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북클럽' (빌 홀더먼·2018·미국)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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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4   |  발행일 2020-02-14 제42면   |  수정 2020-02-14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마음을 나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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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로운 일을 벌였다. 지인 몇 분과 북클럽을 시작한 것. 한 달에 한 번, 같은 책을 읽고 만나서 소감을 나누기로 했다. 첫 모임을 앞두고 영화 '북클럽'을 봤다. 다이언 키튼을 비롯해서 제인 폰다, 캔디스 버겐 등 왕년의 명배우들 모습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영화는 초로의 여인네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종횡무진 애쓰는 코미디다. 겁은 많지만 호기심 가득한 소녀 감성 다이앤과 독신을 고집하는 호텔 CEO 비비안, 겉으로는 엄격하지만 알고 보면 허당인 연방판사 섀론, 부부관계의 열정을 회복시키고 싶은 요리사 캐롤까지. 라이프 스타일은 다르지만 20대부터 한결같은 우정을 쌓아온 북클럽 4인방. 우아하고 품격있는 그녀들이 한 권의 특별한 책을 만나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유쾌하고 따뜻하다. 사랑 이야기 위주라 아쉬웠지만, 주름진 얼굴로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는 노배우들이 보기 좋았다. 극중 나이는 67세로 나오는데, 실제 배우들의 평균 나이는 70대 중반. 젊은 날의 미모 이상으로 매력적인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또 하나 마음에 닿는 것은 40년을 이어온, 네 여인의 한결같은 우정이다. 게다가 같은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응원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배우 김새벽의 차분한 목소리로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마음 한 구석이 시렸다. '북클럽'의 네 친구처럼 서로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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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시인·심리상담사

한가로운 날, 산책 겸 커피 한 잔을 위해 카페를 찾았다. 평일이었는데, 자리가 없었다. 간신히 구석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는데, 대화 소리가 너무 커서 도무지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들고 갔던 책은 펼치지도 못하고, 커피도 반만 마신 채 일어섰다. 매장의 음악도, 이어폰도 소용없었다. '드넓은 공간을 꽉 채운 이 사람들은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까'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을 나누는 대화들은 아니었다. 수많은 만남 속에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단 한 순간도 그런 시간이 없다면 그야말로 불행한 일이리라.

인간의 욕구 5단계설로 유명한 매슬로는 말년에 자신의 주장을 바꿨다. 최고 수준의 욕구로 꼽았던 자아실현이 실은 가장 우선적인 욕구라고 했다. 생리적인 욕구, 안전의 욕구 이상으로 자아실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2020년 새해, 뭔가 새로운 일 하나를 시작해보기 바란다. 북클럽이든, 영화클럽이든, 인문학 강좌를 듣든, 혹은 봉사 활동을 하든. 뭔가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음을 나누는 만남을 할 것. 장담컨대 분명 행복한 한 해가 될 것이다.

북클럽을 시작해보니 참 좋았다. 지인의 제의에 시큰둥했던 내가 어느새 다음 책을 위해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온라인이 아닌 진짜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맛보았다. 몇 권의 책을 골라 가방에 담으니 행복했다.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며, 그렇게 나는, 마음을 나누는 만남을 하게 될 것이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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