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클로젯' 하정우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스터리 장르 도전"

  • 윤용섭
  • |
  • 입력 2020-02-07   |  발행일 2020-02-07 제43면   |  수정 2020-02-07
"벽장속 사라진 딸 찾아 산자 죽은자 경계 여정"

2020020401000128700004591

벽장 문이 열리고 딸 이나(허울)가 사라졌다. 영화 '클로젯'은 벽장이라는 서양 공포물의 단골 소재에 한국적인 이야기와 정서를 더한 흥미로운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평소 참신한 소재의 미스터리 장르와 공포물에 갈증을 느꼈던 하정우가 사라진 딸의 흔적을 찾아 나선 아버지 상원 역으로 생애 첫 미스터리 장르에 도전했다. 그는 "한국 영화가 그동안 소개하지 않았던 이야기와 색깔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흔쾌히 제작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연출을 맡은 김광빈 감독과는 그의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를 통해 호흡을 맞춘 인연이 있다. 학교 동문이기도 한 두 사람은 당시 주연 배우와 동시 녹음 스태프로 함께 했다. 감독과의 인연을 감안하더라도 상업영화의 최정점에 있는 그가 작은 규모의 영화에 출연한 건 다소 의외다. 하정우는 "'클로젯' 같은 미스터리·스릴러는 비교적 저예산이라 현실적으로 개발되기 어렵다"며 "책임감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의 다양성을 좀 더 추구하고 싶은 마음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2020020401000128700004592

▶'싱글라이더' 'PMC: 더 벙커' '백두산'에 이어 제작자로 참여한 네 번째 작품이다. 어떤 점에 끌렸나.

"사실 '클로젯'은 내가 찍지 않았으면 못 봤을 영화다. 그만큼 공포물을 무서워한다. 그럼에도 제작까지 참여한 건 소재가 신선했고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장르여서 도전해보고 싶었다. 대작 위주의 시즌 영화만 찍다보니 이렇게 콤팩트하고 날렵한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7년 전 당시 신예 김병우 감독과 손잡고 이색 스릴러 '더 테러 라이브'를 찍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배우로만 참여할 때와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도 같은데.

"아무래도 책임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대신 배우로만 참여한 작품들보다는 그간 접하기 힘들었던 신선한 소재와 결이 다른 작품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선택의 폭이 다양해진 만큼 나에게도 좋은 기회다. 그외 특별한 건 없다. 제작자라고 현장에서 내가 돈 관리나 섭외를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온전히 배우로서의 롤에만 집중한다."

▶김광빈 감독과는 대학(중앙대) 선후배지간이다. 첫 장편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15년 만에 배우와 감독으로 만났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나에게 커다란 의미로 남아 있는 작품이다. 당시 작업에 참여한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 학생 신분이었고 내가 배우로, 김 감독은 동시 녹음을 담당했다. 김 감독과 나는 집이 일산이라 촬영하는 13개월 동안 같이 퇴근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한번은 '언젠가 나하고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하길래, '당연하지, 너랑 같이 하면 좋겠다'고 답한 적이 있다. 이후 그는 군대를 갔고, 나는 사회에 나와서 배우로 활동하게 됐는데 이제야 만나게 됐다. 군에 있을 때 내가 스타가 되는 걸 보고, 나와의 약속은 이제 자기만의 꿈이 되겠구나 싶었다고 하더라."(웃음)


콤팩트하고 날렵한 영화에 호기심
대학 선후배지간 감독·배우로 만남
악령役 아역, 장롱안 감정신 폭발력
어린 아이들의 정제되지 않은 표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울림

어떻게 하면 관객들 더 놀랄지 고민
배우 주지훈 소개로 김남길과 호흡
부담 크지만 그로인한 긴장감 좋아
나이 들어도 빛나는 배우 멋져 보여



▶영화에서 상원이 겪는 공포의 근원은 아빠와 딸의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다.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감독님과 많이 얘기를 나눴던 부분이다. 상원은 기러기 아빠같은 사람이다. 국내외 출장이 잦다보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다. 때문에 육아는 전적으로 아내가 책임진다. 그러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고 상원이 이나를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런 이야기들이 대부분 생략됐다. 이후 펼쳐지는 공포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해 가족 관계를 좀 더 디테일하게 다뤘으면 자연스럽게 드라마가 쌓이고 관객들의 공감도 쉬웠을 테지만 러닝타임과 포커스를 어디에 맞출 것인가를 따져보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

▶어떤 재난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유머를 잃지 않았는데, 이번엔 웃음기와 유머를 모두 걷어냈다.

"가뜩이나 딸한테 말을 할 줄도 모르는 초보 아빠인데 거기서까지 여유를 부린다면 그건 소시오패스라고밖에 볼 수 없다. 게다가 이번엔 내가 아닌 딸이 마주한 재난이다. 그러면 당사자가 여유를 갖는 것보다 더 (여유를)가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마주할 상황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감당하고 버텨내느냐 인데 그것을 두려워하고 떨면서 있는 것과 숨을 고르면서 침착하게 있는 것과는 상황 인식과 접근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그런 측면에서 유머만 없었을 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생각하며 연기에 임했다."

▶실제 성격도 이와 비슷한가.

"지금 닥친 상황보단 열흘 뒤, 한 달 뒤, 1년 뒤를 생각하며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다고 가정해보자.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발광하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있는 것과 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차분하게 기다리는 것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일까. 후자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심호흡과 스트레칭을 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 역시 후자에 속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위기 상황에서 차분하게 있기란 쉽지 않다. 팁이라고 할 것까진 없고 평소 많이 걷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긍정적인 생각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딸 이나역의 허율과 악령역의 김시아의 연기가 범상치 않던데, 그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연기를)너무 잘한다. 피카소가 죽기 전에 다시 아이처럼 (그림을)그리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고 한 것처럼 어린아이들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표현은 따라갈 수가 없더라. 율이가 칼을 들고 다가오는 표정은 정말 섬뜩했고, 시아의 장롱 안 감정신은 그 한 장면만으로 폭발력 있고 울림이 컸다. 하지만 현장에선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공황장애 발작 증세까지 15종 리액션을 선보였다는데.

"쑥스럽다. 15종 리액션이 어딨겠나. 다 똑같은 얼굴에서 나오는 표정인데. 다만 공포물 특유의 놀라는 리액션 연기가 많다 보니 그걸 다양하게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악동같은 마음이 생겨서 관객들이 어떻게 하면 더 놀랄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나름 생각과 고민을 많이 했다."

▶퇴마사 경훈 역의 김남길과는 첫 호흡이다. 평소 친분이 두텁다고 들었다.

"'신과함께'에 같이 출연한 주지훈 배우 소개로 알게 됐는데 이 영화를 계기로 더 친해졌다. 그의 장점은 굉장히 유연하다는 점이다. 현장에선 아무 생각 안 하면서 슬렁슬렁 움직이는 것 같은데 모니터를 보면 뭔가를 하고 있더라.(웃음) 벌처럼 쏘는 맛이 있는 친구다."

▶연기력과 흥행을 책임지고 있는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라는 점에서 전보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상당할 듯하다.

"데뷔한 지 15년 차가 됐는데, 책임감과 부담감은 늘 벗어날 수가 없다. 그건 어떤 배우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냥 감당하면서 버텨나가는 거다. 솔직히 그로 인한 긴장감이 좋다. 신선한 자극이 되고 좋은 에너지를 선사한다. 덕분에 늘 앞으로의 5년을 열정과 의욕으로 계획하게 된다. 이번에도 영화는 두 편('보스턴 1947' '피랍') 드라마는 한 편('수리남')이 계획돼 있다. 그 작품들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접근할지, 또 배우가 아닌 감독과 제작자로서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야 할지 매 순간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배우가 1번이다. 배우의 삶을 살아가고 배우의 시각으로 시나리오를 읽고 해석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한다."

▶배우가 좋은 것 중 하나는 정년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15년 차 배우로서 당신은 지금 어느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 인생 전체로 본다면 반은 온 것 같고, 배우 인생은 25% 정도 지났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김용건)가 50년 넘게 연기를 해오셨으니 그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가끔 노년이 된 내 모습을 그려본다.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는 늘 내가 닮고 싶은 배우인데, 얼마전 그들이 출연한 영화 '아이리시맨'을 보면서 짠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그들은 여전히 빛이 났다."

▶새해 목표가 있다면.

"목표보다는 반성에 가까운데, 가끔 후배들한테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냐, 하다가 다음날 '아 쓸데없는 소릴 했구나' 후회 할 때가 많았다. 내 인생만 무겁게 보고 상대방 인생을 너무 가볍게 본 건 아닌가라는 반성을 하게 됐다. 농담이라도 당사자에겐 깊은 상처가 될 수 있으니 말에 대한 신중함과 책임감이 필요하다. 그래서 올해는 오버하지 말고, 오지랖도 부리지 않고, 그냥 겸손하게 살기로 했다."(웃음)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