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성냥팔이 소녀가 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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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6   |  발행일 2019-12-06 제23면   |  수정 2019-12-06
[금요광장] 성냥팔이 소녀가 된 사람들

이제 2019년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어김없이 세워진 시청 앞 트리 옆으로는 추위에 손을 호호 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구세군 냄비의 경쾌한 종소리가 연말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맘 때만 되면 생각나는 어릴적 동화가 있다. 성냥을 팔러 다니는 가난한 소녀가 추위에 떨며 창문 너머 풍경을 쳐다보다 결국 굴뚝 옆의 온기를 느끼며 하늘 나라로 가는 내용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동화가 그렇게 잔인한가 싶기도 하다. 어디서 키다리 아저씨같은 사람이 나타나 구해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워낙 추위를 타는 탓에 바람 한 점 들어올까 이불로 꽁꽁 감싸고 읽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어서 느끼는 추위는 계절보다는 마음의 추위가 더 견디기 힘들다. 불안감에서 오는 추위는 가슴이 시리다. 돌이켜보면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추위는 합격자 발표이든 검사 결과이든 무언가 기다림이 지속될 때였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창문 밖의 성냥팔이 소녀가 되어 있곤 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세상살이를 보면 유난히 추위에 떠는 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인맥과 지위를 이용해 한몫 단단히 챙긴 자를 봐주라고 한 사람들, 팔전구기에 도전한 지인의 당선을 위해 힘을 함부로 쓴 사람들이다. 두 건 다 제목은 ‘친구 챙기기’다. 물론 아직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몫 챙긴 자의 휴대폰을 감찰한 게 사실이고, 권한도 없는 민선시장에 대한 첩보를 알아서 넘기고 계속 챙긴 건 사실이라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쳇말로 냄새가 나는 건 맞는 것 같다.

상황이 이러니 당하는 쪽에서는 반격에 나섰다. 논거는 재테크에 관심가진 전 장관 일가 때부터 늘 동일하다. 하나는 발칙한 검찰의 정치적 의도이고 또 하나는 그들과 연합한 적폐 언론의 무차별 가짜뉴스 공세이다. 너무 당당하게 얘기를 하는 통에 가끔씩 내 판단이 잘못된 건지 헷갈리기도 하다. 어쨌든 검찰이든 언론이든 양쪽 다 기득권 세력이라는 거니 결국은 또 탄압 논리로 모아진다. 과거의 탄압이 정권의 억압이었다면 지금의 탄압은 기득권의 저항으로, 결은 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보수 위주의 정치 지형을 바꾸는 게 목표이니 확실한 선 대 악의 구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억지로 들린다는 것이다.

‘친구 챙겨주기’ 두 건 모두 수사가 본격화된 시기를 보면, 검찰이 타이밍을 고려했을 수는 있다. 정무적 판단이 들어갔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판을 누가 깔아줬는지를 한 번 보자.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서슬이 퍼런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공명 정대한 수사가 가능했었나? 그렇지 않았던 건 지난 여름 있었던 인사가 보여준다. 동부지검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라인 전부 옷 벗었다. 그래놓고 왜 진작 수사하지 않았냐고 한다.

또한 정권초기에 했어야 될 검찰개혁을 국정농단 적폐수사로 2년 날리고 나서 재테크에 관심있는 전 장관 일가가 수사받을 때부터 부랴부랴 이것저것 갖다 붙인 건 정치가 아니었나? 한 사람을 가지고 불과 얼마 전까지 유일한 정의의 사도인양 한껏 띄우다가 갑자기 못된 정치검사로 전락시키는 건 정치 아닌가? 방어논리가 없다는 건 알겠는데 참으로 궁색하다. 지켜보는 국민들이 바보인줄 아나. 의도가 정치적인지 아닌지는 본질이 아니다. 궁금한 건 결과이고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그러니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이 안쓰럽다. 많이 추울 것 같다. 그냥 ‘친구’여서 그랬을 뿐인데,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결말은 어떻게 될까. 모르겠다. 동화 속에서는 키다리 아저씨는 결국 오지 않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 예상이 쉽지 않다. 지금 분명한 건 이 겨울이 유난히 추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목도리라도 건네주고 싶지만 뻔뻔해서 싫다.

전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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