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조국 사태’는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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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6   |  발행일 2019-10-26 제23면   |  수정 2019-10-26
[토요단상] ‘조국 사태’는 무엇을 남겼나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정치학)

‘조국 사태’의 발단은 장관 적격 여부를 둘러싼 논란에서 점화됐다. 그러나 조국과 그 일가에게 제기된 의혹 수사와 함께 변수와 국면이 분화하면서 급기야 ‘사태’로 비화했다. 일각에서는 조국 대전, 조국 내전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민주주의는 헌법 1조2항이 천명하고 있듯이 국가최고주권의 소재가 국민에 있는 체제다. 이러한 정치적 의미를 넘어 포괄적으로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agree to disagree) 태도’, 즉 상호관용과 이해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본 가치다.

그러나 조국 수호와 조국 퇴진이 워낙 첨예하게 맞붙는 대치에 일말의 타협과 접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등점을 향한 상황 악화의 원인제공자는 집권측이다. 조국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그를 정권의 상징으로 포장한 자충수가 사태를 키웠다. 조국 낙마를 정권 붕괴의 전초로 인식하지 않고는 조국 정국의 혼돈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검의 정예 특수 1·2·3부 검사가 대거 투입돼서 압수수색을 전방위로 벌이고 가족을 먼지 털듯이 수사하는 것은 검찰이 개혁에 저항하고 있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는 주장이 조국 사태의 프레임을 바꿨다. 검찰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조국 일가에 과잉수사와 보복수사를 하고 있다는 인식은 급기야 노무현·문재인·조국을 공동운명체로 보는 궤변을 낳았고, 검찰은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하고 항명하는 정치검찰이 되었다. 노무현 정부 때 검찰개혁에 실패함으로써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진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사명감’은 조국 수호를 검찰개혁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라는 거대담론으로 치환하는 논리의 비약으로 연결됐다.

무리한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조국 수호의 전면에 포진함으로써 진보진영 내의 위상을 한껏 높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유시민이 조국의 대선국면에서의 낙마를 의식하고 그의 지지표 흡수를 위해 과도하고 무리한 논리를 구사하는 것이라면 논객이 아닌 모사로 스스로를 전락시키는 행위이다. 중도는 그럴수록 유시민을 불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 전 장관에게 제기된 숱한 의혹들과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장관직을 수행하며 검찰개혁이라는 과업을 진행하는 게 맞는 것인지는 상식의 영역이었다. 그럼에도 조 전 장관과 집권측은 사태를 키우다가 법무부 국감 전날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아마도 국감장에서의 위증을 의식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도 가능하다.

국정감사에서 직무관련 수사와 관련하여 장관직 정지와 직무배제가 가능하다고 밝힌 국민권익위원회의 소견이 아니더라도 조국 전 장관을 둘러 싼 찬반 양측의 극한적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는 조국 전 장관의 일시 직무배제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국 퇴진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집권세력은 그를 검찰개혁의 첨병과 전사로 포장했으나, 그에게는 수사 결과와 무관하게 이미 정치적·도덕적 상처가 짙게 드리웠다.

정경심이 구속됐고 이후 수사는 조국에게 향할 것이다. 여야 모두 조국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집권연합은 강고한 지지층의 응집을 보고 한껏 고무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검찰개혁을 원하지만 조국을 지지하지 않는 민심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정국에서 존재감을 회복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직도 박근혜 탄핵 무효와 석방을 외치며 퇴행적 색깔론을 금과옥조로 삼는 태극기 세력이 어른거려 한국당 지지로 돌아설 수 없는 중도층을 의식해야 한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양 극단의 민심들이 사회적 합의로 집약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을 ‘국론분열’이 아니라는 대통령의 인식이 계속되는 한 한국 대통령제의 숙명인 중반 이후의 지지율 급전직하는 이번 정권에도 예외없이 작용할 수 있다.

집권여당은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다시 성찰해야 한다. 청와대에 종속되어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시절에 그에게 보냈던 찬사를 불과 석 달도 지나지 않아서 저주에 가까운 비난으로 대체한다면 누가 그 정당을 국민의 대표라고 신뢰하겠는가. 설익은 정치공학에 매몰되는 순간 민심은 돌아선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수능재주(水能載周) 역능복주(亦能覆周)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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