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사생활 보호 개념이 없는 나라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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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24   |  발행일 2020-01-24 제26면   |  수정 2020-01-24
휴대전화 정보 무방비 노출
당사자는 정보 보호에 무심
당국과 사회는 미온적 대처
누리꾼은 거리낌없이 확산
결국은 사생활 보호 큰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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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주진모 휴대폰 정보 유출사건이 있었다. 해커라고 자칭하는 범죄집단이 휴대폰 내용을 폭로하겠다며 돈을 요구했다. 유명인 10여 명이 당했다. 자신들은 경찰에 잡히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공포에 휩싸인 일부 유명인은 돈을 주기도 했는데, 주진모는 그러지 않고 신고하면서 이 사실을 공론화했다. 그 직후에 주진모 휴대폰의 문자 내용이라는 게시물이 인터넷에 게시됐다. 범죄집단의 보복으로 추정된다.

해커라고 했지만 사실은 어딘가에서 유출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수해, 휴대폰 클라우드 서버에 로그인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한다. 남의 집 열쇠를 구해 문을 열고 들어간 것과 같다.

그동안 아이디,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터져도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클라우드 보안에도 무신경했고, 심지어 자신의 휴대폰 정보가 클라우드에 복사된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바로 이 틈을 노리는 범죄집단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이 개인정보를 가져갔을 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한 유명 요리사도 수년 전부터 휴대폰 자료 유출로 협박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알려졌다. 사생활 정보를 노리는 범죄가 전면화될 조짐이다. 정보 보호에 예민해져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에 타인의 개인정보, 사생활 정보 보호의 개념이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주진모 문자의 내용 하나하나를 따지며 주진모를 윤리적으로 질타하는 누리꾼들이 아주 많았다. 심지어 언론까지 이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정작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윤리적, 법적 문제가 있었는데 아무도 그 부분을 자각하지 못했다.

바로 남의 휴대폰을 무단으로 들여다보고, 그 내용을 타인에게 전하는 유포죄까지 범했다는 점이다. 범죄자들이 복사해낸 주진모 휴대폰 내용을 보는 건 그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이것이 지인과의 부적절한 사적인 대화보다 더 비윤리적 행위인데도, 사람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휴대폰 주인을 윤리적으로 꾸짖었다.

사람들이 해커를 자처한 범죄집단과 같은 행위를 한 것이다. 범죄집단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내 남의 휴대폰을 들여다봤지만, 누리꾼들은 인터넷 게시물을 통해 봤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또, 범죄집단은 자신들이 복사한 파일을 인터넷에 올려 유포했지만, 누리꾼들은 게시물을 퍼나르거나 비판하면서 설명하는 식으로 유포했다. 방식이 다를 뿐 본질은 같다.

누리꾼들이 휴대폰 주인을 질타하면서, 휴대폰 주인을 협박하려는 범죄집단의 의도를 실현시켜주기도 했다. 향후 다른 유출 피해자는 주진모 여론재판을 거울삼아, 공론화하지 않고 범죄집단의 요구에 바로 응할 것이다. 누리꾼이 범죄집단을 도운 셈이다.

사생활, 개인정보 보호 의식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당사자는 자기 정보 보호에 경각심이 없고, 당국과 사회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누리꾼들은 남의 사적인 정보를 거리낌 없이 들여다보며 심판하고 퍼나른다.

언론조차도 누리꾼과 같은 수준이다. 이런 사회에선 우리 모두의 사생활 정보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범죄집단이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공권력의 미온적인 태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경각심, 당국의 엄정한 대처, 타인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내 사생활도 보호받는다는 깨달음이 절실한 '초연결사회'다.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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