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퍼스트 리폼드' (폴 슈레이더 감독·2017·미국)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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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31   |  발행일 2020-01-31 제42면   |  수정 2020-01-31
망가진 세상, 무엇부터 바꿔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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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다. 10편 정도 보면 정말 좋은 영화는 잘 해야 한 두 편이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발견하는 기쁨이 크기에 영화 보는 일은 언제나 설렘이 앞선다. 오랜만에 기억에 남는 좋은 영화를 만났다.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였던 영화 '퍼스트 리폼드'. 1767년에 세워진 퍼스트 리폼드 교회는 관광지로만 자리한 지 오래고, 출석교인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아픈 가족사가 있는 톨러 목사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병든 몸으로 고뇌에 찬 일기를 쓰고 있는 그에게 상담 요청이 온다. 자신의 남편을 상담해달라는 신도 메리의 요청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녀의 남편을 만난 뒤로 톨러 목사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쓰던 일기를 찢어버린 그는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극본과 감독을 겸한 폴 슈레이더는 '택시 드라이버'의 각본가답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톨러 목사의 입을 통해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망가진 세상을 신은 용서하실까"라고 묻는다. 급진적 환경운동단체의 일원이던 메리의 남편은 "이런 세상에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말한다. 죽음으로 메시지를 남긴 마이클과의 만남 후, 톨러 목사의 삶은 급격하게 달라진다. 환경오염의 주범인 거대기업(교회의 가장 큰 후원자인)에 맞서게 된다. 그의 표현대로 "다른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악을 스스로 응징하려는 톨러 목사는 얼핏 '부활'의 라스콜리니코프를 연상시킨다. 처절한 절망 끝에 새어 나오는 한 줄기 빛이 사랑이라는 점도 그렇다. 냉혹한 심판자가 되어버린 그의 앞에 홀연히 서있던 사랑이야말로 신의 개입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긴급수술이 필요할 만큼 총체적 난국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퍼스트 리폼드'는 그렇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단 한 장면만으로도 평생 기억되는 것이 영화다. '퍼스트 리폼드'에는 오래오래 기억될 마법 같은 장면이 존재한다. 어느 장면을 말하는지 직접 보면 바로 알게 된다. "슈레이더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이 행성에 온 것 같다"라고 극찬했던 워싱턴 포스트의 말을 빌리자면,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 같다"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정전되듯 갑작스레 끝나버리는 마지막 장면 역시 그렇다. '택시 드라이버'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요즘 마블 영화는 놀이동산 같다"라고 했다. 놀이동산 같은 영화만 고집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이 영화를 보기 바란다.

"왜 그렇게 착한 영화만 보느냐"고 누군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소확행'과 '힐링'을 예찬하며 어느 정도 현실 도피적인 영화들만 봤던 건 아닌지. 이 영화를 만나고 나서 나는 조금 덜 행복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가 던진 질문을 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금은 더 고민을 할 것 같다. 수많은 명작들이 그렇듯 이 영화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 미묘하다. 퍼스트 리폼드. 즉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종교와 정치가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시대, 탐욕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톨러 목사처럼, 세상의 타락에 대해 고민하고 번뇌하는 성직자가 그립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답은 여전히 하나다. 퍼스트 리폼드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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