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오의 유럽에서 보내는 편지] 길을 떠나야 돌아온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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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1   |  발행일 2020-02-21 제39면   |  수정 2020-02-21
도시마다 품은 고전의 파워

오르세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와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오르세 미술관 내부.
유럽-3
프랑스 파리의 상징이라고 하는 에펠탑(Eiffel Tower)을 제대로 보려면 트로카데로 정원에 가면 된다.
유럽-2
연말과 연시를 지나며 세일옷을 입은 네덜란드 헤이그 한 상점의 마네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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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삶

한국을 떠난 지 대략 한 달 열흘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4개국을 길게는 2주, 짧게는 5일간 머무르며 이동했다. 현재 나의 삶을 증명할 모든 것은 작은 여행 가방 두 개와 배낭 하나에 꼭꼭 눌러 담겨있다. 가축들을 데리고 물과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하며 살아가는 '유목민의 삶'을 생각해 본다.

독일에 도착한 첫 주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간이라 도시 곳곳이 반짝이는 불빛과 사람들의 물결로 흔들렸다. 절정의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그렇게 다음날이 왔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공연의 마지막 같은 마무리를 기대한 것과 달리, 크리스마스는 한순간 절벽 같은 내리막길로 마무리되었다. 반짝이는 생명력으로 충만하던 도시는 어느새 할인판매 광고지로 옷을 갈아입고 재고를 처분하는데 올인했다. 그 와중에 노숙인들도 곳곳에서 주워 모은 플라스틱 나무와 장식들로 길거리 텐트 앞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몸과 마음의 추위를 녹여보려 애썼다.

이후 나의 주된 방문지인 미술관과 박물관에선 고전과 현대의 예술작품들을 마주하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뒤셀도르프의 'Kunstpalast'와 'K20'의 컬렉션은 아주 인상적이었고, 뮌스터에 있는 LWL-Museum에서 만났던 'JMW Turner' 기획전은 예상 밖의 선물이었다. 이후 네덜란드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를 주로 만났고, 영국에서는 발전소를 리모델링 해 세계적 화제가 된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 인상적이었다. 파리 루브르·오르세·로뎅 박물관에서 다시 고전의 파워를 실감한다. 이때 한국 작가 주축 예술가 단체인 '소나무 작가 협회'의 아틀리에를 방문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獨서 경험한 컬렉션·기획전
네덜란드에서 만난 반 고흐
미술관 변신한 영국 발전소
프랑스 루브르 등 3대 박물관
4개국에서 마주한 문화예술

현지 韓작가와 소중한 인연
파리 소나무작가協 작업실
국방성 탱크정비 공장 개조
철교 아래 아틀리에 인상적

새로운 사람과 예술의 만남
시간과 이어진 인연의 깊이

◆아름다운 기억의 만남

독일에 있을 때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환승할 버스를 놓쳐 힘겹게 걸어서 도착한 Insel-Hombroich 미술관 입구에서 만난 연세 많은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궁금한 게 있어 잠시 여쭤보니 반갑게 받아 주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준다. 그 웃음과 마음에 고마워 한국에서 가지고 간 내가 만든 작은 달력을 선물로 드렸다. 좋은 인연을 만나면 선물하기 위해 몇 개 챙겨 간 것이었다. 너무 기뻐하며 표지에 쓰인 글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인생은 행복이 된다'고 말해주었다. 설명을 해 주면서 내 시선이 다시 행복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네덜란드에서는 초반 아른험과 암스테르담에서의 개인 일정 이후에 헤이그에서 작은 발표 일정이 있어 지인이 안내해 준 레지던시스튜디오에서 일주일간 머무르게 되었다.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저녁 로테르담이나 주변 갤러리 오프닝에 동행하고 현지 작가, 갤러리스트 등과 교류했다.

한 번은 로테르담에 있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법원 혹은 법무부 같은 건물에서 진행하는 전시 오프닝에도 가게 되었다. 건물에 들어갈 때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했다. 약간은 불안한 유럽의 현지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였다. 특별한 입장과 더불어 멋진 작품과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부부 작가인 에릭과 사라, 두 사람은 그다음 날 헤이그의 다른 전시 오프닝에서 다시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넓은 활동반경을 가지고 있는 지인의 배려였다. 3년 전 경주에서 처음 만남을 가졌고, 그다음 해에 보스니아 윈터페스티벌에서 만난 게 두 번째였으니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인 셈이다. 인연의 깊이란 단순히 시간과 정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

토요일 저녁 발표 시간을 정하고 레지던시에 머무는 작가들과 외부의 작가들, 지인들이 모여 저녁을 함께하는 것으로 발표가 시작되었다. 어쩌면 학회나 세미나 같은 딱딱한 발표만 생각했던 나는 약간 머쓱하기도 고맙기도 했다. 그날 몸이 조금 좋지 않아 처져 있었는데 약간의 낮잠과 저녁 식사로 힘을 얻은 나는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나가 작업에 대한 소개를 하고 스튜디오에 함께 내려가 작게나마 설치한 작업 설명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모두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고 그들은 이제 나의 새로운 인연으로 남을 것이다.

◆합리적사고 & 창의적 해결책

파리에 머무는 동안은 인연의 가느다란 끈이 나를 붙잡아 주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한국을 떠나기 두 달 전쯤인가 프랑스에서 온 작가를 하루 가이드 할 일이 있었는데, 연말 즈음에 유럽에 갈 예정이라 하니 파리에 오게 되면 꼭 연락을 하라고 했었다.

바쁜 일정을 쪼개어 잠시 파리의 멋진 곳들을 소개해 주겠노라 했다. 최종 목적지는 지인의 작업실이 있는 곳. 이곳에는 특이한 역사가 있었다. 소나무 작가 협회(Association des Artistes·SONAMOU) 작업실이 있는 레 자르슈(Les Arches)의 지인 작업실은 특이하게도 이 시레 물리노 철교 아래의 아치에 만들어진 아틀리에였다. 소나무 작가 협회는 1991년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25명의 한국인 작가들에 의해 창립된 소나무 협회가 전신으로, 최초의 공간은 국방성 소유의 면적 5천㎡, 높이 12m의 거대한 철골 구조물을 개조한 곳이었다. 이는 옛 국방성 탱크정비 공장이었다. 그 연유로 초기의 작가들이 만든 공동작업실은 '아르스날(Artsenal)'이라 불렀다. 이는 예술(Art)과 병기창(Arsenal)을 조합한 신조어였다. 현재도 기차가 다니는 그 철교 아래 아치에 만들어진 작업실들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작가들은 필요에 따라 하나의 층을 쓰기도 하고 두 개의 층을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 기차가 지나갈 때에도 큰 소음이나 진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나 아쉬운 점은 그 아틀리에가 영구적인 공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운영 중인 기차의 운행과 관련하여 철교에 대한 검사나 보수 등의 상황이 생기면 철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안전하게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는 지인의 말과 앞으로도 별일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의 기도를 들으며 아틀리에를 나섰다.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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