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조조 래빗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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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07   |  발행일 2020-02-07 제42면   |  수정 2020-02-07
나치즘에 빠진 소년, 유대인 소녀와 아름다운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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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절 겁쟁이 토끼라고 불러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단 둘이 살고 있는 10세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상심이 크다. 원하던 독일 소년단에 입단했지만, 훈련 도중 토끼를 죽이지 못해 교관으로부터 '겁쟁이 토끼'라고 놀림을 받고 있어서다. 그런 자신을 이해해주는 건 상상 속 친구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뿐이다. 어느 날, 엄마가 집에 몰래 숨겨 준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맥켄지)를 발견한 조조는 큰 혼란에 빠진다. 당장 게슈타포에 신고해야 하지만 그러면 그녀를 숨겨준 엄마 역시 큰 곤경에 처할 수 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조조와 엘사는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블랙코미디 장르를 내건 '조조 래빗'은 10세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참혹한 전쟁 상황 속 세계를 유쾌한 정서로 풀어낸다. 유머와 풍자, 드라마와 판타지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소년의 순수함을 효과적으로 그려간다. 엄혹한 전쟁 상황 속에서 아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와 세상의 눈을 피해 숨어 있어야 하는 유대인 소녀의 모습은 얼핏 '인생은 아름다워'와 '안네의 일기'가 연상된다.


끔찍스러운 전쟁 상황 속 유쾌·순수하게 그려나가
상상속 히틀러 모습, 코믹하고 우스꽝스럽게 풍자


영화는 나치즘에 빠져 있는 소년 조조가 어른들과 국가 시스템이 주입시킨 왜곡된 사상과 편견을 허물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지금껏 유대인을 머리에 뿔이 난 괴물로 알고 있었기에 유대인은 악, 나치는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녔던 조조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엘사를 마주하고, 자신의 영웅이던 히틀러의 죽음을 보게 되면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게 된다.

나치즘과 홀로코스트를 다룬 무거운 주제이지만 영화의 화법과 감정의 결은 밝고 다층적이다. 이야기의 화자를 천진난만한 소년의 성장담으로 풀어간 게 주효했다. 끔찍한 전쟁의 공포를 전시하는 대신, 시종 위트와 발랄함이 이 영화의 공기를 지배하지만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판타지와 나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제법 균형감 있게 그려진 덕분이다.

특히 영화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조조의 유일한 친구로 등장하는 히틀러의 모습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자비한 성향의 실제 히틀러가 아닌, 조조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히틀러는 코믹하고 우스꽝스러운 태도로 풍자를 대신한다. 그는 아버지가 부재한 조조의 동경에서 비롯한 것으로 묘사된다. '토르: 라그나로크'(2017)를 연출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연출했다.

"끔찍한 제2차 세계대전의 이야기를 새롭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영화 속 나치 캐릭터들을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유쾌한 모습으로 그려내 유머 속에 악의적인 이념이 얼마나 쉽게 퍼지는지에 대한 섬뜩한 경고를 전한다. 배우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는 그는 극 중 히틀러를 연기했다.

특히 주목할 건 천진한 모습으로 극을 유연하게 리드해 나간 조조 역의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다. 올해 12세로, 1천대 1의 경쟁을 뚫고 발탁된 그는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테런 에저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과 함께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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