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 공연, 축사행렬…정치행사장 된 출판기념회

  • 노진실
  • |
  • 입력 2020-01-16 07:44  |  수정 2020-01-16 08:03  |  발행일 2020-01-16 제23면
[이슈분석] 선거시즌 잇단 출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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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올해 대구경북 총선 출마 예정자들의 책과 출판기념회 포스터들.(가나다 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2017~2018년. 대구경북 곳곳에선 출마 예정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줄을 잇고 있었다. 당시 기자는 취재차 몇 군데의 출판기념회장을 찾았다. 그곳은 평소 눈에 익은 출판기념회와는 달랐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정치 행사장' 같았다. 행사장 입구에서 책을 판매하긴 했지만, 정작 출판기념회가 시작된 뒤엔 '책'은 안중에도 없었다.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은 출마 예정자들이었다. 행사는 이들을 위한 토크쇼, 내·외빈 소개와 축사 행렬, 축하 공연 등으로 포장됐다. 일부 출마 예정자의 출판기념회엔 관변단체 관계자도 줄을 섰다.

이 같은 현상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올해 4·15 총선을 앞두고도 대구경북 출마 예정자들의 책 출간과 출판기념회가 잇따르고 있다. 정치인의 이른바 '출판 시즌'이 돌아온 것이다.

◆다양해지는 '출마자의 책'

'가지 않은 길' '다섯번째 도전' '선비, 그 위대한 뿌리' '순천하라' '새로 쓰는 목민심서' ' '오직, 혁신' '행복한 라떼' '젊어서 좋다-정의 희망 용기' '정치야, 일하자' '정치, 참…''희망의 불꽃, 대구'….(가나다 순)

최근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 제목들이다. 책 제목만 보면 여러 분야의 책이 섞여있는 것 같다. '선비'나 '목민심서'라는 단어를 보면 역사서인 것 같고, '가지 않은 길'이나 '행복한 라떼'라는 제목을 보면 에세이가 떠오른다. 또 '정치'라는 단어도 눈에 띈다.


유권자에 홍보하기 위해 서적 출간
선거자금 확보도 가능해 필수코스
주제·내용·수준 모두 제각각 달라


천차만별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름아닌 올해 치러지는 '4·15 총선' 출마 예정자들의 책이라는 점. 이들 책은 지난해 말부터 이달 사이에 집중 출간됐다. 저자 대부분은 최근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출마 예정자들이 선거를 앞두고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이유는 뭘까.

우선, 자기 세(勢)를 과시하고 유권자에게 자기를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출판기념회에선 공식적으로 선거자금도 모을 수 있어 선거 철 '책 출간'은 사실상 필수 코스다.

이밖에도 책을 내는 것은 자신의 정치철학·공약을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다. 선거 출마자의 책은 주로 정치·정책에 관한 내용을 담은 게 많다. 정치 또는 행정·정책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강조해 유권자에게 신뢰를 얻으려는 전략이다.

최근엔 출마자의 책 내용이나 스타일도 다양해졌다. '그림 에세이'가 등장하는가 하면, 겉으로 봐선 출마 예정자의 책이라는 '티'가 안나는 책도 잇따라 등장했다. 직장인 안모씨(41·대구 동구)는 "얼마 전 새로 나온 한 책의 제목만 보고 '기행문'인줄 알고 책장을 넘겼는데, 책에 실린 사진마다 저자 얼굴이 등장해 의아하게 생각했다. 알고 보니 출마 예정자가 쓴 책이었다"고 말했다.

◆선거용 출판, 의견 분분

출마 예정자들의 책을 살펴보면 주제도, 내용도, 수준도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 있는가 하면, 광고기획사에서 출간한 책도 있다. 이 때문에 서점에서 정식으로 팔리는 책도 일부 있지만, 출판기념회가 아니면 판매처를 찾기 힘든 '일회성' 책도 많다.

'선거용' 책에 대한 출판계와 유권자의 의견은 분분하다. 선거를 앞두고 펴낸 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정치인 '홍보용 도구'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전자(前者)는 '종이책'이 가지는 정직함과 무게에 가치를 둔다. 영상·인터넷 매체는 쉽게 지워버릴 수 있어 '가짜 뉴스'의 근원지로 평가받는 반면, 지워버릴 수 없는 종이책은 약속·기록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 중에선 과거 자신이 쓴 책 내용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놓인 예도 종종 있다. 또 출마 예정자들이 지역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 출판업계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후자(後者)는 이른바 '선거용 책'이 소비되는 방식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국내 한 출판사 관계자는 "책은 세월을 두고 오래 읽혀져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회성 홍보자료에 불과한 선거용 책을 보면 솔직히 '나무(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을 숨길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우리 출판사에서도 출마 예정자의 책을 출간한다"면서도 "출판업계가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말도 안되는 내용의 책을 내달라는 출마 예정자들의 경우 출판 요구를 정중하게 거절한다. 올해도 그렇게 2~3명을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출판업계에선 출마 예정자의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라고 강조한다. 대구의 중견 출판사인 학이사 신중현 대표는 "선거를 앞두고 내는 책이라도 단순 홍보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와 철학을 담고 있다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급하게 책을 제작하기보다 평소 꾸준히 콘텐츠를 고민하고 미리 책에 담길 글을 써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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