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준의 정원 인문학] 고대 로마 제국의 정원

  • 임성수
  • |
  • 입력 2019-12-27   |  발행일 2019-12-27 제39면   |  수정 2020-09-08
로마 근교 전원도시 ‘빌라 아드리아나’…주인 취향 담은 화려한 정원 조성
20191227
이탈리아 티볼리의 ‘빌라 아드리아나’ 전경. <출처: @Bernard Frischer>.
20191227
이탈리아 폼페이 베티의 집 내 페리스틸리움. <출처: Wiikimedia>.
20191227
이탈리아 티볼리 ‘빌라 아드리아나’ 내 카노푸스.
20191227
이탈리아 폼페이 황금팔찌의 집 내 벽화. <출처: Wiikimedia>

이탈리아 반도 중앙을 관통하는 테베레강 동쪽의 일곱 언덕으로 둘러싸인 분지. 전쟁의 신 마르스의 쌍둥이 아들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언덕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작은 도시 로마를 세운다. 라틴족에 의해 건국된 로마는 귀족정치의 공화정체제에서 농업의 효율성 증대와 상공업의 발달, 앞선 토목기술과 강력한 군사력에 의한 정복전쟁으로 기원전 2세기 지중해를 장악, 황제의 패권 국가 로마제국으로 성장한다. 그리스 후계자를 자처한 로마는 그리스 신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한편 그들의 철학과 생활사를 답습하기 위해 상류층에서는 그리스인 가정교사를 둘 정도였다. 더불어 로마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폴리스들을 흡수하면서 패권 국가로의 성장을 위해 건국 초기부터 다민족 정책을 펼치게 된다. 로마는 문화의 창조보다 선진 문화의 수용과 융합, 그리고 제국을 비롯한 주변 문화권으로의 확산 허브가 되었다.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중요시한 고대 그리스 세계관 위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소아시아권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전파하게 된 것이다.

초기 시대 실용적이고 소박하게 조성
정원술 도입…인간 중심‘쾌락 정원’
가부장 사회, 가족 활동 집안에 한정
꽃·작은나무·분수·벽화로 꾸민 정원
함께 감상하며 대화 나눈‘이상향 공간’

상류계층 위한 자연 휴양지 빌라 조성
15C 그리스·로마 문화부흥 르네상스


고대 로마 초기에는 앞선 그리스 시대처럼, 실용적이고 다소 소박한 호루투스(Hortus)라는 정원이 만들어졌다. 호루투스는 개인 주택이나 도시의 공공장소에 조성된 약초, 채소밭, 과수원으로 나뉜 실용정원을 말한다. 기원전 2세기 말에 이르러 그리스에 영향을 받은 화려하고 세련된 풍조가 정원예술에 영향을 끼치고, 이집트와 페르시아 등지의 정원술이 도입되면서 신과 함께하던 정원에서 인간 본능에 무게추가 조금 더 기운 ‘쾌락의 정원(Pleasure Garden)’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문화의 용광로 로마의 정원은 그리스의 그것과 달랐다. 공공성과 단체 생활을 중시한 그리스와 달리, 고대 로마는 파트리아 포테스타스(Patria Potestas, 아버지의 권력), 즉 가족중심의 남성우위 가부장 사회였다. 한 가족의 가장은 자녀의 결혼과 독립, 재산 처분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문의 명예나 이익을 위해서라면 친자를 포함해 누구든 벌을 내리고 추방하거나 노예로 만들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유일한 권위이자 절대적 지배자였다. 로마인에게 국가는 곧 가족의 확대판으로 인식되었고, 실제로 신생 독립국 로마 공화정은 바로 이러한 가족들의 집합체였다. 따라서 공화정과 이후 로마제국의 의무를 수행하는 국가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복종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토론이나 체육 활동 등 공공의 야외활동이 빈번했던 고대 그리스와 달리 가부장사회 로마에서는 가장을 제외한 가족 구성원의 활동은 ‘도무스(Domus, 집)’로 한정되었다. 로마는 제국의 안정을 유지하고 확대하는데 도로망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시민광장인 포룸(Forum)을 중심으로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특히 정복한 영토의 식민도시나 군사도시와 같은 신도시에는 격자형(格子形) 가로가 견고하게 건설되었다. 도무스는 주택과 주택이 서로 벽을 맞대는 가운데 도시의 동맥인 도로에 접하여 조밀하게 자리 잡은 고대 로마의 도시 주택을 말한다. 도무스는 가부장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 매우 폐쇄적인 구조로, 방들은 주택 가운데 마당인 중정(中庭)을 바라보고 있다. 주택에는 보통 1~2개의 중정이 만들어지고, 규모가 큰 주택은 뒷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도로에서 집안으로 들어섰을 때 첫 번째 중정인 아트리움(Atrium)을 만나게 된다. 사면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오직 지붕만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아트리움은 집주인인 가장이 외부의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아트리움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넓은 마당이 나오는데, 이 마당을 페리스틸리움(Peristylium)이라 부른다.

20191227

두 번째 중정인 페리스틸리움은 네모난 공간을 기둥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로, 도무스의 다른 공간과 달리 바닥이 포장되지 않은 공간으로 가족을 위한 정원이 꾸며졌다. 2천년 전의 정원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원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폼페이(Pompeii) 베티의 집(Casa dei Vettii)이다.

1979년 베수비오 화산폭발로 화산재에 그대로 파묻혀 지금까지도 발굴 중인 이탈리아 남부의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최적의 유적지이다. 그중 베티의 집은 폼페이 유적 중 가장 호화로우며 보존상태가 좋은 집이다. 베티의 집에서의 페리스틸리움에는 화려한 꽃과 작은 키의 나무가 심어진 정원에 여느 로마 귀족 주택처럼 그리스 양식의 조각상들로 장식되었으며, 가운데에는 분수가 설치되어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청량감을 더해주고 있다. 정원을 장식하고 있는 정자와 의자를 약간 작게 만들고, 정원 뒷면의 벽면에는 자연풍경을 담은 착시화인 트롱프뢰유 벽화를 그려놓아 복잡한 도시 속 작은 주택의 정원 공간이 실제보다 넓게 느껴지게 하였다. 페리스틸리움은 가족들이 대화를 나누고 정원을 감상하며 쉼을 얻으며, 때로는 가부장제의 중심 공간이 되는 실외 거실로 외부와 차단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 가족의 이상향이었다.

그리스처럼 이탈리아반도 또한 국토 대부분이 높은 산지나 구릉지인 지형이다. 해안이나 분지의 평지에 생겨난 도시에는 ‘성안의 주택’을 의미하는 도무스가 만들어지고, 도시 근교에는 ‘성 밖에 있는 주택’인 빌라(Villa)가 조성되었다.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자영농 육성과 농업 기술의 발달로 인한 생산력의 비약적 증대가 뒷받침되었다. 농사를 직접 짓던 당시 로마 시민들은 성 밖에 땅을 마련하고 농번기에 머물 수 있는 작은 별장, 즉 빌라를 조성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문화생활을 영위하였다.

이후 로마시가 정치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고 상류층이 일정 기간 공무를 떠나 시골로 ‘휴가’를 가는 전통이 형성되면서 로마 주변의 구릉지 경치 좋은 곳에는 빌라와 주인의 취향이 담긴 화려한 정원이 가꾸어졌다. 로마에서 동쪽으로 약 30㎞ 떨어진 근교 휴양지 티볼리(Tivoli)에는 약 2천년 전에 조성된 고대 로마를 대표하는 ‘빌라 아드리아나(Villa Adriana)’가 있다. 별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전원도시 같은 이 빌라에는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궁전, 도서관, 게스트하우스, 욕장, 극장, 조각공원 등이 배치되었고 로마제국이 자랑하는 토목기술로 건설한 수로관이 제공하는 넉넉한 물로 수많은 분수와 연못, 운하들이 만들어져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빌라 아드리아나를 건축한 하드리아누스 황제(76~138)는 로마제국의 제14대 황제였다. 제국의 전성기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 그는 제국을 두루 시찰하며 각지의 실정을 파악하여 제국을 안정시키는 데 노력하였다. 예술을 사랑했던 황제는 자신이 다녔던 여행지들에서 수집한 전리품과 명승지의 경관과 건축을 재현하여 정원에 전시함으로써 말년에는 이탈리아의 해안을 떠나지 않고도 여행의 만족을 맛볼 수가 있었다. 또한 그리스 문화에 깊게 매료된 황제는 모든 조각상을 그리스 것으로 장식하였는데 정원이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이상을 은유적으로 담아냄으로써 빌라는 그리스와 로마 문화 결합의 정수가 되었다.

로마제국은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 국가가 되고, 서로마제국이 멸망(476년)하면서 이후 1천년간(다소 편견이 담긴 표현이긴 하나) 암흑시대(Dark Age)로 불리는 중세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15세기, 우리가 르네상스라 부르는 이 시기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가 다시 화려하게 무대에 등장해 재현되는데, 이때 비록 폐허로 남기는 했으나 ‘빌라 아드리아나’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부흥의 성지가 된다.

계명대 생태조경학 교수 hj.jung@kmu.ac.kr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