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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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03   |  발행일 2020-01-03 제40면   |  수정 2020-01-03
따뜻한 빛을 받아야만 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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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빛예술제에 참여한 이정 작품 '희망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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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작지점에는 어김없이 빛이 있다. 빛에 대한 시각은 각 시대마다 달랐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눈에서 빛이 나와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빛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 저 먼 곳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수학자 유클리드는 빛이 직선으로 진행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18세기(뉴턴)에 이르러서야 빛의 성질이 윤곽을 드러낸다. 뉴턴은 빛이 흰색이라고 한다.

빛과 색은 불가분하다. 불을 끌 때 사과의 붉은 색도 사라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무지개색을 낸다. 그렇다면 색은 왜 생길까? 바로 인류가 색을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이다. 색에 대한 연구는 역사가 꽤 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과 안에 붉은색이 있다고 믿었다. 데카르트는 흰색 빛이 사과에 닿는 과정에서 변형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뉴턴에 따르면 사과의 붉은 색은 빛 속에 있다.

뉴턴이 빛의 성질을 연구한 후에 빛의 정체가 밝혀졌고 학문(광학)도 생겨났다. 학자들은 1905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후 나머지 빛이 어마어마한 영역일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예술가들도 빛을 탐구했다. 카라바조를 본받은 램브란트의 빛 표현방식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21세기에는 빛도 진화했다. 광범위한 용도와 탁월한 효과가 빛예술제를 허락한다. 부싯돌로 일으킨 모닥불에 의지했던 원시인들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 않을까. '제1회 수성빛예술제'가 그중 하나다. 지난해 12월20일 대구 수성못 상화동산에 설치한 수천 개의 등불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5,4,3,2,1 점등!" 이란 신호에 맞추어 빛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수성구(구청장 김대권)가 주최했다. 그날의 기억을 정리하면 이렇다.

오후 2시 집행부가 회의를 시작할 때부터 추위는 기승을 부렸다. 대형난로를 설치한 파빌리온 안까지 스며든 찬바람을 손난로로 밀어냈다. 3시부터 시작된 시스템 리허설에 이어 6시30분 식전 공연까지,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메이킹 영상이 비춘 그간의 다양한 행보들이다. 현장에 있어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회였지 싶다. 수성구청장을 끝으로 내빈소개를 마치자 수성구의회 의장과 중학생대표의 상큼 발랄한 축하 메시지가 이어진다.

무대에 오른 내빈들이 점등 퍼포먼스를 하는 순간 작품 전체에 불이 켜진다. 무대 밖에서는 100대의 드론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관객들의 환호가 개회식장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드론의 라이팅쇼야말로 최첨단 과학기술에 힘입은 21세기의 빛을 입증한다. 레이저 댄스공연으로 무대행사는 막을 내렸고 현장을 돌며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임무였다.

행사를 마치자 그간의 노고를 관심 있게 지켜본 지인이 작가 20명에게 저녁밥을 사겠다고 한다. 그의 정성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선약 때문이다. 작가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할 따뜻한 방이 있는 식당을 미리 예약해둔 터다. 그날만큼은 작가들을 주인 자리에 앉히고 싶었던 전시감독의 마음이다. 나무는 오래 말려야 뒤틀림이 없고 포도주는 오래 숙성된 것일수록 짙은 향기를 낸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마술처럼 뚝딱 지어낼 수 없는 것이 예술작품이다. 평생 가난하게 고군분투하며 작업에 매진한 예술가들이 대우받을 만한 이유이다.

첫회가 의미하는 바는 선례가 없다는 뜻이다. 길잡이가 없는 여정에는 지혜와 고난이 두 배다. 진행자들에게는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된 셈이다. 애초에 주최 측이 강조한 것은 "제1회 수성빛예술제'가 빛 축제가 아닌 빛 예술제로서 예술가들의 참여가 돋보이는 행사"였다. 하여 작가감독인 나는 참여 작가 10인과 수시로 소통하며 세미나를 열고 방향성을 함께 논의했다.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청년작가들의 작업과정을 돌아보며 일일이 체크하는 등 기대에 버금가는 결과를 위해 임무 수행에 총력을 기울였다. 투명한 진행은 물론 재검토와 공평한 기회제공을 지침으로 큐레이터 없이 혼자서 소화한 일정은 이 밖에도 많다.

"어둠이 있기에 빛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개회식장에서 어느 내빈이 한 말이다. 한 줄 명언 같은 이 말이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있다. 소외된 계층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빛을 받아야만 할 사람들에게 한 말이 아니었을까. 준비 기간 내내 추위에 언 몸과 마음을 녹여주던 것은 불빛보다 강한 관심이었다. 남은 일정 동안(12일까지) 빛과 축제의 개념에 더한 주민의 범주와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제1회 수성빛예술제가 되었으면 한다. 다양한 노력이 담보된 제1회 수성빛예술제가 유명무실하지 않고 더 따뜻하고 밝은 빛을 발하는 예술제이길 바라는 마음은 관계자와 주민 모두가 같을 것이다.
화가·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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