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21세기 밀레니얼 세대 풍속도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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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07   |  발행일 2020-02-07 제39면   |  수정 2020-02-07
가족·친구 대신하는 동반자 스마트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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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담론1
취업난과 결혼의 가치관이 크게 변화하는 2030 세대에게 혼자 밥먹고 영화보고 노는 '혼밥·혼영·혼놀'이 새로운 풍속도가 되고 있다.

설 연휴가 지나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설 명절은 정월 대보름(음력 1월15일)까지 이어지는 것이 세시풍속이라고 한다. 이 기간 고향에서는 동네마다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제기차기, 윷놀이 등 민속놀이와 지신(地神)밟기 풍악놀이로 친목과 화합을 다지고 보름을 맞이하면 일가족이 모여 오곡밥에 부럼을 먹고 액땜을 한다. 그리고 휘영청 밝아오는 보름달을 맞이하며 새해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것으로 설 명절의 대미(大尾)를 장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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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3가구 중 1가구 '나홀로 가구'
이혼·재혼·결혼·출산 가치관 큰 변화
명절 연휴 귀성길 대신 홀로 해외여행
스마트폰 통·번역 앱, 쉽게 언어 해결
새로운 여행 트렌드 모바일문·솔로문
혼자 먹고 즐기는 '혼밥·혼영·혼놀'
강박에서 벗어나 현재만끽 '조모 현상'

이젠 고향 어르신들의 추억에만 남아 있는 옛날 이야기가 됐다. 대도시 인근 중소도시는 물론 한적한 시골에까지 아파트단지가 밀집해 있는 지금은 창밖 너머 떠오르는 달맞이로 행운을 기원하는 세시풍속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설 연휴에는 으레 귀성·귀가객들로 철도와 고속도로가 미어터지지만, 단 하루나 이틀 정도 고향에 머무르며 차례를 지내고 단출한 가족끼리 여행길에 나서는 것도 설 명절의 새로운 풍속도가 되고 있다.

하지만 독신 가구는 이마저 싫증나 설 연휴 기간이면 아예 가문의 후손 된 도리를 잊고 귀성길도 외면한 채 홀로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굳이 고향을 찾아 가족들과 여럿이 어울리다 보면 어른들의 핀잔이나 듣고 형제 간에도 서로 의견이 엇갈려 마음고생만 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다. 그래서 혼자 마음 내키는 대로 훌쩍 떠나 나 홀로 여행을 즐기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여행 준비도 간단하다. 주로 동남아나 가까운 일본, 중국 등지로 떠날 땐 커뮤니티에서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해 통·번역 앱을 깔면 전혀 불편함이 없다. 가족 또는 친구 대신 모바일폰이 동반자다. 이 같은 여행 트렌드를 가리켜 허니문을 빗댄 '모바일문(Mobile Moon)'이라고 한다. 나 홀로 여행을 즐긴다는 뜻에서 '솔로문(Solo Moon)'이라는 신조어도 생겨 났다.

독신을 고집하는 이른바 '혼족'은 일상생활에서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편리미엄(편리함+프리미엄) 앱을 이용하면 세탁 배달도 하루에 끝내고 간편식은 주문 30분 만에 배달되기 때문이다. 최근엔 '일코노미(1인가구+이코노미)'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 편리하고 경제적인 삶이라는 뜻이다. 혼밥(혼자 밥먹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놀(혼자 놀기) 등도 생활 트렌드로 뿌리 내리고 있다. 취업난 시대 혼인할 여력이 없어 아예 홀로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겐 안성맞춤이다.

동네 사랑방처럼 혼밥·혼술을 파는 음식점과 술집도 성업 중이다. 혼밥족을 위한 전문식당에선 각종 메뉴도 1인 위주다. 1인 샤브샤브며 보쌈, 족발, 2조각 피자 등 소포장 배달 음식도 인기가 높다. 이런 곳에서 낯선 남녀끼리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루어지고 데이트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유통업계에서도 외식·간편식 등 1인 고객을 겨냥한 상품과 서비스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결혼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2030밀레니얼 세대의 답변이 58%에 달했다. 결혼이나 출산의 가치관이 크게 변하고 있다. 독신을 즐기며 살아가는 밀레니얼 세대가 급격히 늘어나는 이유다. 다인(多人)가족이 한 지붕 밑에서 서로 부대끼며 오순도순 살아가던 가족애(家族愛)가 사라지고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이 작금의 사회적 병리 현상이다.

한때 자녀를 평균 4∼5명, 많게는 7∼8명씩 두고 3대, 4대가 함께 살아가던 대가족이 주류를 이루었다. 자녀 결혼식 후례(後禮)로 폐백을 올릴 때 시부모는 으레 새 며느리의 치마폭에 대추와 밤을 한 되박씩 쏟아주고 "자식 많이 낳아 효도해라"는 덕담을 잊지 않았다. 삶이 팍팍하고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풍습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해 버렸다. 인구 절벽시대가 된 지금은 아들 하나, 딸 하나 키우는 것만도 손주·손녀를 기다리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혼·재혼율이 늘어나면서 가족 구성원마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성(姓)도 다르고 배도 다른 형제 간에 갈등도 심각한 가정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공동체가 사회의 주류였지만 지금은 마치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비비새처럼 홀로 살아가는 혼족이 사회의 주류로 바뀌고 있다. 엄청난 생활 문화의 변혁이다. 국민 10명 중 1명이 가족도 없이 혼족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노령 인구도 크게 늘어나 2020년대 중반엔 국내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법정 노인으로 초고령 사회가 도래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인들은 은퇴 후 자녀들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노인들 역시 혼족이 대부분이지만 젊은 시절 허리가 휘도록 자식들 키우고 뒷바라지하느라고 노후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저축은커녕 주거비, 식비 등의 부담도 벅찬 형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60대 중후반 은퇴 이후엔 결국 노령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비로 노후를 살아가야 한다는 슬픈 현실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자녀들도 요즘처럼 살기 힘든 시기에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밀려나거나 아예 취업도 못할 경우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도 어려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대구의 경우 3가구 중 1가구가 혼족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1인 가구가 급증한 이유는 가족 분화(分化)와 이혼, 사별, 비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홀로 사는 것도 나름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자유로운 생활에 따른 의사 결정권을 주위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행사할 수 있는 데다 외로움을 적극 포용하고 즐길 수 있어 스트레스를 별반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명 '조모(JOMO-Joy Of Missing Out)' 현상이다. 소셜미디어 강박에서 벗어나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현재를 만끽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아싸(아웃사이더)의 자기만족이다. 그 순간을 최대한 홀로 즐기겠다는 심산이다. 이러한 혼족은 주로 2030밀레니얼 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독을 적극 포용해 내 편으로 만들어 가는 21세기판 '나 홀로 시대'다.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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