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홍어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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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8   |  발행일 2019-11-08 제38면   |  수정 2020-09-08
찬바람이 불어오면∼삭힌 홍어, 탁주 한사발…풍미 가득한 ‘홍탁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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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안의 짚 위에 잘 삭혀져 있는 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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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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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어놓은 홍어. 홍어에는 전라도 맛의 본체인 게미가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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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를 잡을 때 사용하는 걸낙과 갓 잡혀 선상에 올라온 홍어(작은 사진).

홍어 맛의 비밀
삭힌 아가미 한점, 배멀미·간멀미 뚝
홍어 생태와 어우러진 전라도 식문화


홍어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이렇게 알뜰한 생선이 또 있을까. 배에서 막 내린 여행객들이 비틀거린다. ‘간멀미’라고 한다. 흔들리는 배를 타고 뭍에 내리면 땅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이런 멀미를 딱 잡아 주는 것이 바로 홍어다. 특히 제대로 삭힌 홍어 아가미 한 점이면 배멀미든 간멀미든 뚝 떨어진다고 한다.

전라도의 홍어 식문화는 인간의 식탐과 홍어의 생태습성이 어우러진 음식문화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이동성이 강한 물고기에 지역 이름을 접두어로 달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홍어가 아니라 참홍어
주둥이 뾰족한 모양…가오리와 구분
하늬바람 부는 11∼12월 산란 최고조
암컷이 더 비싸…꼬리 생식기로 구분


홍어는 홍어목 가오리과에 속하며 수심이 깊은 저층에서 생활한다. 모양은 마름모꼴로 가오리보다 더 둥글다. 난생으로 봄에 산란을 하며 서남해 바다와 인천 부근 서해 5도의 수심 80m 내외에 산다.

구별하기 힘든 가오리와 홍어는 주둥이의 모양으로 구분한다. 가오리는 주둥이 부분이 둥글지만 홍어는 뾰족하다. ‘자산어보’에는 홍어를 ‘분어’라 하고, 속어로 홍어라 불렀다. 홍어의 본고장 흑산도에서는 ‘홍애’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홍어류에 속하는 종으로 가오리, 간재미, 참홍어 등이 있다. 흑산홍어는 참홍어로 주둥이가 튀어나와 뾰족하고 몸은 마름모꼴이다.

‘따뜻하면 굴비생각, 찬바람 나면 홍애생각’이라는 말이 있다. 겨울철 동해 깊은 바다에서 잡는 것이 대게라면 서해에서는 홍어다. 하늬바람이 불면 홍어가 흑산바다를 찾는다. 산란하기 최적지인 까닭이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산란을 하지만 특히 11~12월 최고조에 달한다. 한번에 4~5개의 알을 낳으며 수명은 5~6년이다. 홍어의 짝짓기는 강하고 격렬한 모양이다. 수컷 홍어의 두 날개에 가시가 있어 암놈과 교미할 때 그 가시를 박고 사랑한다. 암놈이 낚시 바늘을 물고 꼼짝 못할 때 수놈이 붙어 사랑을 하다가 나란히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산어보는 ‘암놈은 식탐으로 죽고, 수컷은 색욕 때문에 죽었으니, 색욕을 탐하는 자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라고 적었다.

홍어는 수컷보다는 암컷이 대우를 받는다. 흑산도 홍어 위판장에는 보란 듯이 뒤집어 암치와 수치의 거시기를 내놓고 경매를 한다. 홍어가 귀할 때는 8㎏에 최상품 암홍어는 한 때 100만원이 훌쩍 넘었다. 지금은 어획량이 늘어 50만~60만원에 거래된다. 암수 구별은 생각보다 쉽다. 수컷은 꼬리 양쪽에 두 개의 생식기가 있지만 암컷은 없다. 그래서 값도 나가지 않는 것을 두 개나 달고 있으니 입살에 오르기 딱 좋아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며 비쌀 때는 거시기를 싹둑 잘라 암컷으로 둔갑해 팔기도 했다.

연승어업
미끼 끼우지 않고 바닥에 놓는 ‘걸낙’
대청도 어민이 흑산도로 들여와 보급
어획량 감소, 어족자원 보전 제도 실시

홍어는 걸낙을 이용해서 잡는다. 걸낙은 미끼를 끼우지 않는 여러 개의 낚시를 줄에 매달아 홍어가 다니는 바다 바닥에 놓아 걸리게 해서 잡는 어구이다. 낚시 모양이 각진 7자 모양이며 특이하게 미늘이 없다. 한 가닥의 기다란 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낚시를 단 가짓줄을 매달아 물고기를 잡는 것을 ‘연승어업’이라 한다. 걸낙도 연승어업의 일종이다.

처음에는 놀래미, 볼락, 황석어 등을 미끼로 사용하는 일반 연승과 같았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대청도 어민들이 걸낙이라는 어구를 가지고 흑산도로 들어와 홍어잡이를 시작하면서 보급된 것이다. 걸낙은 북한에서 노랑가오리를 잡는 어구였다고 한다. 이 어구를 대청도 사람들이 홍어 잡는 도구로 사용해서 재미를 보면서 옹진과 인천 지역에 확산되었다. 홍어잡이 어법이 개선되면서 어장 확대가 불가피했지만 군사분계선으로 마음대로 홍어잡이를 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홍어가 많이 잡히는 흑산도로 걸낙을 가지고 진출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흑산도의 홍어잡이도 미끼를 이용한 주낙에서 미끼 없는 연승어업 걸낙으로 바뀐 것이다.

참홍어의 어획량은 전남 못지않게 인천에서도 많이 어획되고 있다. 참홍어는 겨울과 봄에 흑산도 북서쪽에서 서식하다가 수온이 올라가면 북쪽으로 이동해 연평도 인근 서해5도에 서식한다. 오래 전에 대청도에 갔다가 옥중동에서 숙박을 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마을을 돌아보다 주낙을 손질하는 주민을 만났다. 아주 낯익은 낚시 바늘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홍어주낙이었다. 그것도 걸낙이다. 대청도에서 홍어 걸낙을 볼 줄이야. 나중에 흑산도에 걸낙기술을 전해준 곳이 인천이라는 것을 알았다. 대청도에 홍어잡이 배가 많을 때는 80여 척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10척에도 이르지 못한다. 서해5도에서 잡히는 홍어 중 상당량이 목포에서 소비된다. 값도 후하게 쳐주고 소비도 잘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지역에서 잡힌 홍어가 흑산도산으로 둔갑하자 급기야 진짜 흑산도산을 구별하기 위해 ‘바코드’를 도입했다. 이곳에는 조업선박, 날짜, 크기(무게) 등이 기록되어 있다.

홍어는 상어와 함께 일찍부터 흑산도 사람들의 소득원이었다. 한때 흑산도 본섬은 물론 이웃 다물도, 홍도, 장도 등 주변 섬의 수백 척무동력선이 홍어를 잡았다. 홍어자원이 고갈되어 어획량이 급감하고 출어비용도 건지기 어려워 홍어잡이가 중단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결국 97년에는 흑산도 홍어잡이 배가 한 척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홍어 어족자원을 보전하기 위해 총어획량 제한제도(TAC)를 실시했다. 매년 일정한 총어획량을 정해두고 배의 규모 등을 고려해 1년간 어획량을 정해주는 제도이다.

홍어의 생존법
막잡아 손질해 썰면 맑은 선홍빛의 회
중심포구 영산포 독에서 썩어 자연발효
특별한 날에 먹는 귀한 음식으로 변천
수입홍어도 잘 삭혀 토속음식 터잡아


깊은 바다에서 적응해 살기 위한 홍어의 생존법을 남도사람들은 음식문화로 승화시켰다. 생물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세포와 세포 사이에는 세포막이 있다. 세포막을 통해 물은 염분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홍어는 자신의 몸에 염도를 높이는 생존전략을 택했다. 싱싱한 홍어에 톡 쏘는 맛이 없는 것은 요소가 아직 암모니아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썩었다는 것은 홍어 몸속의 요소가 암모니아로 분해되는 현상이다.

흑산도에서는 막 잡아서 경매로 받아온 홍어를 손질해 썰어 놓으면 정말 홍어회다. 맑은 선홍빛이다. 어떤 바닷물고기의 속살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흑산도 홍어잡이는 예리가 아니라 다물도나 심리나 사리 주민들이 중심이었다. 당시에는 홍어를 잡으면 잡는 대로 어창에 넣어 두었다 가득 차면 영산포나 함평으로 팔러 나갔다. 홍어 맛을 아는 사람들은 어창에서 새어 나오는 홍어 썩는 냄새만 맡고도 환장을 했다.

1번국도와 호남선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영산포가 홍어 중심포구였다. 그 포구가 목포로 옮겨진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 태도 서바닥에서 잡은 홍어가 영산포에 다다르면 독 안에서 썩어 자연발효가 되어 만들어진 음식문화였다.

삭힌 것으로 드릴까요, 회로 드릴까요. 홍어를 달라고 하면 주인이 되묻는다. 삭힌 것을 달라고 하면 삭힘 정도를 묻는다. 흑산도 사람들은 삭힌 것을 거의 먹지 않는다. 회로 먹어도 부족할 판인데 왜 삭혀서 먹느냐고 한다.

목포의 한 홍어전문집에 홍어를 맛있게 먹는 법이라고 적어 놓은 글이 흥미롭다. 홍어를 씹으면서 입을 살짝 벌리고 공기를 깊이 들이 마신 다음 코로 숨을 내쉰다. 입안에서 홍어를 탁주와 희석하면서 코로 숨을 내쉰다. 홍탁의 맛이다. 전라도에서 ‘홍탁’이라 함은 삭힌 홍어에 탁주 한 사발 마시는 것을 말한다. 전라도에서 홍어는 잔칫상만 아니라 장례식에도 필수. 오죽했으면 70년대 가정의례준칙으로 허례허식 금지의 첫 번째 음식이 홍어였을까. 제도와 법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 음식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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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음식으로 주목을 받았던 홍어지만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일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날 먹는 고가의 음식으로 바뀌었다. 그 특별한 날이 결혼식과 장례식이다. 그리고 흑산도 홍어 대신에 중국, 아르헨티나, 칠레, 러시아, 우루과이 등지로부터 수입이 이루어졌다. 영산포에 1년이면 1천500여t의 홍어가 거래된다. 칠레나 아르헨티나 홍어가 영산포에서 숙성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 삭힌 홍어다. 이 무렵 흑산홍어는 전라도 음식이 아니라 전국음식으로 부상한다. 당시 전남 신안이 고향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도 있었지만 지방자치제의 등장과 함께 지역정체성이 상품화되기 시작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수입홍어를 맛있는 국산급 홍어로 바꾸는 숙성기술은 영산포에서 완성된 홍어맛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즐겨 삭힌 고기’를 먹는다고 적었다. 그 나주 사람들은 흑산군도에 속한 영산도 사람들이 조선시대 공도정책으로 나주에 거주하면서 이주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독 안에서 넣어 가지고 오가면서 삭혀져 영산포의 홍어맛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이다. 그 맛이 전승되어 영산포 음식이 되었고 수입된 홍어마저 그 삭힌 기술을 접목해 토속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큰일을 치를 때 내놓는 제주도의 몸국과 같은 것이 전라도의 홍어국이다. 홍어애와 뼈를 넣고 끓인 탕은 추위에 떨던 속을 풀어주고 온 몸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홍어국은 잔칫집에 제격이다. 짭짤하니 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한 겨울에는 홍어내장을 넣어 끓인 보리국을 세 번만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으로 즐겨 먹는 것이 홍어찜이다. 그렇지만 홍어 본래의 맛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홍어찜은 싱싱한 회를 익혀 먹는 꼴과 같다. 탕, 전, 조림 등도 마찬가지이다.

남도사람들은 잔치 주인이 내놓은 홍어를 보고 상차림을 평한다. 소를 잡고 돼지를 잡아도 홍어를 잘 삭혀 내놓지 않으면 좋은 평을 받기 어렵다. 찬바람이 분다. 걸쭉한 흑산 막걸리에 찰진 홍어를 썰어 팔던 옴팍 진 예리선창의 막걸리집이 그립다.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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