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 속 켜켜이 쌓인 희로애락…재개발만이 답일까

  • 박주희 이지용
  • |
  • 입력 2019-12-21   |  발행일 2019-12-21 제5면   |  수정 2019-12-21
부서지고 사라지는 대구 구도심 곳곳을 기억하다
흉물로 취급돼 철거되는 건물·동네
어떤 이에겐 개발과 발전이겠지만
또 어떤이에겐 삶의 공간 지우는 일
지역작가, 전시·사진으로 흔적 기록
“철거·폐기 아닌 다른 대안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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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은 과연 성장인가’라는 물음을 갖고 사진기록연구소가 대구 구도심 재개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기록한 사진집을 발간했다. 사진집 ‘부서지고, 세워지고’ 에 실린 ‘반월당 지구’(김수양 작).

◆오래된 아파트 철거만이 답일까

동인, 묻지 않기, 노인, 갈 곳이 없는, 갈 곳이 있는….

누군가는 집을 구해 떠난다. 또다른 누군가는 갈 곳이 없어 막막하다. 각자의 다른 상황을 서로 묻지 않는 것이 이곳의 불문율이 됐다. 1969년 건립된 대구의 현존 최고령 아파트 동인아파트 얘기다. 전국에서 다섯손가락에 꼽히는 오래된, 나선형 경사로가 계단을 대신하는 박물관 같은 아파트다.

5개동 총 270여 가구가 있는 이 아파트의 입주민 대부분은 70~90대 어르신. 월 임대료 10만~20만원에 관리비가 5천~1만원. 대구 한복판에서 상상하기 힘든 가격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다. 약 180가구가 내년 초 재개발로 인한 철거를 앞두고 아직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근심과 불안을 안고.

재개발로 인해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동인아파트를 기록하고 기억하자는 마음이 모였다. 이 아파트 인근에 작업실이 있는 김미련 작가와 민승준 작가가 주축이 됐고, 지난해 뜻을 같이 한 작가들이 모이면서 작업에 동력을 얻었다. 멀티미디어아트그룹 ‘로컬 포스트 동인동인’을 결성한 이들은 지난 11월 동인아파트에서 ‘동인동인 東仁同人 linked 展’을 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봉산문화회관에서 아카이브 전시로 대구 시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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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동인 東仁同人 linked 展’에서 선보인 조경희 작가의 작품 ‘게스트 하우스’(위)와 전시실 내부 모습.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동인동인프로젝트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은 작품은 조경희 작가의 ‘게스트하우스’. ‘동인아파트에서 하룻밤 잠자기’라는 제목으로 아파트 내 한 세대를 임대해 1일 무료 숙박을 체험하고, 그 사진과 기록을 SNS에 해시태그로 공유하게 한 퍼포먼스이자 커뮤니티아트였다. 게스트하우스의 방 한 곳에는 철거일, 동인, 삶, 도시재생, 잡음, 오십일년, 공생, 노인 등 이 아파트의 현상황을 직시하는 핵심 단어로 꾸민 설치작품도 선보였다.

조 작가는 “할머니들의 생활과 상황을 알리고 그들의 마음을 100분의 1이라도 공감해 보자는 취지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도움까진 아니더라도 모른 척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었다”면서 “스쳐가는 외부자이지만 어떻게 화두를 던질지 고민하다 게스트하우스라는 ‘체험’을 작품으로 택했다. 시각 작업보다 체험으로 현 모습을 알리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스트하우스에는 2~3명 오려나 했다는데, 13일 동안 전일 매진에 대기자가 생길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이와함께 아파트 주민과의 인터뷰 영상, 텍스트 몽타주와 일러스트, 프로젝션 매핑, 탁본 등 총 28명의 작가들이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아파트의 흔적과 기억을 찾고 담아내 도시공간과 삶, 예술의 존재 방식과 삶은 무엇인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졌다.

동인동인프로젝트를 총괄·기획한 김미련 대표는 “동인아파트는 현대 아파트의 구조도 삶도 아니다. 건축학·인류학적으로 가치가 있고 골목문화가 살아 있다”면서 “철거를 코앞에 두고서도 꽃밭을 가꾸는 입주민의 모습이 강하게 뇌리에 남는다. 이들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를 살아간다. 삶을 꾸리는 처연함과 자긍심이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라지는 아파트의 공간과 그 자취를 기억하고, 과연 철거와 폐기의 방법밖에 없는지, 새로운 대안은 없는지 묻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과거의 모습이 부서지고 사라지는 대구예술발전소와 수창동 일대를 기억하려는 노력도 있다. 대구예술발전소 5층 커뮤니티룸에서 이달 말까지 열리는 ‘수창동 기록일지展’이 바로 그것.

대구예술발전소와 수창동 주변 일대는 근대 산업유산의 대표적 공간이었던 연초제조창이 문화예술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와 공원들이 생겨나는 등 대구에서 급격히 모습을 달리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수창동 기록일지展’에서는 연초제조창을 리모델링해 만든 대구예술발전소와 수창동 일대의 오래된 건물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비춘다. 이 일대 오래된 건물들이 불과 몇달 사이에 재개발 지역이 돼 부서지고 흔적 없이 사라진 모습,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동네 풍경을 어반 스케치(Urban Sketch)로 담아냈다.

4회에 걸쳐 진행된 ‘대구예술발전소 뉴트로 프로젝트 - 수창동 기록일지’에는 총 25명의 어반스케처들이 참여했고, 수창동 일대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나아가 대구예술발전소의 미래를 담아낸 스케치 작품 70여점이 출품됐다.

대구예술발전소 관계자는 “이 프로젝트에 수원, 경주, 합천 등 다양한 지역에서 시민 예술가들이 모였고, 이들은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대구예술발전소와 수창동 주변을 함께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서

사진기록연구소는 대구의 구도심 개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기록한 ‘부서지고, 세워지고’ 전시회를 지난 10월 열고 사진집도 발간했다.

‘대구의 구도심 재개발’을 주제로 노진규, 김수양, 장용근, 손애경, 안연수, 곽범석 6명의 작가가 2년여간의 작업 결과를 엮어낸 것이다. 재개발·재건축이 한창인 대구의 원도심 중구와 남구의 15개 단지를 대상으로 지난 여름부터 촬영한 사진이 담겨 있다. 이들은 한옥, 철거풍경, 인물, 철거지역의 오브제 등 각자의 스타일대로 2만여컷을 찍었고 그 중 200여장을 책에 담았다.

17명의 전업 사진작가들로 구성된 사진기록연구소의 출발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그로 인한 도시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2015년 ‘물의 도시’ 대구를 상징하는 신천과 금호강 등을 기록한 ‘오래된 물길’과 2016년 대구 사람들의 얼굴을 담은 ‘인물탐구’로 작업을 이어갔고, 2018년에는 자갈마당, 교동시장, 달성토성, 서문시장, 수제화 골목, 북성로 등 대구의 오래된 장소에 대한 기록을 담은 ‘기억 기록 기술-달성토성에서 교동시장까지’ 작업을 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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