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피플]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 김수영 논설위원
  • |
  • 입력 2019-11-30   |  발행일 2019-11-30 제22면   |  수정 2019-11-30
“퇴계 선생 가르침의 핵심은 겸손…현대인들 ‘물러남의 미학’ 배워야”
20191130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김병일 이사장이 “우리나라는 분명 예전보다 잘 삽니다. 그러나 예전보다 행복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20191130
퇴계 선생의 선비정신이 살아 숨 쉬는 도산서원 전경.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제공>
20191130
도산서원 참공부모임이 올해 봄에 마련한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 행사.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제공>


지난 7월 도산서원을 포함해 9개 서원이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으로 선정한 것은 서원이 가진 한국 정신문화의 중요성 때문이다. 서원은 조선시대에 선비가 모여서 학문을 강론하고, 석학이나 충절로 죽은 사람을 제사 지내던 곳이다. 그만큼 선비들의 정신이 살아숨쉬는 곳이다. 한국의 서원 가운데 도산서원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조선 최고의 선비인 퇴계 이황의 정신이 깃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퇴계의 선비정신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적극적인 활동의 중심에는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김병일 이사장(74)이 있다.

도산서원, 퇴계 선생 지혜 담겨있는 곳
지식·성품 모두 뛰어나 ‘完人’으로 불려

26살 아래 고봉 기대승과 사단칠정 논의
자신을 낮추고 타인 존중하는 삶 본보기
오늘날 물질은 풍요롭지만 마음은 빈곤
퇴계의 검소·배려 먼저 실천하면 해결

선비문화수련원 올 수련생 18만명 예상
퇴계 마지막 귀향길 재현 800리 대장정
세계적인 퇴계 구도길 만드는 게 목표

▶기획예산처 장관, 통계청장, 조달청장 등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경제관료로 주로 활동했는데 어떻게 도산서원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요.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해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했지만 공직에 몸담게 됐지요. 일을 맡다보니 주로 경제분야 업무를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할 때도 틈나는대로 고적답사를 하고 역사책을 읽었습니다. 퇴직하고 나서는 좀더 역사공부에 매진했지요. 역사공부를 하다보면 빠질 수 없는 분이 퇴계 선생이고 이 때문에 안동도 여러 차례 오게 됐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돼 퇴계가문과 이 지역 유림과도 알게 됐지요. 2008년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고향도 상주이고 퇴계 선생과 별다른 인연도 없었는데 이렇게 퇴계 선생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도산서원 원장이기도 합니다. 도산서원이 여느 서원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서원 자체가 가진 차별성이 있습니다. 서원은 훌륭한 학자들이 돌아가신 후 그 분을 존모하는 후학들이 세운 사립학교입니다. 보통 강학의 공간과 훌륭한 학자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구성돼 있지요. 하지만 도산서원은 강학공간과 사당 외에 퇴계 선생이 직접 설계한 서당까지 있습니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10년 동안 공부하던 곳입니다. 서당의 설계에서부터 퇴계 선생의 탁월한 안목이 느껴집니다. 평생 검소와 배려를 몸소 실천했던 흔적이 서당에 그대로 배어있지요. 깨끗한 벗이 있는 연못 ‘정우당’, 절개를 지키는 친구들이 있는 화단 ‘절우사’ 등을 만들어 식물을 통해 깨우치는 삶을 살려했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서화, 천문, 의학 등 여러 학문에서 뛰어나고 성품까지 온화해 조선시대 때는 완전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완인(完人)’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퇴계 선생의 핵심 가르침은 무엇인지요.

“한마디로 ‘경(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는 의미입니다. 퇴계 선생은 평생 경에 바탕을 둔 학문을 가르치고 이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특히 26살이나 어린 고봉 기대승과 7년간 사단칠정을 논한 것은 후배에게 겸손하고 배울 것은 배우는 진정한 학자로서의 풍모를 보여준 좋은 예지요. 퇴계 선생은 후배, 제자만이 아니라 하인도 존중했습니다. 그의 여러 일화에서 확인할 수 있지요.”

▶우리 시대에 퇴계 선생의 삶이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고 하셨는데요.

“우리나라는 분명히 예전보다 잘 삽니다. 굶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현격히 줄었지요. 그렇다고 예전보다 행복할까요. 한국의 자살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6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혼율은 높고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낮습니다. 겉으로는 잘 사는데 행복한 삶은 아닙니다. 이는 이기심, 물질만능주의 때문입니다. 퇴계 선생의 남을 배려하는 삶, 검소한 삶에서 우리가 처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사실 자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중요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요. 내가 먼저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논어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 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배려하는 삶을 살면 자연스럽게 타인과 사이가 좋아지고 마음도 평온해집니다. 이것이 결국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퇴계 선생의 실천적 삶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 선비문화수련원입니다.

“도산서원 부설 선비문화수련원은 퇴계 선생 탄신 500주년인 2001년에 개설됐습니다. 처음에는 수련건물 없이 간이시설을 임차해 민박 수준으로 운영했지요. 뜻을 같이하는 은퇴 교직자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10년간 수련원을 운영하다가 2011년 1원사, 2016년 2원사를 건립해 수련프로그램을 좀더 활성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선비정신과 관련한 강의는 물론 도산서원·퇴계종택과 묘소·이육사문학관 등의 탐방, 활인심방·퇴계명상길·인사예절 등의 체험실습, 토의 및 발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단순한 이론교육이나 탐방이 아니라 체험활동을 강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선비문화수련원의 수련생이 급증하는 등 그동안의 성과도 많았습니다.

“초창기만 해도 1년 동안의 수련생이 몇 천명에 불과했습니다. 2008년 4천명이 안 되던 수련생이 2018년에는 16만2천여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올해는 18만명이 예상되며 내년에는 2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선비수련에 참여하는 이들이 아직은 학생이 많지만 기업인, 공무원, 교원 등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고무적입니다. 수련 수업을 지도하는 지도위원들도 안동을 중심으로 한 대구경북지역에서 점점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선비수련원에서는 ‘찾아가는 선비수련원’을 운영 중인데 이들 지도위원이 전국 초중고를 찾아다니며 관련 강의를 하고 있지요.”

▶올봄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이라는 이색행사를 마련해 호응을 얻었는데요.

“선비문화수련원에서는 2015년부터 퇴계학을 공부하는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퇴계의 삶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도산서원 참공부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 이 모임에서 ‘퇴계의 마지막 귀향길 재현단’을 구성해 서울 봉은사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800리 대장정에 나섰지요.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에서 참가했습니다. 60~70대 학자들까지 참여해 퇴계가 고향까지 오던 길을 함께 걸으며 무료 강연과 해설 등 각종 행사를 펼쳤습니다. 올해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 매년 마련할 계획입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가칭 ‘퇴계 구도길’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저서 ‘퇴계의 길을 따라’를 최근 출간하였습니다.

“퇴계 선생의 정신을 알리고 그의 삶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입니다. 퇴계 선생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고 고향에서 즐겁게 공부하고 후학을 양성하다가 조정의 부름을 받으면 마지못해 나아갔다 다시 고향에 내려오기를 반복했습니다. 퇴계는 ‘물러남’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그 가치를 보여준 분입니다. 퇴계 선생이 추구한 삶과 다양한 일화를 통해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책 입니다.”

김 이사장이 공직에 오랫동안 몸담았기에 인터뷰 말미에 현재 한국의 정치, 경제상황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그 위치에 있지 않으면 그 정책을 논의하지 말라’는 공자의 표현을 빌려 말을 아꼈다. 남의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허물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였다. 역시 퇴계 선생을 추존하는 이의 면모였다.

김수영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