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국회의원 증원 꼼수 ‘연동형 비례대표제’ 안 된다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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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2   |  발행일 2019-10-22 제30면   |  수정 2019-10-22
선거법 개정안 처리 앞두고
범여권 의원정수 확대 논의
지역구 늘려 찬성 유도 포석
국민은 대다수 강하게 반대
내년 총선서 역풍 각오해야
[화요진단] 국회의원 증원 꼼수 ‘연동형 비례대표제’ 안 된다
이영란 논설위원

‘조국 사퇴’로 광화문 광장은 평상을 되찾을 것으로 생각됐지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간으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둘러싼 진영 간 대결로 주말 서울 도심은 여전히 인파로 넘쳐났다. 두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가 장기적으로 국민 삶과 각 정당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방증이다.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추진한 패스트트랙은 선거법을 먼저 처리한 후 공수처 설치법안을 처리하도록 했다. 선거법 개정안은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대로 300명을 유지하되 지역구 의석은 28석 줄인 225석으로 하고, 비례대표 의석은 75석으로 늘리는 것이 골자이다. 의석 배분 셈법이 너무 복잡해 ‘유권자들이 자신이 행사하는 표가 어느 당으로 갈지 모른다’는 비판이 나오자 국회 정개특위원장으로 이 개정안을 주도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국민은 산식 알 필요 없다”고 말해 비난을 받았던 바로 그 법안이다. 선거 연령을 현행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추고, 지역구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선발할 수 있는 석패율제도 이번 개정안에 포함됐다.

한국당은 “‘게임의 룰’을 일방처리 하는 경우는 없었다”며 상당히 ‘순진하게’ 대처하다가 뒤늦게 온 몸을 던져 막으려 하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19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정대전환 촉구 국민보고대회’에서 “행정부를 장악하더니 사법부도 장악했다. 입법부마저 장악하기 위해서 패스트트랙에 선거법 개정안을 올려놨다”며 “단순히 선거법 개정안이 아니라 삼권분립이 무너지느냐, 지켜지느냐 하는 민주주의 생존에 관한 문제다.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실제로 지역구 선거에 자신이 없는 정의당을 비롯한 바른미래당·대안신당·민주평화당 등 군소정당들은 비례대표를 늘릴 수 있는 선거법 개정안에 반색하고 있고, 호남권 의원들도 대개 찬성 쪽이다. 우군을 보다 더 확대할 수 있는 만큼 민주당도 나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내달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통과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경제위기 속에 ‘조국 사태’까지 터지면서 여권 의원들의 각자도생 의식이 한결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 관건이다. 지금까지는 여당내에서 지역구 축소에 대해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놓지 못했다. 공천 불이익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정지지율이 급락하고, 당 지지율도 떨어지면서 민주당내에서도 ‘소신발언’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역구 감축을 골자로 한 개정안은 비수도권에 치명적이다. 인구감소로 지난 20대 총선 당시 지방의 국회의원 수가 크게 줄었는데 이번에 다시 지역구가 축소될 경우 지역 대표성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만큼 선거법 개정 반대 목소리엔 명분도 있다.

이 때문인지 우려됐던 ‘의원정수 확대’ 논의를 범여권에서 가시화하고 있다. 그간 민주당은 의원정수 증원 불가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수처법을 처리하기 위해 이와 연계된 선거법을 먼저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는 만큼 지역구 의원수를 늘려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표를 유도하려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잠깐 욕 얻어먹고 의원정수를 늘리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며 속내를 과감없이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여러가지 셈법과 이해득실 속에서 의원정수 확대 쪽으로 결론을 낸다면 내년 총선에서 역풍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대다수는 정치 불신 속에서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도리어 국회의원 감축을 원하고 있다. ‘개혁’이라는 이름을 내걸어 놓고 ‘국회의원 밥그릇 지키기’에 나서는 것은 위선적이다. ‘조국스러운’ 행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영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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