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경기도 구리 동구릉·고구려 대장간마을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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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7   |  발행일 2020-01-17 제37면   |  수정 2020-01-17
살아있는 유산 조선 왕릉, 뛰어난 철기문화 고구려 마을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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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기슭에 있는 '고구려 대장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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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의 소나무 숲이 수려한 트레킹 로드.

동구릉
조선왕실 최대 왕릉군…9기 능 조성
태조 이성계 건원릉, 고향 억새 우거져
태종이 함경도 영흥 흙과 함께 가져와
산 사람과 혼백 만나는 공간 '정자각'


겨울 하늘이 우중충하다. 흐린 날씨로 경기도 구리시의 풍경까지 스산하다. 겨울에는 눈이 와야지 제맛이 나는데. 눈은 고사하고 미세먼지가 시나브로 먼저 왔다. 그래도 눈이 오는 상상은 산타의 소포처럼, 겨울의 애달픈 사랑과 흰 추억을 펑펑 쏟아지게 한다. 저 북쪽의 바람과 흰 눈을 타고, 백석의 시(詩)도, 자작나무 숲의 환상도, 북극의 오로라도 시부저기 흘러왔는데, 흰 눈이 없는 겨울동화는 그야말로 재채기 나는 찬바람일 뿐이다.

동면하는 꿈과 환상이 없어진 겨울은 얼마나 황량한가. 눈 덮인 장독대에서 꺼내먹는 동치미 없는 겨울은 얼마나 맛없고 시답잖은가. 그게 어찌 겨울일 것인가. 을씨년스러운 저 겨울 풍경에서, 나는 나의 어릴 적 추억을 담은 흑백사진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설사 눈이 오더라도 양푼이에 흰 눈을 담아 사카린을 풀어 빙설을 만들어 먹던, 그 아련한 낭만과 재미는 벌써 없어져 버렸다.

눈도 산성 눈이라서 금굴 속의 카나리아처럼 인간의 위험신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만약 역사의 현장에서 나를 열고 그 안으로 걸어간다면, 눈이 오는 상상이 날개를 달면서, 잃어버린 필름을 되찾는 기회가 올지 모른다.

구리시 동구릉 들머리에 있는 역사문화관에서 그 사적을 읽는다.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아홉 기의 능'이라는 뜻이다. 조선 왕실 최대 규모 왕릉군이다. 1408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 처음 조성되었고, 이후 조선 역대 여러 왕과 왕후의 능을 포함, 모두 9기의 능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한 형식의 능이 만들어졌는데, 왕이나 왕후의 봉분을 단독으로 조성한 단릉(單陵), 왕과 왕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雙陵),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왕과 왕비의 능을 각각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조성한 '합장릉(合葬陵)', 왕과 두 왕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릉(三連陵)'이 옴나위없이 한자리에 있어, 다양한 형태의 왕릉을 볼 수 있다.

조선 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6월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519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조상에 대한 숭모(崇慕)와 존경(尊敬)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 조선은 역대 왕과 왕비의 능을 엄격히 관리했다. 그리하여 42기의 능 어느 하나라도 훼손되거나 인멸되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완전하게 보존되었다. 조선 왕릉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 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600여 년 전의 제례(祭禮)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동구릉 안으로 걷는다. 곧이어 재실(齋室)이 나타난다. 재실은 제향을 지내는 데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하는 곳이다. 능이 많아 동구릉의 으뜸인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으로 먼저 간다. 전주이씨만 건널 수 있다는 금천교를 지나고, 여기까지가 진입공간이다. 능마다 있는 홍살문부터 제향 공간이다. 우측 배위를 지나, 정자각까지는 혼령의 길인 향로(香路)와 임금의 길인 어로(御路)가 있다. 조금 높은 데 있는 정자각을 오르는 계단도 두 개다. 우측은 사람이 오르는 계단이고, 좌측은 혼이 오르는 계단이다.

계단을 오를 때에는 먼저 오른발을 올리고 왼발을 오른발에 붙인다. 내려갈 때는 반대로 한다. 정자각은 제향시 제물을 차리는 곳이며, 향을 피워 혼(魂)을 부르고 술을 부어 백(魄)을 부르는 곳이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가고, 백(魄)은 땅으로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로 '혼비백산(魂飛魄散)'이다. 그러므로 죽은 이의 혼(魂)과 백(魄)을 모두 불러야, 비로소 조상의 혼백을 모시는 것이다. 정자각은 산사람과 혼백(魂魄)이 만나는 공간이다. 정자각 뒤로 돌아간다. 예감과 산신 석, 축문을 태우던 소전대도 관람한다. 그 위로는 능침 공간, 즉 혼령이 머무는 곳이다. 무석인 문석인 능침 곡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태조의 능에는 억새가 우거져 있다. 말년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곳에 묻히기를 원했던 태조를 위하여 태종이 태조의 고향 함경도 영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 건원릉 봉분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나머지 능도 구조가 대동소이하다. 목릉, 휘릉, 원릉, 경릉, 숭릉을 탐방하고 되돌아 나와 들머리 반대편에 있는 수릉, 현릉까지 답사한다. 더 볼 게 남았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인근에 있는 고구려 대장간 마을로 이동한다.

타고 가는 차 안에서 동구릉의 숱한 상념이 곰비임비 엉켜 머리가 어지럽다. 왕이든 백성이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흙은 우리 모두의 피와 살 뼈이고, 영원한 고향이다. 흙에서 나서 자라고 사라지는 것들. 그리고 피고 지는 모든 것들, 덧없다. 덧없이 피고 지고 하다가 흙으로 사라지는 것이, 너와 나의 생명이다. 그렇다. 그 흙을 밟으며 창세기의 구절을 다시 꺼내 보고 싶다. 성경은 탄생과 죽음에 관한 신호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잘 자란 소나무와 잡목이 고흐의 그림처럼 영성으로 표현되는 동구릉 길도, 죽음과 혼령을 느낄 수 있는, 그 신호와 상징이 곳곳에 가득했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
아차산 자락 북방의 기개 고구려 유적
벽화로 상상한 뛰어난 철기 문화 재현
현재와 강도·질 비슷한 우수한 철기류
한강이남·중랑천 등 조망 전략 요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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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대장간 마을'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철갑 기마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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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보루에서 발굴된 고구려의 쇠솥 유물.

오늘은 역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시간여행이 키워드다. 그러구러 구리시 아차산자락에 있는 고구려 대장간 마을에 도착한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은 구리시 공립 박물관이다. 정말이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천금 같은 고구려 유적을 전시하는 마을이다. 먼저 야외 전시장을 둘러본다. 고구려 벽화를 토대로 상상을 더해 만든 것으로, 고구려의 뛰어난 철기문화를 보여주고자 직경 7m의 물레가 있는 대장간과 집을 만들어 대장간 마을을 재현하고 있다. 마을은 북방의 억센 기개를 잘 나타내듯이 집들이 엉버틈하고 기운차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아차산 고구려 유적 전시관으로 들어간다. 아차산 고구려 유적 전시관은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반까지 고구려 군사유적인 아차산 보루군에서 출토된 유물과 아차산 4보루 모형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아차산 4보루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토기와 명문 토기가 출토되었고, 무기류, 마구류, 농기구류 등의 철기도 출토되었다. 오절판, 명문접시, 몸통 긴 항아리와 철제 투구, 철제 등자와 재갈 도끼가 보이는데, 녹이 많이 슨 이 유적들은 녹만 제거하면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질이 뛰어난 철기라고 한다. 지금 포항제철소에서 제철한 쇠 중 가장 질이 우수한 제철과 비교해 보면 강도·질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중 쇠솥과 쇠솥을 덮고 있는 항아리는 아주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는데, '고구려 무사들이 쌀을 쪄서 찐 밥을 해 먹었다'는 유물이라고 한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남한 최초의 고구려 유적지이고, 남한 내의 대표적인 군사 유적으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한강 이남 지역과 중랑천, 왕숙천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고구려가 5세기 후반 한강 남쪽까지 진출한 후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 유역을 상실하기까지 한강을 중심으로 전개된 삼국의 역사를 간직한 유적임이 인정되어 2004년 국가지정 문화재가 되었다. 아차산 이름은 조선 명종 때 유명한 점쟁이 홍계관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고구려 대장간 마을은 대한민국 역사 문화 콘텐츠의 중심에 서면서 드라마·영화 촬영 장소, 체험 장소가 되었다. '태왕사신기' '선덕여왕' '바람의 나라' '자명고' '쌍화점' '계백' '신의' '역린' '사임당 빛의 일기' '안시성' 등이 여기서 촬영되었다.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고구려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역사적인 공간이 옴니암니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다.

시인 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문의: 조선왕릉 동부지구 관리소. (031)563-2909
☞내비게이션 주소: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트레킹 코스 : (가)동구릉: 들머리-역사문화관-홍살문-재실-건원릉-이후 자유탐방. (나)고구려 대장간 마을: 야외 전시장 입구 - 거믈촌 - 연호개채 - 대장간 - 담덕채 - 광개토대왕비 - 야외공연장 - 아차산 고구려 유적 전시관 - 출구 구름다리

☞ 주위 볼거리: 큰 바위 얼굴, 명빈묘, 나만갑 선생 신도비, 아차산 4보루, 아차산 3층 석탑, 망우묘역, 구리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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