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여전한 '마녀 사냥'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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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9   |  발행일 2020-02-19 제30면   |  수정 2020-02-19
첨단과학문명 시대임에도
중세시대 마녀사냥은 여전
성소수자 어려운 용기마저
꺾어버리는 현실 안타까워
마음을 열고 세상 바라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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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에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준비한 우주선을 타고 민간인들이 6일간 달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과학문명이 이렇게 발달한 요즘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달의 신 항아에게 소원성취를 빌던 마음에서 여전히 벗어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전염병 코로나19가 지구촌에 창궐하고 있는 가운데, 중세의 암흑시대에 일어났던 마녀 사냥을 떠올리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마녀나 마귀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중세시대 유럽에서 50여만명이 마녀 사냥으로 희생을 당했다는데, 존재하지 않는 마녀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출몰하고 표적이 되었을까.

어떤 마을에 보통 사람과 다른 모습과 언행을 보이는, 불쾌감과 불편함을 주는 여자가 있다고 하자. 어느 날 사람들이 그 여자를 두고 이런 말을 한다. "저 여자는 마녀다. 갑자기 마른하늘에 소나기가 오고 마을 이장이 요통을 앓는 것은 다 저 사람 탓이야."

이런 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여자는 체포돼 심문을 받는다. 놀란 여자는 당연히 마녀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온갖 고문을 당하고 초주검 상태가 되면 덮어 씌워진 혐의를 결국 시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써 여자의 운명은 끝이다. 여자는 마녀가 되고 산 채로 화형을 당한다. 고문 당하는 동안에 다른 마녀가 있느냐는 질문을 당하면, 잠시라도 고문을 면하기 위해 아무 이름이나 댄다. 그러면 그도 마찬가지로 같은 운명이 되고 만다. 인간은 이렇게 비이성적이고 어리석을 수 있는 것이다.

군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은 육군 변희수 하사가 얼마 전(1월22일) 기자회견을 갖고 눈물을 흘리며 "성별 정체성을 떠나 훌륭한 군인이 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육군이 이날 변 하사를 전역시키기로 결정하자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며 군복무 의지를 밝혔다.

그는 "남몰래 성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한계에 다다랐고, 군 복무를 계속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성전환 수술 배경을 설명하면서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제가 그 훌륭한 선례로 남고 싶다"라며 군 복무를 갈망했다.

이달 초에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하고 숙명여대 법학대학에 최종 합격했던 A씨(22)가 학내 반발이 불거지자 두려움을 못 이겨 결국 등록을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내 삶은 다른 사람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시되고 반대를 당한다"며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더 알아가고자 하는 호기심이 되어야지, 무자비한 혐오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A씨는 처음에는 트랜스젠더인 사실을 밝힐 생각이 없었지만, 성전환 수술을 한 후 군 복무를 희망하며 기자회견을 한 변 하사의 용기를 보고 결심했다고 한다. 큰 용기를 내 받아들여 줄 것을 갈망한 이들을 '호기심 아닌 혐오' 감정으로 대응해 그들의 용기와 희망을 꺾어버리는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성소수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을 통한 무자비한 '마녀사냥'으로 인해 초래되는 안타까운 희생도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아카데미상 역사를 새로 쓴 봉준호 영화감독이 가슴에 새긴 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자존감 높고 열린 시각으로 인간 세상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 자신의 마음속 '마녀'가 준동하지 못하게 언제나 깨어 있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더불어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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