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22] 인왕(금강역사)상...부처·佛法 수호신, 코끼리 100만배 힘에 신성한 지혜 갖춰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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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23 07:51  |  수정 2021-07-06 10:22  |  발행일 2020-01-23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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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신장인 인왕상 모습들. 왼쪽부터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인왕상, 일본 교토 닌나지 인왕상, 경주 장항리사지 서오층석탑 인왕상, 일본 교토 다이고지 인왕상.

일본의 사찰들을 둘러보면 한국과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우리나라 산사에는 기본적으로 있는 천왕문(天王門)이 일본 사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 대신 인왕상(금강역사상)이 지키고 있는 인왕문(仁王門)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일본 교토와 나라의 여러 사찰을 둘러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인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神將)이다. 일본 사찰에서 본 인왕상들은 대부분 조각 솜씨가 매우 뛰어나 저절로 발길이 머물게 했다. 보게 된 인왕상은 모두 나무로 된 것이었는데, 우람한 보디빌더를 떠올리게 하는 근육질의 남성 몸매 형상을 뛰어난 솜씨로 빚어내고 있었다. 교토에서 닌나지(仁和寺)·다이고지(醍寺)·기요미즈데라(淸水寺)의 인왕상을, 나라에서는 도다이지(東大寺)의 인왕상을 보았다.

◆일본의 인왕상

닌나지의 정문에 해당하는 인왕문은 정면 5칸에 2층 구조의 큰 건물이다. 무서운 얼굴에다 울퉁불퉁한 근육질 몸매의 인왕상은 문 양 옆에 한 칸씩 차지해 자리하고 있다. 허리 아래부분은 나무 창살로 보호하고 있다. 현재의 이 문은 1644년에 다시 건립된 것이라 한다. 닌나지 인왕문은 지온인(知恩院)과 난젠지(南禪寺)의 산문(山門)과 더불어 교토 3대 산문으로 꼽힌다. 사찰 정문인 산문은 삼문(三門)이라고도 하는데, 삼문은 삼해탈문(三解脫門)의 준말이다.

다이고지 인왕상은 서대문으로도 불리는 인왕문(3칸) 양쪽에 하나씩 서 있다. 약 900년 전인 1134년에 제작된 것이다. 닌나지 인왕상보다 부드럽고 유려한 선을 보여준다. 통나무를 사용한 듯한데, 무슨 나무인지 무늬와 색깔도 독특하다. 현재의 인왕문은 1605년에 재건한 것이고, 인왕상은 불타버리고 지금은 없는 남대문에 모셔져 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우리 문화재로 꼽을만한 인왕상
벽화·석탑조각 등으로 남아있어
석굴암 주실 앞 부조가 대표작품

日사찰서 본 인왕상은 모두 목조
우람한 男 보디빌더 떠올리게 해



도다이지 남대문의 양쪽에 있는 인왕상은 1203년에 제작되었다. 이 인왕상은 크기도 엄청나고, 험악한 얼굴에다 매우 역동적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가 8.4m에 이르는데, 일본에서 가장 큰 인왕상이라고 한다. 정면 5칸·측면 2칸의 복층 구조인 이 남대문도 높이가 24m가 넘는다. 일본 최대 산문이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5년에 걸쳐 해체·수리했는데 당시 인왕상 안에는 밀교계통 경전이 들어있었고, 69일 만에 완성했다는 기록도 있었다고 한다. 이 인왕상은 여러 조각의 나무를 붙여 만든 것이고, 뒷면은 입체가 아니고 평면으로 되어 있다.

도다이지 인왕상은 일본의 국보이고, 닌나지와 다이고지 인왕상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일본 사찰에 천왕문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주로 금당(金堂)이나 강당(講堂)의 본존불 불단의 네 귀에 사천왕상을 봉안하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인왕문이 많았는데, 조선 시대 이후 천왕문이 보편화되면서 인왕문을 대신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인왕상

한국 산사에는 인왕문을 별도로 둔 경우가 별로 없다. 속리산 법주사와 김천 직지사 정도다.

법주사 금강문은 일주문을 지나 한참 올라가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문이다. 이 금강문에는 인왕상이 양쪽에 서 있다. 그리고 사자를 탄 문수보살상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상이 각각 그 옆에 모셔져 있다. 금강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온다. 직지사도 같은 구성이다. 일주문을 지나서 금강문이 있고, 금강문을 지나면 바로 천왕문이 나온다.

우리나라 산사의 경우, 중요한 문화재로 꼽을 만한 인왕상은 벽화나 석탑에 새겨진 조각 등으로 남아있다. 가장 대표적 인왕상은 불국사 석굴암의 주실 앞 좌우에 있는 인왕상이다.

인왕상 벽화로는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인왕도를 꼽을 수 있다. 통도사는 금강문이 따로 없고, 극락보전 양쪽 벽에 그려진 인왕상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역동적인 모습의 인왕을 표현한 솜씨가 매우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이 극락보전은 천왕문을 지나 가장 먼저 만나는 법당이다. 고려 때인 1369년에 창건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801년에 중건됐다는 기록이 있다.

합천 해인사는 사천왕상이 있는 봉황문의 대문에 인왕상을 그려놓고 있다.

석탑에 새겨진 인왕상으로는 장항리사지 서오층석탑(경주 양북면 장항리)의 인왕상이 대표적이다. 1층 탑신 4면에 각기 문 모양과 함께 그 좌우에 인왕상을 조각하였다. 조금씩 다른 모습인데 뛰어난 조각솜씨를 보여준다. 1987년 국보 제236호로 지정된 이 탑은 높이 9.1m로, 2층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린 석탑이다. 동오층석탑에도 인왕상이 새겨져 있는데 많이 마모되었다.

◆밀적 금강, 나라연 금강

금강역사(金剛力士), 이왕(二王), 이천왕(二天王)으로도 불리는 인왕은 인도 신화에서 유래되었다. 인도에서 문을 지키는 신이었는데, 이를 불교에서 받아들여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금강역사는 보통 두 종류로 표현된다. 하나는 밀적(密迹) 금강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나라연(那羅延) 금강역사이다.

밀적 금강역사는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금강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금강으로 만들어진 무기이다.

나라연 금강역사는 그 힘이 코끼리의 100만 배나 되고, 그가 소리를 지르면 중생은 귀가 먹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나라연 금강역사는 입을 벌린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나라연 금강역사는 '아금강역사'라고 부른다.

밀적 금강역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훔금강역사'라고 한다. 아는 범어의 첫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로,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한다고 한다.

인왕상은 대부분 머리 부분에 커다란 두광(頭光)이 표현되는데, 이는 이들이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신성한 지혜도 갖추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대개 인왕문이나 천왕문과 같이 출입구에 모셔지지만, 탑의 입구나 탑신에도 표현되며, 명부전의 입구 좌우에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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