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감독 - ⑩ 윤가은·전고운·김보라 (끝)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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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3   |  발행일 2019-12-13 제43면   |  수정 2020-09-08
아이·소녀의 이야기 섬세하게 이끌어낸 ‘빛나는 여성감독들’
[장우석의 電影雜感 2.0]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감독 - ⑩ 윤가은·전고운·김보라 (끝)
[장우석의 電影雜感 2.0]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감독 - ⑩ 윤가은·전고운·김보라 (끝)

윤가은 감독은 1982년생으로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예술전문사 영상원 영화과를 마쳤다. 이곳에서 휴일에 등교한 두 소녀가 함께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사루비아의 맛’(2009), 아빠의 내연녀 집에 들이닥쳐 내연녀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손님’(2011), 엄마를 대신해 콩나물 사러 집을 나선 7세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콩나물’(2013) 같은 단편영화들을 만들었다. 모두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작품들이었다.

이 가운데 ‘손님’은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 대상을, ‘콩나물’은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윤가은이 주목하는 인물과 세계는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다가도 특별하고 평범한 듯하면서도 비범하며 동심인가 싶으면 훨씬 깊고 어른스럽다.

윤가은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 ‘우리들’(2016)은 사랑과 미움, 질투 같은 감정들이 휘몰아치던 세 명의 소녀를 그린 작품으로 단편 시절부터 아이들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다뤄온 감독의 독보적인 재능이 무엇보다 빛났다. 유명한 배우는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주인공이 어린 소녀들이었던 이 작품은 2016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경쟁 부문과 최우수 장편 데뷔작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 국제영화제의 러브콜이 이어지면서 호평을 받았다.

남성 감독들이 만들고 남성 배우, 그것도 성인 배우들이 이끄는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들에 질린 ‘우리들’의 관객들이 오랫동안 기다린 윤가은 감독의 차기작 ‘우리집’(2019) 역시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잘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세계를 담은 작품이었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가족의 문제를 풀기 위해 어른들 대신 직접 나선 동네 아이들의 빛나는 용기와 찬란한 여정을 담았는데, 전작이 친구와의 관계를 다룬 영화였다면 이번엔 가족을 전면에 내세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직접 행동하는 아이들을 씩씩하게 그려 다시 호평을 이끌어 냈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어린이 배우의 연기를 이끌어내는 감독의 연출”(이은선)은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전고운 감독은 1985년생으로 건국대 영화·애니메이션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연출 전공 과정을 다니다 그만뒀다. 울진에서 태어난 전고운은 고향에서 조금 떨어진 포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지내다 보니 외로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당시 유일한 위로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고. 그래서 본능적으로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관련 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회사 생활이 몸에 맞지 않던 그는 한예종 영상원 전문사 동기들과 광화문시네마를 설립한다. 광화문시네마는 한국영화계에서 상업영화 진영 바깥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화를 만드는 영화창작집단으로, 현재 전고운을 포함해 김태곤·권오광·우문기·이요섭 감독과 김지훈·김보희 프로듀서가 주요 멤버다.

‘소공녀’(2017)는 광화문시네마가 ‘1999, 면회’ ‘족구왕’ ‘범죄의 여왕’에 이어 네 번째로 제작한 장편영화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CGV아트하우스상과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제41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저력을 과시했다. 유니크한 소재와 독보적인 캐릭터로 답답한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드는 이야기와 몽환적인 영상미로 평단과 관객의 뜨거운 지지를 이끌어냈다. 특히 충무로 상업영화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싫은 것을 감수하고 안정을 추구하기보다 취향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금 여기 청춘들을 전면에 내세워 젊은 관객들에게 호평받았다.

김보라 감독은 1981년생으로 동국대 영화영상학과와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원 영화과를 졸업했다. 2011년에 연출한 단편영화 ‘리코더 시험’은 1988년 학교 리코더 시험을 앞둔 초등학생 은희가 오빠에게 물려받은 낡은 리코더로 고전하는 사이 부모의 불화와 언니의 무관심, 아빠와 오빠라는 남성의 폭력에 노출된 어린 소녀가 겪는 감정의 파고를 담은 작품이었다.

‘벌새’(2018)는 ‘리코더 시험’의 은희가 자라 이후 1994년을 시대 배경으로 “은희의 중학생 버전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매달려 완성한 작품으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과 관객상,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상·집행위원회 특별상을 비롯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트라이베카국제영화제, 시애틀국제영화제 같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25관왕을 달성하며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자신 앞에 펼쳐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에 대해 궁금해하는 은희를 통해 은희와 함께 우리가 통과해 온 1994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벌새’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숙한 데뷔작”(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보편적인 그러나 구체적인 이 영화에 완전히 사로잡혔다”(제45회 시애틀국제영화제), “한편의 시처럼 섬세한 영화! 일상으로 시대를 경험하게 한다”(제28회 이스탄불국제영화제), “미묘한 연기! 자신감 있는 촬영! 아름다운 작품!” (제18회 트라이베카국제영화제) 같은 평단의 지지와 함께 영화제 수상 릴레이를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감독’을 이번 회차로 마무리한다. 마지막 회에 여성감독 3명을 한꺼번에 다룬 끝에 남성감독과 여성감독의 성비를 가까스로 맞췄다.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영화들’이 대부분 남성감독이 만든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통계 앞에 나는 한없이 우울해진다. 그러나 다음 100년은 달라질 것이다. 이 빛나는 여성감독들의 연이은 등장과 갈수록 동어반복으로 한없이 초라해지는 남성감독들의 무참한 상상력 앞에서. 모쪼록 건투를 빈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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