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리의 공예 담화(談話)] 핀란드 디자인 10 000년展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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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0   |  발행일 2020-01-10 제40면   |  수정 2020-01-10
과거와 오늘날의 생존 도구 '도끼' '모바일 폰'
국립박물관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展'
새로운 도구제작 새로운 사회로 발전
변화한 삶의 방식 녹아든 디자인 진화
디지털시대에 전하는 장인정신 메시지
나라별 장식·기술 다른 빗살무늬 토기
천장 저장한 빵 꺼내려 만든 목재 집게
환경·고유한 食문화에서 탄생한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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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핀란드 디자인 10 000년 전'. 다양한 맥락에서 사물의 교차를 보여주는 전시회로 '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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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개 주제 중 네 번째 주제인 '원형에서 유형까지'.

우리가 존재하기까지의 과거를 보여주는 곳 박물관. 나에게 박물관이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곳이다. 그 시간 여행에는 인간과 물질의 끊임없는 상호적 관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과거가 남긴 자취들을 따라 가까운 현재로 도달할 때면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지식을 얻은 인간에 의해 진화한 물질들을 마주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와 한 집단의 문화적 정체성,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그곳에, '공예'가 있다. 고고학적 자료로 보존된 토기나 신라의 금관, 고려의 청자 모두 인간이 만든 사물이자 공예품이다.

생존을 위해서 인간은 물질을 변화시켜왔다. 도구를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며,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그 도구에 의해서 인간은 새로운 발전 단계의 사회로 나아갔다. 이 과정 속 변화를 이끈 물질의 변형은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디자인'이다. 디자인이란 지식을 소통하는 방법이자 새로움을 향한 시도이다. 더 편리한 삶을 위해 인간은 사물을 고안하고 계획하며, 보다 기능적이며 아름답고,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고려하여 사물을 진화시켜 왔다. 여기서 디자인이란 용어의 의미를 단순히 사물 외형을 심미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에 한정하고 관람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디자인의 광의적 의미로 인간과 물질의 관계를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핀란드 디자인 10 000년 전(展)'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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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공예디자인과 교수〉

국립중앙박물관과 핀란드국립박물관이 함께 마련한 이번 전시는 디자인을 '지식의 축적' 개념이자, 인간과 물질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모든 과정으로 이해하고 선보인다. 이번 전시회는 '뻔하지 않은'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기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과거부터 오늘날'이라는 단선적 연대기로 구성되어 있지도, 분류학 체계를 따르지 않아 뻔하지도 않다. 빙하기 이후 핀란드 지역에서 살아간 사람들이 사용했던 수많은 사물들을 전혀 다르게 분류해 전시는 여러 장르의 사물들을 다양한 맥락에서 교차해 보여준다.

'뻔하지 않은' 시나리오가 끝이 아니다. 이 전시는 영화로 치자면, 연출가의 독특한 발상과 기발한 해석이 돋보인다. 한 예로, 벌목용 도끼 및 양날 도끼는 다소 의외의 사물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국토의 69%가 숲으로 이루어진 핀란드에서는 '나무를 어떻게 잘 이용하느냐'가 중요했으며, 그러한 환경 속에서 도끼는 채집과 사냥을 위해 중요한 도구였다. 도구를 제작하는 것은 인간이 처음으로 갖게 된 기술이자 자산이며 생존의 기본 수단이었다. 핀란드의 산림에서는 도끼 하나면 생존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 도구는 무엇일까. 그에 답하며 도끼 옆에는 1994년 노키아에서 출시한 문자 전송 기능이 탑재된 최초의 모바일 폰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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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과거 생활상이 담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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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왼쪽)와 서울 암사동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토기.〈핀란드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핀란드 가구 회사, 아르텍(Artek)의 유아용 식탁 의자는 벤 아프 슐텐(Ben af Schulten)이 1965년 디자인한 의자로, 등받이의 곡률이 어린이의 등을 안정적으로 감쌀 수 있게 인체 공학적으로 고안되었다. 앉았을 때 다리의 각도 역시 고려한 디자인으로 여전히 생산되고 핀란드 가정에서 사랑받는 제품 중 하나이다. 그 옆에 시골 어느 가정에서 어린이를 위해 만든 유아용 그네 의자가 있다. 아이가 다리를 벌리고 앉을 수 있는 구조와 몸을 숙여 기대었을 때 안정적일 수 있게 목재를 구부려 곡률을 준 형태의 그네 의자다. 아이의 신체적 구조를 고려하고 애정을 담아 제작하였음이 짐작이 되는 사물이다. 이 수공예 그네 의자는 핀란드인들이 생각하는 디지털시대에 중요한 장인정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장인정신은 오늘날 과학과 기술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문제 해결방법이기도 하다. 이것이 가구나 도자기 등과 같이 공예를 기반으로 산업화된 제품 디자인 영역에서 핀란드 디자인의 정체성으로 표현되는 간결하고 기능적이며, 인본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디자인의 뿌리이다.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전'은 인간이 만든 사물의 원형과 유형을 통해 오늘의 핀란드 디자인 제품을 이해할 수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핀란드의 물질문화와 디자인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전시장 곳곳에는 마치 영화 속 카메오같이 '깜짝' 등장하는 손님들이 있다. 바로 핀란드 사물 옆에 적절히 병치해 둔 청동검, 은제 허리띠 등의 우리 유물이다. 타자와의 만남은 자기 이해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사물들이 병치되어 있겠지만, 문화 보편적 입장에서 비교하도록(핀란드 디자인 관람에 집중력을 분산시키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문화적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인간의 정착과 유목 사이의 선택에서 생겨난 유물로 해석되는 핀란드의 빗살무늬 토기는 우리의 빗살무늬 토기와 기능적으로 혹은 형태적으로 유사한 듯 보이지만, 장식과 기술적 속성에서 두 나라의 유물은 구분이 된다.

반면 문화적 배경 혹은 생태적 환경이 달라,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은 사물들을 만나는 묘미도 있다. 핀란드인들의 고유한 식문화에서 탄생한 사물인 1.2m 길이의 목재 집게는 가위처럼 생긴 익숙한 형상임에도 오로지 빵을 집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도구라는 점에서 인상 깊다. 일부 농촌에서는 아직도 일 년에 두 번 빵을 구워서 천장에 받침대를 놓고 빵을 저장해 두며, 빵을 올리고 내리는 용도로 이 빵 집게를 사용한다고 한다. 집게를 보며 문득, 나는 우리의 묵은지 김치와 땅에 묻어 둔 장독 생각이 났다.

나는 '모든 사물의 처음은 공예'라는 사고의 틀 안에서 전시를 관람하였지만, 공예가 무엇인지 혹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뒷전에 두어도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새로운 시각으로 엿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는 전시이다. 또한 전시장에 마련된 핀란드 사우나와 오로라를 경험할 수 있기에 핀란드라는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관람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전시이다.

〈계명대 공예디자인과 교수〉

▨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핀란드 디자인 10 000년 전'은 국립 중앙박물관 전시 종료(4월5일) 이후 국립김해박물관(4월21일~8월9일)과 국립청주박물관(8월25일~10월4일) 순회 전시 예정이다. '핀란드 디자인 10 000년'의 전시 제목에서 숫자 '10'과 '000' 사이를 띄어 표기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만년이라는 단위는 과거에 대한 시간성을 나타내지만, 이것을 띄어 표기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언어이자 디지털 시대의 기반인 0과 1을 활용한 이진법의 세계를 암시하며, 전시 제목은 과거의 시간을 미래 언어로 바꾼다는 의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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