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스타일 스토리] 페이크 퍼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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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31   |  발행일 2020-01-31 제40면   |  수정 2020-01-31
동물보호 인조털, 럭셔리하게 등장
매혹적으로 시선 강탈하는 패션깡패
방한 넘어 계급적 우월성·미적 탁월성
숄·부츠·모자·액세서리 다양한 활용
진짜같은 합성섬유 퍼, 패션 중심 주목
샤넬·구찌 등 명품 잇단 '퍼 프리' 선언
가공법 혁신, 품격 잃지 않은 럭셔리함
털 특성 살리며 자유자재 컬러 존재감
각 잡은 여배우 포스·스타일 지수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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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 퍼'의 화려한 등장은 가짜와 진짜의 가치, 고급과 저급의 차이, 천연과 인공에 대한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를 붕괴시키며 아름다움에 대한 본질적 질문과 생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바꾸어 놓았다. <출처: https://blog.naver.com/whalsl333/221157873195>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질문에 난 그랜저로 답했다'라는 자동차회사의 광고 카피가 있다. 이것을 여성으로 대상을 바꾸어 질문하면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여자 친구의 질문에 난 퍼 코트로 답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 '차'가 남자의 성공을 대변했다면, 여성에게 '퍼(Fur)'는 성공과 부의 아이콘으로 계급주의를 패션을 통해 과시했던 아이코닉한 옷이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남성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헌정하는 로맨틱한 물질적 표상으로 다이아몬드와 퍼만 한 것이 없었다. 통속적이라 흉보지만 이 둘은 그만큼 아무나 가질 수 없고, 월등히 비싸고, 특별히 아름답고, 모두가 선망하는 욕망의 기호로 여자라면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을 것을 꿈꾸었고, 그렇지 않으면 큰마음 먹고 언젠가 하나쯤은 장만하고픈 필생의 역작 같은 패션이었다. 이처럼 퍼는 패션에서 그 외관의 매혹적 아우라로 모두의 시선을 강탈하는 사치스럽고 따뜻한 패션 깡패로 자리를 잡았다.

그럭저럭 추위를 쫓아내는 초겨울과 달리 1월은 소한과 대한 추위가 절정을 이루는 남다른 시기이다. 올해는 포근한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뼈를 시리게 하는 차가운 기운은 따뜻함을 그립게 만든다. 퍼는 뛰어난 보온성으로 대표적인 방한품목이지만 계급적 우월성과 미적 탁월성으로 한겨울의 풍요로운 멋과 따뜻함을 일타쌍피로 잡을 수 있는 넘사벽이다. 최근 퍼 패션이 주목받고 다양해지면서 이것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열기 또한 뜨겁다. 요즘 퍼 패션은 베스트 아이템인 코트뿐 아니라 베스트(Vest), 숄 등을 비롯해 다양한 디자인과 아이템, 화려한 컬러와 트리밍으로 유니크하게 장식된 것들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 그 외 뮬(Mule-실내용 슬리퍼로 구두처럼 만든 것), 부츠 등 신발류와 독특한 모자와 헤어 아이템, 액세서리로 퍼의 스타일과 활용범위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워진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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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퍼(Fur)'는 성공과 부의 아이콘으로 패션을 통해 과시했던 아이코닉한 옷이었다. <출처https://blog.naver.com/jihye3682/220600555760>

퍼는 뛰어난 보온성으로 대표적인 방한 품목이지만 고대부터 지금까지 고귀한 신분을 과시하는 사치 패션으로서의 지위로 더욱더 선호되어왔고, 그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이런 열기 속에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패션 퍼를 바라보는 눈과 내부 사정이 예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음이 감지된다. 현재 패션계에서는 퍼의 유행을 중시하되 퍼의 대중화와 더불어 야기되고 있는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가치를 실천하고 소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한 브랜드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개념 있는 디자이너와 그것을 지지하는 똑똑한 소비자 때문에 '아주 멋진 가짜 페이크 패션 퍼(Classy Fake Fashion Fur)'가 진짜보다 더 당당하게 위세를 떨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페이크 퍼(Fake Fur)'는 진짜 모피처럼 보이지만 파일 직물(Pile Fabric)로 만든 부드러운 가짜 털로, 주로 폴리에스테르 같은 합성섬유를 사용하여 '리얼 퍼'처럼 만든 인조 모피이다. 페이크 퍼는 비건 퍼(Vegan fur) 또는 에코 퍼(Eco Fur)로도 불리는데, 채식주의자와 환경이라는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리얼 퍼가 아닌 페이크 퍼로 생산된 패션소재를 말한다.

페이크 퍼의 화려한 등장은 가짜와 진짜의 가치, 고급과 저급의 차이, 천연과 인공에 대한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를 붕괴시키며 아름다움에 대한 본질적 질문과 생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바꾸어 놓았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작년 11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앞으로 동물의 털로 만든 옷을 입지 않기로 했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이클래스에게만 허락된 사치의 특권을 내려놓은 세기의 여왕, 지속가능성과 동물보호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디자이너 스텔라 메카트니도 몇 해 전부터 퍼와 가죽을 전혀 쓰지 않고 컬렉션으로 진행하며 비건브랜드로서의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 런던에서는 모피 판매 금지법이 발의되었고, 명품브랜드 샤넬, 구찌, 톰 브라운, 지미 추 외에 글로벌 SPA 브랜드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줄줄이 퍼 프리를 선언했다.

전 세계 많은 동물보호단체와 환경운동가 또한 모피 불매운동을 진행하며 기업의 비윤리적 모피 생산과 동물 학대를 조장하는 소비에 대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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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브랜드 구찌, 샤넬, 톰 브라운, 지미 추 등 글로벌 SPA 브랜드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줄줄이 '퍼 프리'를 선언하고 있다.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943224&memberNo=43800437&vType=VERTICAL>

페이크 퍼는 기존 리얼 퍼의 틀에 박힌 올드하고 뻔한 디자인과 딱딱해 보이는 봉제와 철 지난 가공법 등에 혁신을 입혀 럭셔리하지만 스타일리시하고,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캐주얼해 어떤 장소, 어떤 아이템과 입어도 코디가 쉽고 어울리는 데일리 웨어로서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밍크, 라쿤, 여우, 토끼털의 특성을 정확하게 살리면서 컬러도 자유자재로 구사해냄으로써 페이크 퍼는 이제 패션에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페이크 퍼는 리얼 퍼의 럭셔리한 패션성은 놓치지 않으면서 고가에 대한 구매의 부담감은 대폭 줄이고, 특별한 날 입어야 하는 일상의 거리감도 없앰으로써 이른 시간 내에 패션계에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되었고 진정한 '모피의 혁명'을 이루어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페이크 퍼와 함께 입는 다른 옷들은 심플하면서도 베이직한 아이템과 매치시켜 퍼에 관심을 집중시키도록 코디하는 것이 좋으며, 안에 무채색의 터틀넥 하나만 걸치고, 스커트나 팬츠에 롱부츠를 신어주면 각 잡은 여배우 포스가 날만큼 의외로 옷 입기가 쉽다. 데일리로 편안하게 입으려면 데님이나 레깅스에 컬러풀한 쇼트 재킷으로 입으면 젊고 경쾌한 느낌을 살리면서 스타일 지수가 급상승할 수 있다. 좀 더 호사스럽게 입으려면 레오파드, 지브라 등 애니멀 패턴을 입으면 단숨에 거리의 패셔니스타로 등극할 수 있다.

페이크 퍼 관리 시 주의점은 열에 매우 약하므로 열기구 옆에는 가까이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털이 눌리고 나면 회복이 어려우므로 장시간 눌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처음에는 가능하면 드라이클리닝을 해서 변형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이후 손세탁 시 반드시 섬유유연제로 처리를 해주면 정전기를 방지할 수 있다. 부직포 옷걸이에 걸어 공기 소통이 잘되고, 털이 눌리지 않도록 방습제와 함께 보관하면 언제나 새 옷처럼 기분 좋게 입을 수 있다. 올 겨울 페이크 퍼 패션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함께할 착한 패션을 완성해 보자.

영남대 의류패션학과 교수

▨ 참고문헌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871680&memberNo=27875303&vType=VERTICAL 매일경제 에르메스, 루이뷔통이 반한 동물 털 채취법

△https://www.instagram.com/itov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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