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기업의 망명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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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28   |  발행일 2020-01-28 제31면   |  수정 202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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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찬 법무법인(유한)클라스 대표변호사

2020년 라스베이거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수제맥주 기기로 혁신상을 받은 기업 인더케그(INTHEKEG)가 주목을 끌었다. 수제맥주 제조기기가 전자제품박람회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미국의 식음료 매체 'THE SPOON'은 냉장고 크기만한 인더케그의 수제맥주 기기를 맥주의 '양조, 저장, 제공'이 일체화(All-in-One)된 '스마트 맥주공장 플랫폼' 이라고 평가했다.

맥주는 차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이다. 오랜 역사와 사회·경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맥주는 '양조, 저장, 제공' 과정이 분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인더케그가 ICT기술을 이용하여 파괴적 혁신을 이룬 것이다. 맥주 산업계에 4차 산업혁명을 가져온 것이다. 인더케그가 개발한 수제맥주 기기에는 수백 개의 ICT센서가 들어있고 본사에서 애플리케이션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원격으로 맥주 양조(발효)와 저장, 케그의 살균과 청소 등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통제한다.

결과는 풍미, 신선도, 청결 측면에서의 탁월함이다. 인더케그의 혁신은 기업의 자유와 창의의 획기적인 모범사례이다. 국가와 정부는 이를 존중하여야 한다. 이는 헌법상의 명령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에 관한 법, 제도, 정책은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짓밟고 억압하는 불합리한 규제와 정책으로 넘치고 있다. CES가 인더케그에 혁신상을 줄 때, 국내 당국은 주류면허 발급을 거부하였다. 이 극명한 대비가 우리 기업이 처한 규제현실이다.

오죽하면 규제에 지친 IT, 벤처기업인들이 최근 '규제개혁당'을 창당하였을까? 인더케그가 공급하는 케그에는 '알코올분'이 없는 맥즙이 들어 있다. 그러나 맥즙이 든 케그를 수제맥주 기기에 장착하고, 케그 두껑에 내장된 캡슐을 터뜨리면 효모가 나와 발효를 거쳐 알코올이 생성된다. 그것이 소비자에게 제공된다. 규제 당국은 '알코올분 1도 이상의 음료'라는 주세법상 주류(술) 개념은 케그 공급 시에 충족되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소비자에게 제공될 때에는 알코올이 포함된 음료이므로 술에 해당한다는 인더케그의 주장은 반향 없는 메아리였다. 스스로 주세를 납부하고 술의 유해성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법령을 준수하겠다고 하는데 배척당한 것이다.

마침내 인더케그는 규제를 피해 기업 망명을 결심하였다. 그 와중에 인더케그는 CES 혁신상을 수상하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를 계기로 국무조정실이 중심이 되어 작동된 이른바 적극행정의 혜택으로 인더케그는 주류면허를 받게되어 망명 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나 인더케그에 행운을 가져온 적극행정은 제도화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금도 수많은 기업이 망명을 꾀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망명 보따리를 풀도록 하는 획기적 조치가 필요하다. 방법은 간단하다. 혁신에 기반한 사업은 법령에서 금지한 것만을 제외하고는 일단 모두 허용하면 된다. 이런 간단한 조치가 인더케그의 사례처럼 혁신적으로 시행되기를 기대한다.
남영찬 법무법인(유한)클라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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