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골목의 젠트리피케이션 '화랑도 소극장도 떠난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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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01   |  발행일 2020-02-01 제5면   |  수정 20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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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거리인 '대명공연거리'와 '봉산문화거리'가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윤관식 기자 yks@yeongnam.com

#. 봉산문화거리

한때 '인사동'으로 불릴만큼
대구 대표 미술거리로 유명
지금은 문화 관련 20여개뿐

최근 카페 등 새 상권 형성돼
주말이면 유동인구늘었지만
터줏대감격인 화랑은 '썰렁'


봉산문화거리는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의 거리이다. 봉산동 대구학원에서 봉산 육거리에 걸친 600여m에 이르는 이 거리에는 크고 작은 10여 개의 화랑과 고미술, 고서적점, 표구, 화방 등 20여 개의 문화 관련 업소가 들어서 있다.

봉산문화거리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쯤 부터다. 몇몇 그림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상설 화랑이 처음으로 문화거리 내에서 화랑을 열고 본격적으로 동·서양화를 전시 판매하기 시작한 것. 사람들은 이곳을 '봉산동 화랑 골목'이라 불렀다.

이전까지 덕산동 (중앙파출소~덕산빌딩)과 동아양봉원 일대에 밀집해 있던 화방과 표구사 등이 도심 상권의 확장으로 밀려나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한 길 건너편 봉산동 현재의 문화 거리로 이동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전문 예술가만 오가던 거리에 일반 시민의 발길이 늘어나자, 대구 중구청은 화랑이 몰려있던 이 좁은 골목을 1991년에 '봉산문화거리'로 지정했다. 이후 거리는 본격적으로 문화예술의 거리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봉산문화거리에서 예전의 영화를 찾긴 어렵다. '대구의 인사동'이라 불리며 한때 60~70여 개에 이르던 화랑과 관련 업체는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지난달 19일 오후. 봉산문화거리 내 A화랑 대표는 휴일이지만 전시장을 열었다. 최근 들어 골목에 새로운 카페와 음식점이 속속 문을 열면서 주말이면 골목의 유동인구도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화랑에는 온종일 사람 하나 없었다. 근처 카페는 젊은이들로 가득하고 골목을 오가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화랑을 찾는 이는 없었다.

"골목이 북적거리고 오가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분명 좋은 일인데 딱 거기까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젊은이들이 골목에 물밀듯 몰려오고 있지만 정작 화랑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실제 거리는 최근 크게 달라지고 있다. 골목 구석구석에서 건물 리모델링을 위한 인테리어가 한창이다. 모두 카페, 베이커리, 음식점 등으로 변신 중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골목의 5개 화랑이 문을 닫거나 골목을 떠나 다른 골목에서 새 둥지를 틀었다. 이들 화랑이 나간 곳은 모두 커피숍과 술집, 패션숍 등으로 바뀌었다. 거래는 줄어들고 임대료는 치솟고, 더는 버티기 힘들어 골목을 떠났다는 L갤러리 대표 이모씨는 이천동으로 옮겨 화랑 문을 다시 열었다.

"월 임대료가 10만원 정도 오르더니 갑자기 건물이 팔려 버렸다. 무슨 판매시설이 새로 들어 온다고 들었다. 대부분 화랑은 임대로 영업을 하고 있어 임대료 인상은 화랑 업주들에게는 직격탄이다."

평균 70만~100만원 사이에서 오가던 화랑들의 월 임대료는 최근 몇 년 만에 100만~130만원선으로 껑충 뛰었다. 임대료 인상을 버티지 못하고 화랑과 관련 업종이 나간 자리에는 '먹고 마시고 입는' 소비 업종들이 들어서면서 골목의 정체성을 흐려 놓고 있다. "봉산문화거리에 문화가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배민정 봉산문화협회장(수화랑 대표)은 "전반적인 미술시장 불황과 시장 환경의 변화 등 대외적인 요인은 물론 화랑업계의 자구책 부족 등도 거리 침체의 원인이다. 거리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과 지원이 없다면 골목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 대명공연거리

15개 소극장 상당수 '경영난'
경기 침체·지원 축소로 위기
콘텐츠개발등 자체노력 필요

관객줄어 운영에 어려움 겪자
최근 '고도 5층 극장' 문 닫아
지역 연극인들 떠날까 우려도


대구의 대표 공연문화 거리인 대명공연거리의 소극장들이 관객 감소와 콘텐츠 부족, 경기 침체, 지원 축소 등의 영향으로 운영난에 허덕이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기초 공연예술의 보고인 대구 소극장 문화 침체가 급속도로 가속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 연극계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극단 고도가 운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고도 5층 극장'을 1월말 폐관했다. 다른 소극장보다 임대료가 높고 극장이 5층에 위치해 관객 접근성이 좋지 못한 데다 지난해 관객이 전년 대비 20% 가량 줄어드는 등 가동률도 좋지 않아 소극장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2012년 10월 대명동에 개관한 고도 5층 극장은 8년여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김진희 극단 고도 대표는 "1995년 창단한 극단 고도는 유지한 채 소극장만 문을 닫는다. 매달 소극장 임대료와 관리비 등 유지 비용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2월부터 대명시장 근처로 연습실 겸 사무공간을 이전한다"고 말했다.

고도 5층 극장 폐관 소식에 지역 연극계는 큰 심리적 충격에 휩싸였다.

대명공연거리의 한 연극인은 "함께 활동하고 열심히 연극하던 동료가 소극장 문을 닫는다고 하니 안타깝고 힘도 많이 빠진다"면서 "겨우 버티고 있는 극단이 적지 않은데, 폐관하는 소극장이 잇따르거나 연극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어날까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대명공연거리에 있는 소극장은 15곳. 이들 중 상당수는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대명공연거리에서 공연된 작품은 예년에 비해 크게 줄었다. 콘텐츠 및 기획·홍보력 부족 등의 영향으로 관객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거리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심지어 평일의 경우 관객이 없어 취소되는 공연도 생길 정도다. 게다가 지자체의 지원도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침체 분위기가 더해졌다. 지난해 수익이 반토막 난 극단도 있고, 아르바이트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소극장 운영비를 충당하며 겨우 버티는 곳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명공연거리가 소극장이 밀집해 한강 이남에서 최고의 연극 공연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보기 좋은 허울에 그칠 뿐이라는 자조섞인 쓴소리가 연극인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소극장 집적화 사업을 통해 대명공연거리에 2년간 소극장 수를 8개 늘렸는데, 이는 실적 위주 행정으로 되려 소극장 시장을 교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역의 한 연극인은 "연극계가 지원금에 안주하다 보니 자생력과 경쟁력이 떨어졌고, 작품 수준이 하향 평준화됐다. 당연히 관객들이 외면하게 되고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인한 제작비 감소와 공연 퀄리티 저하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면서 "연극인들의 반성과 자체적 노력이 선행돼야 하고, 지자체와 대구문화재단의 지원 제도도 연극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구소극장협회는 대명공연거리와 지역 소극장이 위기에서 벗어날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소극장 실태 파악에 나선 동시에, 조만간 대구 연극계 발전 방향에 대한 지자체 지원과 제도 건의, 연극인들의 단합 등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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