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시동’ 정해인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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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20   |  발행일 2019-12-20 제43면   |  수정 2019-12-20
담배도 피우고 욕도 좀 하고…순수 벗고 삐딱한 반항아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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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인은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마성의 매력이 있다. 스무살이라고 해도 믿을 동안 외모와 깨끗하고 순한 이미지, 그에 걸맞은 밝고 애교 넘치는 미소는 누구나 부러워할 정해인만의 강점이다. 이는 또래 배우에 비해 다소 늦은 데뷔에도 불구하고 여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지금의 정해인의 위치를 단단히 굳힌 건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봄밤’이다. 이 시기에 ‘멜로 대세’ ‘국민 연하남’이라는 타이틀이 그에게 붙여졌고, 이후 아날로그 시대의 풋풋한 사랑을 보여준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또 한번 적시타를 날렸다. 그런 그가 멜로 장인으로서의 부드럽고 로맨틱한 모습을 벗고, 의욕 충만한 반항아 상필 역으로 관객 앞에 섰다. 학교도 싫고 집도 싫고,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시동’을 통해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느끼는 망설임, 고민,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영화”라고 정리한 정해인은 그 점에서 “새로운 출발의 의미”라고 말했다. 돈을 벌기 위해 험한 일도 마다 않는 거친 모습부터 해맑은 미소 사이로 비쳐지는 어둠까지 상필 캐릭터에 담아낸 정해인은 그렇게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을 매력적인 남자로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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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멜로에서 벗어난 캐릭터로 돌아왔다. 어떤 점에 끌렸나.

“가장 끌렸던 건 택일 역으로 (박)정민 형이 출연한다는 점이었다. 배우를 꿈꿀 때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가 ‘파수꾼’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정민 형과 (이)제훈 형의 날것 그대로의 사실적인 연기에 완전히 매료됐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꾸준히 연기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형들과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희망을 그때부터 가졌다. 이번에 그 소원을 풀었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청춘
거칠고 어두운 모습…도전 통한 새로운 출발
평소 박정민 형 연기에 매료…출연 결심 계기
‘일희일비하지 말고 길게 보고 묵묵히 해라’
김해숙 선생님 말씀 항상 가슴에 새기려 노력
원작 보지 않고 연기, 어떤 평가 내릴지 궁금”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 이어 다소 삐딱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상필을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했나.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누구나 말 못할 고민과 결핍을 하나씩 갖고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채워가고 채워주는 이야기에 끌린다. 이 작품이 딱 거기에 부합했다. 상필이 몸담고 있는 곳은 말이 좋아 글로벌 파이낸셜이지 그냥 악덕 대부업체다. 그러다 보니 다크한 분위기를 위해 담배도 피우고 욕도 좀 하게 되는데 나는 좀 어설프게 접근하고 싶었다. 친구들이 하니까 따라하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흡연하는 장면이 좀 곤혹스러웠다. 특히 아침에 옥상에서 정민 형과 담배 피우는 신을 찍을 때는 머리가 핑 돌 정도로 힘들었다. 드라마 ‘봄밤’을 찍자마자 잠도 못자고 바로 넘어온 터라 피곤이 누적된 상태였다. 반면, 내가 욕은 잘하는 편이다.(웃음) 그런데 이마저도 상필은 욕하는 게 어색하게 보이는 게 설정이었다. 감독님도 ‘애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접근했다.”

▶실제 학창시절은 어땠나.

“어중간했다. 공부는 보통이었고, 운동도 그렇고, 놀 때 확실하게 놀지도 않았다. 대신 부모님 말씀은 잘 들었다. 반항해 본 적도, 말썽을 피운 적도 없다. 친구들이 하는 것을 따라 어설프게 멋은 좀 부렸던 것 같다. 당시 두발 자유화라 뒷머리를 길렀고, 컬러가 들어간 뿔테 안경이 유행이어서 졸업사진은 빨간 뿔테 안경을 쓰고 찍었다. 극중 상필과 자라온 환경은 다르지만 나름 순진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고3 수능을 마친 후 길거리 캐스팅 됐다. 연기자를 꿈꿔본 적은 있었나.

“전혀. 내성적이고 환경에도 민감한 편이라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두 작품을 하다 보니 이 일을 정말 사랑하게 됐다. 더 잘하고 싶고 오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예전 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2016)를 찍을 때 김해숙 선생님이 나를 집으로 불러 개인 교습을 해주신 적이 있다. 그때 ‘일희일비하지 말고 길게 보고 묵묵히 해나가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금과옥조처럼 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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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가 새로운 출발이라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직장이나 학교, 집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새로운 무언가에 대해 결정을 하게 되면 망설여진다. 삶의 전환점이 될 결정이라면 더 망설여지고 고민을 깊게 할 것이다. 나 역시 새로운 작품을 대할 때마다 선택과 결정에 앞서 늘상 고민과 두려움을 마주한다. 나는 이를 새로운 도약을 위한 도전이자 출발로 여기면서 극복했다. 만약 누군가 그와 비슷한 경우가 생긴다면, 이 영화를 보고 용기와 힘을 얻었으면 한다. 충분히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은 저지르고 보는 거다. 선택지가 주어지더라도 그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고민거리가 생기면, 감독님과 상대 배우, 그리고 회사 관계자분들과 끊임없이 얘기를 나누고 공유하며 해답을 찾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조금씩 성숙해지는 걸 느낀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작품에 들어가기 전보다 작품을 끝내고 나서 고민이 생겼다. 고민이라기보다 걱정인데, 아직 원작 웹툰을 보지 못했다. 원작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미리 봐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됐다. 하지만 감독님은 촬영이 끝나고 보길 원하셨다. 아무래도 원작을 따라가게 될 가능성이 크고, 그러다 보면 연기적 한계가 생길 수 있음을 우려한 것 같았다. 그래서 사전 정보 없이 시나리오에만 의존해 촬영에 임했다. 그래서 원작팬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무척 궁금하다. 그래도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따뜻한 감동과 메시지가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올 한해를 기분좋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화면속 내모습 신기했는데 이젠 책임감 느껴
여행 예능 프로 부담감 컸지만 즐거움도 커
내년 인공지능 다룬 드라마로 또다른 도전
국민 연하남 타이틀 억지로 벗고 싶지 않아
다양한 모습·경험 쌓은후 악역도 하고 싶어”



▶배우로서 책임감이 느껴진 건 언제인가.

“TV나 스크린에 내 얼굴이 비쳐지면서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는데 이젠 그것을 넘어 항상 내 연기와 작품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주인공을 맡으면서는 책임감에 더해 부담감까지 생겼다. 연기만 열심히 하고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연기 외적인 부분까지 책임져야 할 게 많더라. 자유롭고 즐겁게 연기할 수 있도록 촬영장 분위기를 조성하고, 배우와 스태프들과의 원활한 조율에도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안판석 감독님과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봄밤’을 함께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느끼고 배웠다.”

▶예능 프로그램 ‘정해인의 걸어보고서’에도 출연했다. 출연해보니 어떤가.

“일단 뉴욕이라는 도시를 가는 건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그래서 행복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함께 해서 즐거움이 배가 됐지만 그냥 여행만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두려움과 부담감이 상당했다. 배우들은 촬영할 때만 연기에 집중하고 ‘컷’하면 잠시 쉬면서 긴장을 풀 수 있지만, 예능은 마이크를 계속 차고 있는 상태라 뭔가를 계속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예능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그래도 여행 자체는 즐거웠다. 그중 제일 좋았던 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야경이다. 마치 꿈속에 들어와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너무 환상적이었다. 거긴 정말 다시 꼭 가보고 싶다.”

▶추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

“‘걸어보고서’는 마지막 촬영까지 끝났고, 지난 13일부터 tvN 새 드라마 ‘반의 반’ 촬영을 시작했다. 그렇게 내년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는 드라마 촬영에만 전념할 것 같다. 이번에는 다른 스케줄 없이 온전히 드라마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최근 몇 년간 바쁘게 살다보니 휴식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작년 1월에 손가락이 부러진 이후로 운동도 전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근력이 떨어지면서 전체적으로 체력이 저하됐다. 정신도 체력을 따라오더라. 이번엔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가족여행도 꼭 가볼 생각이다.”

▶도전하는 것을 즐겨하는 것 같다.

“그렇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안 먹어본 음식, 안 가본 곳, 안 해본 일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 작품선택도 비슷한데 올해는 유독 두드러진 것 같다. ‘시동’도 그렇고 예능 출연도 그렇고, 내년 방영될 드라마 ‘반의 반’도 인공지능을 다뤘다는 점에서 나에겐 새로운 도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그래도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 하지만 지금은 연기말고는 다른 쪽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 연기 자체만으로도 도전 의욕을 불태울 수 있는 상황과 조건들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삶을 대하는 자세는 어떻다고 생각하나.

“극중 택일이의 대사 중에 ‘가보면 뭐라도 나오겠지’라는 말이 있다. 나도 그 마인드로 임하고 있다. ‘걸어보고서’에 함께 동행했던 종건 형이나 현수한테도 그 말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버텼으면 좋겠다’고. 나도 힘들게 버텨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버티라는 건’ 사실 되게 무섭고 잔인한 말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다. 감기도 걸려 봐야 상대방이 감기에 걸렸을 때 그 고통을 아는 것처럼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 무작정 버티라고 하는 건 너무도 잔인하다. 상대방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게 때론 힘이 될 때도 있다.”

▶순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국민 연하남’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젠 그런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타이틀이 생긴 건 기본적으로 작품을 잘 봐주셨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기에 너무 감사한 일이다. 때문에 일부러 벗어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묵묵히 작품에 맞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나조차도 모르는 모습이 많다. 그게 어떤 직업군이 될지, 어떤 캐릭터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갈 것이다. 솔직히 악역에도 도전하고 싶지만 엄청난 내공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건 좀더 연차와 경험이 쌓이면 그 때 도전해보고 싶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FNC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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