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법치 붕괴의 진원지가 된 청와대

  • 이은경
  • |
  • 입력 2020-01-22   |  발행일 2020-01-22 제31면   |  수정 2020-01-23

2020012101000892700036851

'법 위에 선 청와대'의 초법(超法)·불법(不法)·무법(無法)적 행태가 법치를 무너뜨리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 권력과 광장의 목소리가 자의적으로 통치하는 '인치(人治)'의 시대로 되돌리고 있다.

첫째, 청와대는 송철호 울산시장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자치발전비서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지금까지 아무런 정당한 이유없이 거부하고 있다. 법관이 적법하게 발부한 영장을 대상자가 부적법하다고 임의판단해 거부할 수 있다면 어떻게 형사사법 절차가 운용될 수 있는가. 오죽하면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들로 구성된 익명카페 '이판사판'에서 조차 청와대를 비판하는 글이 수없이 게시되고 있겠는가. 김명수 대법원장의 침묵도 심각한 문제다. 김 대법원장은 '판결의 권위'와 '법의 지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결코 수수방관해선 안 된다.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근간으로서 사법부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여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명확한 입장표명과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법부 스스로 사법부 독립을 허물어버리면 누가 과연 사법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는가를 깊이 명심해야 한다.

둘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 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최강욱 공직기강비서관은 수차례의 검찰 소환 통보에 불응하면서 오히려 검찰인사를 주도하고 있다. 이야말로 도둑이 포졸을 잡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행태가 아닌가.

최 비서관은 떳떳하다면 더이상 언론을 통해 "검찰 수사는 허위"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수사에 임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만약 최 비서관이 임박한 검찰 중간간부 인사 이후 수사상황 변화 가능성을 지켜보면서 수사를 뭉개려 한다면 이는 중대한 불법이다. 사실관계가 객관적 증거에 의해 확인됨에도 소환에 불응한다면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게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다. 검찰은 최 비서관이 만약 끝까지 소환을 거부한다면 당연히 업무방해 등으로 기소하여 법의 엄정함을 보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와대는 조국 전 장관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인권 탄압이 있었는지 조사해 달라는 청원을 인권위에 이첩하여 압박하고 있다. 엄중한 독립성이 생명인 인권위에 청와대가 사실상 조사를 지시한 것은 국가 제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조국 관련 수사를 비판해온 박찬운 인권위 상임위원이 청원의 주심을 맡은 것도 문제다. 박 위원은 13일 대통령 몫의 상임위원으로 임명됐는데 관례를 무시하고 바로 제1소위 위원장을 맡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박 위원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도 검찰의 기피 신청 전에 먼저 스스로 회피를 하는 것이 정도(正道)이고 상식이다.

'國無常强 無常弱(국무상강 무상약), 奉法者强 則國强(봉법자강 즉국강), 奉法者弱 則國弱(봉법자약 즉국약)' '영원히 강한 나라도, 영원히 약한 나라도 없다. 법을 받드는 사람이 강해지면 나라가 강해지고, 법을 받드는 사람이 약해지면 나라가 약해진다.'

'한비자(韓非子), 유도편(有度篇)'의 구절이다. 청와대는 더이상 법치 붕괴의 진원지가 되어선 안 된다. 진정한 법치의 확립을 통해 극심한 내부 갈등과 혼란을 극복하고 새 시대로 나아가는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 국민들도 법치는 그저 주어진 당연한 명제가 아니라 굴곡과 인고의 역사 속에 시민적 각성을 통해 깊이 새겨진 소중한 유산임을 깨닫는 대각성이 필요하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