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페인 앤 글로리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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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07   |  발행일 2020-02-07 제42면   |  수정 2020-02-07
노년이 된 거장 감독, 아픈 과거와 마주하며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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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노년의 영화감독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 몸과 마음이 모두 쇠약해져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지내던 그가 과거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주연배우 알베르토(에시어 엑센디아)를 오랜만에 찾아간다. 영상자료원이 리마스터링한 그의 32년 전 작품 '맛'의 재상영과 함께 알베르토와의 GV(관객과의 대화)를 요청했기 때문. 살바도르와 알베트로는 당시 캐릭터 접근에 대한 견해차로 크게 다툰 후 연락을 끊고 지내왔다. 화해를 시도하기 위해 그를 찾아간 살바도르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만나고 창작의 영감을 얻는다.

"내 어린시절의 영화란 암모니아 냄새와 자스민 향기, 한여름의 산들바람이었다"라는 시적인 대사로 포문을 연 '페인 앤 글로리'는 이 영화를 연출한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고통과 영광'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빌려 사랑과 이별, 슬픔과 후회의 감정을 특유의 감각적 이미지에 녹여내는 동시에, 게이라는 성정체성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 등 자신의 모든 삶과 경험을 반추한다. 알모도바르의 뜨겁고 진솔한 고백과 같다.


사랑·이별·슬픔·후회 감정, 감각적 이미지로 녹여
화려한 미장센과 연출력으로 담아낸 자전적 이야기


영화는 그가 처음으로 욕망을 느꼈던 유년 시절 기억으로 돌아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안타까움에 집착하는 모습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강렬했던 첫사랑이었던 만큼 이별의 상처는 더없이 아프고 쓰라리다.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과거를 당당히 마주하게 된 그는 플래시백을 통해 그 깨달음의 여정을 전달한다. 이별의 아픔과 상처는 고통으로 남았지만 영광도 함께 수반되고 있었음을, 더불어 어머니의 고통과 영광 역시 크고 깊었음을 말이다.

'페인 앤 글로리'는 그 점에서 고통보다는 영광에 주목한다. "고통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주고 영광을 맛보게 한 건 영화였다"고 말한 알모도바르는 "주인공의 삶의 모습이 바로 영광"이라며 "영광은 예술품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아파트에 사는 주인공(나)의 삶을 의미한다. 알베르토가 영화를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만드는 것 또한 영광일 것"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미장센이 돋보이는 독특한 색감과 연출력, 그리고 거장 감독의 속살을 엿보는 듯한 센세이셔널한 이야기는 시종 매혹적이고 흥미롭다.

인간의 본능적인 측면을 파격적으로 담아냈던 그의 전작들과 달리 극의 흐름은 전반적으로 잔잔한 편이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페넬로페 크루즈의 조합은 여기에 든든한 힘을 보탠다.

알모도바르 감독과 아홉 번째 호흡을 맞춘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살바도르 역을 통해 과거 감독 스스로가 지녔던 욕망과 창작 욕구를 되돌아보는 과정을 인상 깊게 담아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이 작품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페넬로페 크루즈 역시 살바도르의 어머니인 하신타를 연기해 거장의 특별한 뮤즈임을 증명했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척도는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는 극 중 대사처럼, 영화는 스스로의 욕망과 당당히 마주하라는 응원과 용기의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 아픔과 영광을 누리며 오랜 세월을 지나온 감독의 진심 어린 메시지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관객들에게 깊은 위로와 울림으로 전달될 듯하다. (장르:드라마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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