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학의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 '봉화 청량산박물관'·日 '간몬 해협 박물관'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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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7   |  발행일 2020-01-17 제38면   |  수정 2020-01-17
사람과 어우러진 산과 바다…그 속에 녹아든 장대한 이야기

당당하게 몸 바쳐 일하는 志士 같은 '봉화 청량산박물관'

청량산의 가치 보여주고, 들려주며 삶과 연계
최치원·공민왕 등 봉화와 인연 깊은 역사 인물
각별한 애정 퇴계 이황, 山이름 알린 일등공신
동물·식물·민속, 사계절 봉화 군민의 농경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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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박물관 내 봉화의 풍속을 보여주는 대형 디오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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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사 홍익한의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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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청량산 문화유적.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제1의 장소인 가정, 제2의 장소인 일터 혹은 학교에 이어,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곳을 '제3의 장소(The Great Good Place)'로 규정했다. 나는 그 '제3의 장소'가 오롯이 박물관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말처럼 '비공식적 공공생활'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장소는 실재를 전달하는 기호(Sign) 같은 존재가 가득하고, 지적 호기심이 다양한 재미로 이어지는 곳일 테니까.

안동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오르다가, 청량사 가는 길로 접어들어 청량교를 건너기 전 왼편에 청량산박물관이 있다. 앞으로는 청량산이 환히 보이는 멋진 경개가 펼쳐진 전망 좋은 곳이다.

1982년 도립공원으로,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23호로 지정된 청량산이지만 박물관 이름까지 '청량산 박물관'이라고 짓기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으리라. 청량산이 봉화군의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고서야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짐작을 하게 된다. 산악박물관, 산촌박물관, 산림박물관 등 '산'을 테마로 내건 박물관은 많지만 온전하게 '산'만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곳은 아니다. 과연 '산'을 보여준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의문을 품어본다. 산의 가치를 사람들이 새롭게 느끼도록 산이 품은 역사와 문화, 삶과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청량산 박물관은 신라의 문장가 고운 최치원, 재현된 낭공대사탑비로 기억되는 명필 김생, 청량산의 신앙이 된 고려 공민왕, 조선의 문신 신재 주세붕, 대제학 퇴계 이황, 병자호란 삼학사의 한사람인 대쪽 선비 홍익한, 제주 목사로 선정을 편 노봉 선생, 여류시인 설죽 등 봉화와 인연 깊은 이런 분들의 얘기를 한자리에 되살려 놓았다.

주세붕의 '유청량산록'은 청량산 유산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이 글에서 '비록 작기는 하지만 업신여기지 못할' 산으로 청량산을 꼽았다. 그러면서 봉우리 이름을 개명하여 불가(佛家)의 산을 유가(儒家)의 산으로 바꾸는 데 한몫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청량산의 이름값을 올려놓은 일등공신으론 단연 퇴계 이황을 꼽는다. 어려서부터 숙부와 형을 따라 청량산을 오가며 수양한 그가 자신의 호를 '청량산인'이라고 정하거나, 청량산을 집안의 산, 즉 오가산(吾家山)이라 칭한 걸 보면 그의 청량산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은 각별하기 그지없다. '아무한테도 청량산의 비경을 쉬 알리고 싶지 않다'던 퇴계 선생의 그 마음이 전시장 한 편에 시(詩)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청량산의 동물, 식물, 민속 등을 보여주고 절기에 맞춘 봉화 군민의 삶을 맞춤하게 보여준다. 더구나 인물 역사관과 농경문화 전시관이 청량산 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몸처럼 붙어있어 청량산과 봉화군을 속속들이 드러내고 있지만, 여기에서 '역사와 유물'이 살아있는 곳은 박물관 밖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사계절이 분명한 청량산은 언제든 누구나 재발견하는 가장 훌륭한 박물관인 셈이다.

자연과 사람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봉화 청량산 박물관에는 청량산을 담았다는 표현보다는 청량산에 박물관이 스몄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무엇하나 흉내 내지 않고 당당하게 몸 바쳐 일하는 지사(志士)처럼 그곳에 있어 줘서 고마웠다.

▨ 경북 봉화군 '청량산 박물관' www.bonghwa.go.kr/open.content/mt

체험형 박물관의 새로운 전형 日 '간몬 해협 박물관'

대한해협·세토나이카이 잇는 유일한 해상 통로
과거·미래 교차, 영상·게임 통해 드라마틱 체험
컬러풀 바다생물·화려한 인형으로 표현한 역사
밤 풍경 화가·영화관·선술집 그시절의 흥청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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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몬해협박물관 해협아트리움의 영상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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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회랑의 전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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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시대를 재현한 모지코 거리.

간몬해협은 일본 혼슈 서쪽 끝 항구인 시모노세키시와 기타큐슈시 모지구 사이의 해협으로 관(關)자와 문(門)자를 따 이름을 붙였다.

규슈의 관문이자 혼슈로 가는 길목일 뿐 아니라 대한해협과 세토나이카이를 잇는 유일한 해상 교통로이기 때문에 수많은 콘테이너선과 여객선이 오고 가는데 폭이 좁고 유속이 빨라 사고가 빈번이 일어나는 이 해협을 잇는 간몬교 아래로 간몬 터널이 통한다.

이 해협을 테마로 문을 연 '간몬 해협 박물관'은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역사의 큰 무대였던 간몬해협의 장대한 이야기를 엮어내는 체험형 박물관으로, 모지코 레트로 지구의 랜드마크이다. 원래의 이름은 생긴 모습을 따서 2003년 '해협 드라마십'으로 문을 열었지만, 2018년부터 1년 반 동안 10억엔(약 105억원)의 예산을 투입, 리모델링을 하고 체험거리를 늘려 2019년 9월 이름을 바꿔 재개관했다. 해협의 역사, 자연, 문화를 영상이나 게임을 통해 다양하고, 드라마틱하게 체감할 수 있는 시설로 탈바꿈한 것이다.

박물관은 5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의 고층형 박물관들이 그렇듯이 4층으로 올라가서 1층으로 내려오며 관람하는 구조다. 2층에서 4층까지 뚫린 '해협 아트리움'은 해협의 역사를 환상적이고 역동적인 영상으로 재현해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18m×9m의 거대한 돛 모양의 스크린은 압도적인 영상미로 해협의 다양한 매력을 전한다. 빛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바다생물들의 컬러풀한 판타지를 사실적인 그래픽으로, 국제무역항으로서 발전한 모지코의 변천을 역동적인 모노로그로, 1185년의 단노우라 전투와 1863년의 바칸 전쟁을 최첨단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데, 그 영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선형 슬로프를 오르면서 약 8분 길이의 영상을 30분 간격으로 관람할 수 있다.

3층 '해협역사 회랑'에서는 혼슈와 규슈가 갈라졌다는 전설에서부터, 시대의 변화를 부른 수 많은 사건들의 무대가 된 이곳의 이야기를 정교한 인형으로 재현하고 있다. 간몬해협에서 일어난 헤이안 시대 말기의 단노우라 전투, 시모노세키 전쟁으로 불리는 바칸 전쟁 등도 재현되어 있는데, 어떻게 인형으로 그 장대한 역사의 드라마가 제대로 표현되겠냐고 반문한다면 그건 기우. 일본과 체코 등의 저명한 인형작가 10명이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다양한 인형을 통해 해협의 역사와 풍경을 감동으로 되살려냈으니 말이다.

1층은 1900년대 초반 다이쇼(大正)시대를 재현한 '해협 레트로' 거리로 꾸며져 있다. 다이쇼시대 국제무역으로 번성했던 모지코의 거리 일부를 실제 크기로 재현한 공간이다. 모지코가 바나나를 맨 처음 수입한 곳임을 알려주는 재미난 풍경과, 전차(電車)가 있고 상인들이 흥정하는 거리의 모습을 사실적인 단색조의 조형물로 보여주고 있다. 방문객들은 항구도시 모지코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길목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천장에 달린 수십 개의 조명이 연출하는 푸른 하늘과 노을 그리고 별이 쏟아지는 밤 풍경 속에 거리의 화가, 바나나 장수, 영화관, 선술집 등이 지난날의 흥청거림을 느끼게 한다. 자연스레 지역의 역사를 알게 하는 전시기법이 돋보인다. 일본 각지에서 복고풍 경관이나 체험으로 경제효과를 올리게 되면서 유사한 시설들이 세워지고는 있지만, 그것도 실내에 이처럼 잘 만들어진 곳은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있다면 오사카의 '생활의 금석관(今昔館)'과 견줄 만하다.

4층의 '프롬나드 데크'에는 호화 여객선의 갑판을 본뜬 라운지 카페가 있고, 5층에는 간몬해협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마리나 테라스 가이토'가 성업 중이다. 해상보안청의 홍보 코너, 영화자료관 '영송문고'를 소개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간몬해협의 매력을 알려 70만 명의 관광객을 모으는 데 제 몫을 다한다. 욕심을 잔뜩 낸 공간이지만, 흠잡을 데가 없었다.

오로지 '간몬해협' 그 하나에 집중하고 있는 곳, 다양한 콘텐츠를 '기-승-전-해협'으로 모아놓은 곳.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망라된 원소스멀티유즈(OSMU)의 교과서 같은 박물관을 나서면서 짐짓 '제3의 장소'라 여겼던 모지코 레트로의 가치를 다시 기억했다.

▨ 일본 모지코 '간몬 해협박물관' www.kanmon-kaikyo-museum.jp

대구교육박물관장·사진=김선국 사진가

☞ 미래를 꿈꾼다면 '법고창신' 의 문이 열린다

'무엇이 역사인가'란 질문에 대답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간들이 쌓여간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앞서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지혜를 배우지 않는가. 문턱 낮은 박물관에서 삶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살펴볼 때 그 덕목은 더 커질 것이다. 보는 이에 따라 수천 개의 얼굴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므로, 나름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적절하게 품은 공간의 기운에 집중해 보자. 그리고는 긴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미래를 꿈꿔보자. 그야말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문이 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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