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거미줄 바이올린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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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2 07:58  |  수정 2020-09-09 13:47  |  발행일 2019-12-02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거미줄 바이올린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향기박사는 겁이 많아 곤충을 무서워합니다. 특히 어릴 때 방바닥에 거미나 지네가 보이면 무서워 의자 위에 올라가 형을 애타게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최근 읽은 책 한권 때문에 갑자기 무섭기만 하던 거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에 빠져 연구에 몰입하는 과학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주인공은 일본 나라현립 의과대학 오사카 시게요시 교수입니다.

어느 날 거미줄에 매달려 높은 곳에서 도망친다는 동화 속 이야기가 정말 가능한지를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갑자기 본인도 궁금해져 시작한 일이 점점 커져 거미줄로 만든 끈에 해먹을 매달아 사람을 태우기도 하고, 무거운 트럭을 끌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미줄로 바이올린현을 만들어 멋지게 연주를 합니다. 사실 거미줄로 바이올린현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향기박사는 그야말로 티끌 모아 태산이란 속담처럼 거미줄을 잔뜩 모아 꼬면 노끈처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거미줄이 바이올린현이 되는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거미를 연구하던 오사카 교수는 이 질문을 접한 이후 처음부터 거미들을 다시 관찰하며 거미줄의 특성을 연구하고 이를 실제 바이올린현을 만드는 기술에 적용해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단순히 거미줄로 바이올린현을 만드는 일만 한 것이 아니라 거미줄의 물리적 특성과 이를 바이올린현을 만들기 위해 꼬았을 때의 물리적 특성 변화를 과학적인 관점에서도 끈질기게 연구합니다. 결국 오사카 교수님은 거미줄로 바이올린현을 만들어 멋지게 연주를 한 것은 물론 거미줄로 만든 바이올린현의 물리적 특성과 음향학적 특성을 연구한 내용을 정리하여 2012년 세계적인 물리학 연구잡지인 ‘Physical Review Letter’에 발표를 하였습니다.

이 논문은 오사카 교수의 은퇴 몇 달을 안 남기고 어렵게 발표된지라, 처음 논문을 투고하고 나서 혹시 논문심사자들이 은퇴 전에 마칠 수 없는 만큼의 실험을 요구할까 마음 졸이던 오사카 교수 모습에 100% 공감하며 함께 가슴을 졸이기도 하였습니다. 오사카 교수의 거미줄바이올린 여정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단순히 거미줄로 바이올린현을 만들어 연주를 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는 결과가 아니라, 거미줄로 바이올린현을 만들어 보겠다는 한 과학자의 꿈,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해 어려움을 감내하며 수행하는 집념과 열정이 가득한 연구과정, 그러나 그 과정 속에 겪는 수많은 회의와 좌절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향기박사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일본이 과학기술분야 노벨상을 24개나 배출한 저력은 바로 이런 엉뚱한 호기심을 꿈을 삼아 열정과 집념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향기박사도 콧물을 받아 그 콧물 속에 있는 단백질을 조사하여 치매를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처음 연구비를 신청하였을 때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였습니다. 결국 연구비를 받고 연구를 시작하니 주변 분들이 코묻은 돈으로 연구하냐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연구가 막힐 때면 깊은 회의에 빠지곤 하였는데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연세에 바이올린까지 배우면서 자신의 호기심을 끝내 해결한 오사카 교수처럼 이젠 향기박사도 더 많은 노력을 즐겁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영남일보 독자분들도 황당무계한 상상을 맘껏 해보고 그 상상력을 현실로 만드는 노력에 푹 빠져보시면 어떨까요.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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