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악덕의 극복과 정치적 리더십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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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29   |  발행일 2020-01-29 제30면   |  수정 2020-01-29
정치 소음 큰 자유민주주의
지도자가 견제·균형 맡아야
한국 상황 생각하면 쓴웃음
잔인함 등 악덕 극복 여부로
정치적 리더십 측정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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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요사이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자유민주주의를 이렇게밖에 운영할 수 없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 수사권의 향배를 두고 몇 달째 옥신각신을 계속하는 권력기관들의 모습이 그렇다. 언론은 물론 광장의 시민들이나 SNS까지도 진영 논리에 매몰된 형편이니, 권력기관들이 두려워할 리가 없다. 4월 선거에서 승부가 마무리될 때까지, 이런 상황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 걸까?

자유민주주의는 국민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참여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다른 정치체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치적 소음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자유민주주의는 그 정치적 소음을 관리, 해소할 수 있는 세련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기능적·공간적 권력분립에 입각하여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정치제도와 그 안팎을 넘나들며 시대적 과제들을 해결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그 요체이다.

이 중 정치제도에 관해서는 접어두기로 하자. 초점을 정치 지도자들에 맞추면, 결국 핵심은 정치적 리더십의 수준이다. 국민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참여를 보장하면서도, 그로 인한 정치적 소음을 적정하게 관리하면서, 정치제도의 안팎을 넘나들며 현안들을 책임 있게 해결해내는 정치 지도자들을 과연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지금 한국 사회에는 이 문제를 이해하는 언어 자체가 대단히 빈곤하다. 정치권에서 인재 영입의 기준으로 내거는 말들만 보더라도, 기껏해야 도덕성, 전문성, 참신성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유행을 따라 스토리, 콘텐츠, 2030으로 용어를 바꾸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 지도자는 공적 수도자(修道者)이어야 한다. 공공의 안녕을 위해서 스스로를 삼가고 닦아 온전하게 만드는 존재여야만 한다는 말이다. 이에 관한 전통적인 표상은 어떤 경우에든 극단에 빠지지 않고 중용의 덕성을 발휘할 수 있는 탁월성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나 지혜·용기·절제·정의나 겨냥하는 목표는 같다.

그러나 이 기준을 지금 대한민국에 적용해보면, 곧바로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인재를 영입하는 정당 간부들을 평가하기에 공적 수도자의 미덕이라는 기준 자체가 왠지 너무 럭셔리하고 뜬금없게 느껴지지 않는가? 탁월한 정치적 리더십이 없으면 자유민주주의는 성공할 수 없는데, 지금 한국 정치는 도무지 그 탁월성을 말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처한 진짜 난국이 아닐까?

혼자서 고심을 거듭한 끝에 도달한 처방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의 측면에서 정치적 리더십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이다. 인의예지나 지혜·용기·절제·정의가 아니라, 교만을 누르는지, 질투를 가라앉히는지, 탐욕을 내려놓는지, 분노를 삭이는지, 과도한 소유를 줄이는지, 음란을 멀리하는지, 게으름을 스스로 나무라는지를 가지고 정치적 리더십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작고한 정치철학자 주디스 슈클라는 이 가운데 특히 잔인함을 버리는지가 중요하다고 갈파한 바 있다. 잔인함을 버리지 않는 정치 지도자는 위선과 속물근성과 배신과 인간혐오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각 정당과 권력기관의 수장들을 대상으로 악덕의 극복 정도를 평가할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만 다가오는 선거에서 자유민주주의에 필요한 정치적 리더십의 수준을 문제 삼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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