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기생충'의 경제학과 정치학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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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0   |  발행일 2020-02-20 제30면   |  수정 2020-02-20
불평등 메시지 세계적 반향
브랜드 가치 제고 등에 효과
정치권은 숟가락 얹지말고
기생충이 던진 물음에 대답
불평등 완화정책을 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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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트로피를 4개나 거머쥐면서 한국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기생충'. 영화를 보는 게 호사(豪奢)가 된 신드롬의 흡인력은 뭘까. 무엇보다 빈부격차란 무거운 주제를 블랙코미디로 녹여낸 내공이 일품이다. 신랄한 풍자와 해학, 현대사회의 계급투쟁을 은유하는 대저택과 반지하의 리얼리티, 결말을 예단할 수 없는 중층적 스토리 역시 작품성과 흥행을 함께 잡은 자력(磁力)이 아닐까 싶다. '기생충'이 던진 불평등 메시지에 세계인들이 반향(反響)했다는 것도 짜릿하고 고무적이다.

해묵은 난제 불평등은 이미 세계의 공통 화두가 된 지 오래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미국 상위 1%의 소득이 1980년 평균소득의 9배였으나 2010년엔 20배로 늘어났다고 우려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상위 1%의 기득권 세력과 기업들이 독과점 이익을 챙기는 현상을 짝퉁자본주의로 비하했다. 2018년 갤럽 여론조사에서 왜 미국 청년 51%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선호한다'고 응답했을까. 불평등 심화가 이데올로기까지 흔들고 있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한국은 어떤가. 서울 종합소득 상위 10%가 하위 10%의 194배이며, 지난 30년간 근로자 임금이 5배 올랐을 때 강남 부동산은 20배 상승했다. 이러고서야 누구도 공정이나 평등을 말할 순 없다. 영화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의 불평등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박 사장네는 '짜파구리'에도 한우 채끝살을 얹어 먹지만, 기택 일가가 사는 반지하에선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과 메타포가 명징하게 노정되는 지점이다. 불평등 담론을 다시 소환한 것 외에도 '기생충'이 얻어낸 무형의 경제적 이득이 많다. 국가 위상과 브랜드 가치를 높였고 영화 속 콘텐츠의 간접 홍보효과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계량화할 순 없지만 조(兆) 단위는 너끈히 넘지 않을까.

'기생충'의 정치적 파장도 흥미롭다. 아카데미 4관왕 쾌거에 더불어민주당은 물개 박수를 치며 격하게 반응했다. 자유한국당은 축하는 했으되 다소 절제된 스탠스를 보였다. 정치공학적으론 '기생충'이 민주당에 호재다. 빈부격차와 계급사회를 다룬 영화의 주제가 일단 진보정권의 입맛에 부합한다. 한국당은 다르다. 봉 감독이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흑역사부터 켕기는 구석이다. 국민의 시선이 코로나19에서 '기생충'으로 이동하는 것도 달갑잖을 터다.

그럼에도 한국당 예비후보들은 봉준호 기념관을 짓는다는 둥 '기생충' 마케팅에 분주하다. 한데 한국당의 총선 공약은 불평등 완화와는 괴리가 크다. 법인세를 5%포인트 내리고 종부세를 완화하며 대출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보유세를 내리고 대출규제를 걷어내면 그러잖아도 꿈틀거리는 부동산을 잡기 어렵다. 최근의 아파트값 급등 또한 2014년 박근혜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 조치가 단초를 제공하지 않았나. 자산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겠단 의도가 아니라면 종부세 완화 등의 공약은 재고해야 한다.

영화 '기생충'은 솔루션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양극화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당은 '기생충' 신드롬에 숟가락을 얹는 데만 잔머리를 굴리지 말고 '기생충'이 던진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기생충' 마케팅에 올라탈 자격이 있다. 어설픈 시장논리로 양극화를 부추겨선 곤란하다. 정책정당의 면모에 맞는 불평등 완화책을 내놓아야 한다. '기생충'엔 승자 독식, 부익부 빈익빈의 정글자본주의에 대한 경고가 깔려 있다. 해법은 오롯이 정치권의 몫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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