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드림걸즈 (빌 콘돈 감독· 2006·미국)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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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27   |  발행일 2019-12-27 제42면   |  수정 2020-09-08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들을 때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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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되고 싶었다.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을 보고나서였다. 에디트 피아프로 출연한 윤복희는 정말 멋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그렇게 무대에서 당당한 배우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찾은 곳이 연극반이었다. 그 뒤 무대와는 관련이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도 내내 뭔가 아쉬운 마음이었다. 허전한 마음에 매일 한 편씩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그게 모여서 책이 나왔다. 책이 나오자 꿈꾸던 많은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그러자 더 이상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선지 요즘은 옛날만큼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는다. 더 이상 무대를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열정이 식은 것일까.

어떤 이유로 뮤지컬 영화들을 찾다가 오래전에 본 ‘드림걸즈’를 다시 보게 되었다. 세 번쯤 봤는데, 볼 때마다 빠져들어서 보게 되는 영화다. 이 영화의 매력은 무엇보다 음악이지만, 이야기 자체도 무척 재미있다. 잘 알려진 대로 다이애나 로스와 슈프림즈가 모델이다. 1982년에 초연된, 토니상 6개 부문에 빛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원작이다. 노래에 재능이 뛰어난 세 소녀 에피, 디나, 로렐은 인기가수 지미의 백보컬로 활동하게 된다. 더 드림즈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하게 되지만, 가창력이 뛰어난 에피 대신 미모의 디나가 리드보컬이 된다. 갈등을 일으키던 에피는 팀에서 쫓겨나게 된다. 자동차 딜러 출신 매니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더 드림즈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만, 에피는 밤무대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가득한, 사장이자 남편인 커티스에게 회의를 느낀 디나는 마침내 독립을 선언한다. 더 드림즈의 고별공연에는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함께한 에피, 디나, 로렐이 모두 모이게 된다.

이야기의 배경은 1960~70년대의 디트로이트다. 영화 속에는 다이애나 로스와 슈프림즈, 그리고 모타운 레코드사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제작사는 여러 가수들을 모델로 했을 뿐이라고 밝혔지만 흡사한 점이 많다. 극 중 에피의 모델은 플로렌스 발라드다. 여고시절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리드보컬이었지만, 후에 다이애나 로스에게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영화와는 달리 끝내 화해하지 못했으며, 알코올 중독에 빠진 플로렌스는 32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에피 역의 제니퍼 허드슨은 폭발적인 가창력과 열정적인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아 모두를 놀라게 했다. 막 개봉한 뮤지컬 영화 ‘캣츠’에서 그리자벨라 역을 맡아, 저 유명한 ‘메모리’를 부르게 된다. 디나 역의 비욘세도 평소의 파워풀한 가창력을 숨긴 채, 단아하고 고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취향이지만, 달콤하고 여성적인 (‘엔드리스 러브’ 류의) 다이애나 로스의 목소리보다 흑인 특유의 짙은 솔(Soul)이 담긴 제니퍼 허드슨의 목소리가 좋다. 극 중 에피의 실제 인물 플로렌스 발라드의 목소리가 그랬을 것이다.

최근 아레사 프랭클린의 공연 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봤다. 1987년 여성 최초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18번의 그래미상 수상에 빛나는 전설적인 가수다. 시드니 폴락이 연출을 맡은 필름으로 공연 실황 및 음반 녹음 현장이 담겨있다. ‘영혼을 울리는’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는데,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객석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몹시 긴장한 듯했는데, 오직 노래 부르는 것에만 집중했다. 노래란 게 무엇이기에 그토록 온 몸에 땀을 흘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것일까. 준비한 곡들을 다 부르고 난 그녀는 비로소 밝아지며, “생큐”를 중얼거렸다. 단순한 노래가 아닌 영혼의 울림이었고, 그것은 타자를 의식해서는 나올 수 없는 가장 깊은 내면의 울림이었다.

“들어봐. 내 깊은 곳의 소리를. 비록 시작이지만 끝내 자유를 찾으리. 이제 때가 되었네. 내 꿈에 귀 기울 때.” 디나 역의 비욘세가 부른 ‘리슨(Listen)’의 한 구절이다. 한 해의 끝과 새로운 시작 앞에서 스스로에게 들려줄 노래가 아닐까 싶다. 깊은 내면의 소리는 본인만이 알아들을 수 있으므로.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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