싶은 학생, 구경하러 왔다가 하게 된 학생도 있어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생들과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시각장애인인 그에게도 동아리 지도가 만만치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일단 연습시간에 밴드 부원들을 다 모이게 하는 것부터 어려웠다.

허 교사의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선생님과 소통하는 걸 어려워했다. 한 달여간의 연습을 거치면서 청각 신호로만 소통해가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손짓으로 사인을 주고 받기 어렵다보니 허 교사와 밴드부원들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를 연주로 표현하는 방법도 터득했다.

밴드 연주를 위한 장비도 학교에 많지 않았다. 학생들은 각자 악기를 가져오기도 하고, 허 교사도 앰프 등을 가져오면서 조금씩 밴드의 구성을 갖춰나갔다. 지난 11일 열린 학교 축제에서 밴드는 ‘여행을 떠나요’ ‘가시’ ‘나는 나비’ 등의 노래를 불러 학생과 교사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밴드 부원인 3학년 오동규 학생은 “원래 영어 선생님으로 알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영어교실에서 가끔 기타를 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이 기본적으로 음악적 재능이 있는 데다 밴드 부원도 생각보다 잘하고, 다같이 열심히 하니까 결과도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허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밴드 활동이 학생과의 유대감을 생기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밴드의 주를 이루는 3학년 학생이 졸업한 후에도 밴드를 하나 더 만들어 활동을 이어가는 게 허 교사의 목표다. 그는 다른 학교로 가더라도 밴드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소외된 학생이라도 밴드부라는 것에 자부심, 소속감을 갖게 되더라고요. 학생들이 음악을 통해서 자아 실현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 좋겠습니다.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학생들 입장에서는 삭막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음악을 통해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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