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무렵 장구 배워 20년 강사인생…운전도 일흔 다돼 시작했어요"

  • 천윤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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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08 07:37  |  수정 2020-01-08 07:55  |  발행일 2020-01-08 제13면
100세 시대를 사는 사람들
■ 경산시 자인면 82세 김팔선씨
유아부터 노인까지 사물놀이 수업
전남 신안·일본에서 초청공연도
민속경연대회 대통령상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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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팔선 할머니의 꽹과리 장단에 맞춰 며느리 이정애씨가 장구를 치고 있다.

과수원길을 따라 찾아간 경산 자인면 동부리 한 마을.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장구 소리 흘러나오는 전원주택 한 채가 서있다. 가만히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 한 분과 젊은 여성이 꽹과리와 장구로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올해 여든 둘인 김팔선씨와 며느리 이정애씨다. 전원주택에는 아들 내외, 손자손녀 셋 등 모두 여섯 식구가 살고 있지만 장구 배우러 먼길 마다 않고 찾아 오는 사람도 꽤 있다. 별채는 이들을 가르치는 장소이자 김 할머니의 공연 연습장으로 쓰이고 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러 단체에서 왕성하게 사물놀이를 지도하고 있는 김 할머니. 젊은 시절 미용실을 운영하기도 했던 할머니가 장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58세 때였다. 아들을 결혼시키고 시어머니가 된 직후다. 좀 의외라고 묻자 김 할머니는 "좀 더 일찍 장구를 배웠더라면 더 많은 사람과 더불어 즐겁게 활동했겠지만 늦은 나이에라도 시작하길 참 잘했다"고 말했다.

경산 자인에서 버스를 타고 대구까지 나가 국악학원에서 기초를 배웠다. 이후 경산문화원 사물놀이반에 등록하고 활동했다. 타고난 재능을 보여 주변의 눈길을 끌었고, 때마침 고향인 자인에서 무형문화재 제31호 계정들소리가 복원돼 창단멤버로 활동했다. 1998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까지 받았다. 그는 매년 경산자인단오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일본 조요시, 전남 신안군 등지로 초청공연을 다니고 있다.

신혼 초부터 24년째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는 며느리 이씨는 "처음 어머니의 장구소리가 굿을 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했는데 자주 듣다 보니 친숙하고 좋아졌다. 이제는 가족이 함께 연주도 할 정도"라며 "어머니께서 수업을 하러 가는 곳에 따라가 봤다. 내게는 시어머니지만 지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천생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멋지게 늙어 가는 본받고 싶은 인생의 선배이며 큰 스승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의 사물놀이 전도사 역할은 교육생의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경산시 노인종합복지관 사물놀이반 회장을 맡아 온 지 19년째이고, 어린이집 9곳과 초등학교에도 수업하러 다닌다. 요양원에선 재능 봉사를 한다.

한 번은 장구를 들고 공연과 수업을 하러 다니자니 차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해서 그가 운전면허를 취득한 때가 69세다. 남들은 하던 운전도 그만두는 시기에 면허증을 딴 것이다.

아들이 사준 자동차에 장구를 싣고, 요즘도 유치원에 가서 손자손녀 같은 아이들에게 장구를 가르치고 있다. 강사료로 받은 돈으로는 노인복지관 친구들에게 밥을 사고, 대학에 다니는 손녀 등록금도 댄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예순에 인생을 다시 시작했어. 장구를 치고 있으면 신나고 즐거워.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지. 이 나이에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좋아"라며 미소를 지었다.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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