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제왕적 대통령제의 미래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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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4   |  발행일 2019-12-04 제30면   |  수정 2020-09-08
거대 양당의 대치구도 국회
제왕적 대통령제 견제 포석
공수처설치 등 패트 두 법안
본회의 부의로 언제든 처리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 기로
[수요칼럼] 제왕적 대통령제의 미래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에서 안창호 헌법재판관은 제왕적 대통령제로 요약되는 현행 헌법의 권력 구조가 통치 권력의 헌법 및 법률 위반 행위를 낳은 필요조건임을 지적하는 보충 의견을 남겼다. 이제 그로부터 2년 반이 넘게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쯤 미루어 둔 질문을 던져 보아도 좋을 것 같다. 헌정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 파면이 이루어진 이후 대한민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이 질문은 남의 나라 이야기하듯 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는 것은, 안 재판관의 말처럼 권력 형성을 넘어 권력 행사에 이르기까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우리 대한국민’ 모두의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여야를 극한대결로 몰아가고 있는 패스트트랙의 두 법안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미래에 관해 깊은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음은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보자.

주지하듯 우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검찰개혁법안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맞서 있다. 하나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공수처 또한 곧장 새로운 권력 기구로 변모하게 될 것을 염려하는 쪽이다. 재미있게도 이 두 견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현실에 관하여 상반된 평가를 전제하고 있다. 전자는 검찰 권력을 제어하기에도 벅찰 만큼 대통령의 권력은 이미 제왕적 차원에서 벗어났다는 것이고, 후자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여전히 건재하며 공수처를 설치하면 더욱 강화되리라는 것이다.

이 두 입장의 알쏭달쏭한 각축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패스트트랙의 다른 주제인 연동형 선거제법안에 대한 논란을 연결하여 큰 그림을 그려 보아야 한다. 대체적으로 보아 공수처 설치를 찬성하는 입장은 연동형 선거제법안에도 찬성하고,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는 입장은 연동형 선거제법안에도 반대하는 것 같다. 만약 앞에 언급한 대로 공수처 설치에 대한 찬반이 제왕적 대통령제에 관한 상반된 평가를 전제한다면, 그 입장들은 어떤 논리로 연동형 선거제법안에 대한 찬반과 연결되는 것일까.

현행 국회의원 선거법이 단순다수대표제로 진행되는 소선거구제와 적은 인원의 비례대표제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제도가 국회를 거대 양당의 대치 구도로 이끈다는 사실 역시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명백하다. 연동형 선거제 법안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현실이 민의를 왜곡하고 다양한 정치세력들의 국회 진출을 제도적으로 봉쇄한다고 주장한다. 대단히 적확하며 찬동할 만한 지적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이 있다. 그처럼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기까지 한 국회의원 선거법이 민주화 과정에서 선택되고 또 계속 유지되어 온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토론에 이 문제를 부치면, 아마도 백가쟁명의 논의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관점에선 그 이유가 불을 보듯 명확하다. 국회를 거대 양당의 대치 구도로 만든 가장 근본적인 의도는 제왕적 대통령이 국정을 망치지 않도록, 특히 거대 야당이 그 권력을 견제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염두에 두고 풀어 보지 않는다면, 대단히 불합리하고 심지어 불공정하기까지 한 현행 국회의원 선거법의 정치적 의미를 간과하기 쉽다.

이렇게 보자면, 지금 공수처 설치와 연동형 선거제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려 추진하는 정치세력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가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고, 의회 중심의 연합정부를 통해 국정을 이끄는 큰 그림이 그것이다. 이에 비하여 이 두 법안을 한사코 반대하는 정치세력은 시민들에게 별다른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이 되려 하거나 적어도 제왕적 대통령제와 공생하려는 기색만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어제 날짜로 패스트트랙의 두 법안이 모두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어 언제라도 상정·처리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길게 보아 제왕적 대통령제의 미래까지도 좌우할 가능성이 높은, 대단히 중대한 선택 앞에 지금 대한민국이 서 있다.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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