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기해년(己亥年) 송가(頌歌)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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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06   |  발행일 2019-12-06 제39면   |  수정 2020-09-08
‘니편 내편’ 분열만 키우며 저무는 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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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일 포항 남구 호미곶을 찾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며 희망찬 한 해를 다짐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한때 기대 부풀었던‘南北 평화’ 무드
북한은 여전히 미사일 쏘아대며 위협
정부는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는 상황
中-러 군용기까지 긴장감 조성 가세
이념갈등·국론분열의 어두운 그림자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개최 지지 요청
국민 세금만 줄줄 세는 꼴 될라 염려
새해엔 ‘복음’이 들려올 수 있길 기대


기해년(己亥年)! 올해 황금돼지 해라 하여 고단한 삶에 한가닥 기대를 걸어봤으나 내내 암울한 한해로 저물어가고 있다. 힘들 때 쉬고 싶은 공휴일도 이제 크리스마스, 딱 하루만 남겨두고 있다. 기원(紀元) 2019년의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독교는 세계 종교로 정착하고 해마다 이맘때면 지구촌 곳곳에서 구세주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을 기리며 축복 속에 보낸다. 저마다 ‘루돌프 사슴코’를 노래하고 수호성인(守護聖人)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꿈에 부풀어 있다.

국내에서도 벌써 교회마다 고층건물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지고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불우이웃을 돕자는 ‘사랑의 온도탑’도 세워졌다. 길거리 곳곳에는 캐럴이 울려퍼지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 사람들로 붐비는 주요 상가엔 산타클로스 복장과 빨간 모자로 치장한 판촉사원이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스산한 겨울바람처럼 한숨과 시름에 잠긴 어두운 그림자만 드리우고 구세주의 모습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도무지 앞이 안 보이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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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를 이뤄내 전쟁의 위협을 없애고 평화가 정착되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김정은 쇼’로 드러나고 있고, 그 사이 우리 정부는 거짓말만 되풀이하는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국민통합은커녕 내 편, 네 편으로 갈려 뒤틀린 이념 갈등이 증폭되고 분노와 증오만 키우는 바람에 극단적인 국론분열로 치닫고 있다. 그나마도 침묵을 지키며 구세주의 복음(福音)을 기다리던 서민들은 마침내 먹고살기조차 힘들어지자 “못 살겠다”고 난리다. 이러고도 정부는 북한만 바라보며 메아리 없는 평화경제만 외치고 있다. 누구 탓인가?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된 지 130년(1890년). 천주교는 이보다 짧게는 100년, 길게는 300년(1566∼1784년) 이상 앞섰다고 한다. 그동안 박해와 수난도 많았다. 특히 북한의 기독교와 천주교 교세는 일제 강점기에도 크게 번창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의 신앙심이 그만큼 깊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 천지가 ‘침묵의 교회’로 변하고 말았다. 1948년 공산 정권이 들어서고 신앙의 자유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지상낙원(?)이라던 북한에는 오직 김일성 왕조의 당과 수령만 구세주로 존재할 뿐이다.

현재 평양에는 유일한 기독교의 봉수교회와 천주교의 장충성당이 남아 있으나 종교의 자유를 가장한 가짜 종교시설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곳에서 최근 한국과 북한이 월드컵 2차 예선전을 치렀다. 5만 관중을 수용한다는 김일성경기장은 텅 비어 있었고 관중도, TV중계도 없이 우리 선수들은 북한 선수들의 의도적인 반칙과 폭행을 감수하며 마치 전쟁 같은 경기를 치러야 했다. 우리 선수들은 그나마 부상을 입지 않고 평양을 빠져나온 것만도 다행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항의 한 번 못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우리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대통령은 침묵만 지키다가 느닷없이 한술 더 뜨는 행태를 보였다. 서울주재 외교사절단을 청와대에 초청해 2032년 유치키로 한 서울·평양 하계올림픽 공동개최를 적극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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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자존심이 상하고 분노가 폭발할 지경인데 배알도 없나? ‘삶은 소대가리’ ‘소뿔 위에 닭알(계란) 쌓을 궁리’ 운운하며 우리 국가원수를 모욕하는 북한이 무슨 짓을 해도 참고 웃어넘기며 임기를 마친 10년 후에도 김정은 쇼를 즐기겠다니 과연 듣던 대로 유체이탈 화법을 보는 것 같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의 중무장한 군용기가 경쟁적으로 우리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고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외교경로를 통해 항의 한번 못해보고 수수방관하면서 성사도 불투명한 남북 평화경제와 올림픽만 외치고 있다.

글쎄, 진보 정권이 그때까지 장기집권을 누리게 될지 알 수 없으나 만약 대통령의 뜻대로 서울·평양 하계올림픽이 성사된다면 가히 천문학적인 올림픽 준비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어차피 우리 국민세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는 그나마도 서울 하계올림픽과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그동안 착실히 인프라를 구축해 왔으나 북한은 그런 인프라를 갖출 만한 재력도 능력도 없다고 한다.

아예 나라 곳간이 텅텅 비다 못해 거덜이 나도 빚을 끌어다 평양에 쏟아붓는 방법 외에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달리 묘책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 뒷감당이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통령은 꿈도 야무지다. 국민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이 어우러져 올림픽을 공동개최하고 그 여세를 몰아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에는 기필코 통일을 이루겠다고 한다. 지난 광복절 기념사에서 밝힌 꿈 같은 얘기다.

혹여 시중에 나도는 고려연방제를 염두에 두고 먼 미래를 내다 본 대통령 나름의 청사진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들은 자칫하다간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쏘아대며 위협하는 김정은의 노예가 되지 않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SNS로 주장하던 말마따나 ‘나라꼴’이 어쩌다가 이 지경으로 돌아가고 있나. 생각할수록 답답하기만 하다.

가뜩이나 경제파탄으로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게 조여오는데 나라살림을 책임질 대통령은 마치 구름타고 꿈속을 헤매듯 평화경제와 올림픽 타령만 하고 국민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앓이로 한숨만 짓고 있다.

그래도 세밑이 다가오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저물어가는 한해를 되돌아보며 새해를 기대하는 덕담을 주고받는다. 정녕 구세주의 복음은 언제 들려오려나?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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